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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과 상훈은 지지리도 가난하다. 단칸방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생활비를 아낀다. 순임은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듣느라 늦은 밤에도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지만 상훈은 자자며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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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불쌍한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인데 이 이야기는 결국 불쌍하게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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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과 상훈은 일을 하며 받은 쥐꼬리 월급을 아껴 300원짜리 간고등어를 250원에 구입하며 장을 보고 데이트를 한다. 그날만큼은 외상없이 우유와 곰보빵을 주문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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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를 내며,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덜 불행하게 보낸다. 순임은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낸다. 상훈에게 왜 너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안 해서 너를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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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둘이 모아둔 돈 5만 원 전부를 상훈이가 가난한 사람에게 준 것에 대해 순임은 화를 내고 욕을 난리가 난다. 이후 드러나는 진실. 이 이야기는 박완서 소설가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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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아들인 상훈은 신분을 숨기고 가난한 순임을 만나 동거를 하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가난 체험을 했는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상훈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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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 사회에서 가난장난이 유행할 거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sns에서도 실제로 유행이 될 줄은 몰랐다. 지지리도 지겨운 가난으로 올라온 사진은 그야말로 가난까지 도둑질을 하여 자신의 조회수를 올리는데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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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불쌍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가난은 불쌍하고 불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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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이 순임으로 나오는데 78년 데뷔해서 2년 만에 이 단막극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0년 방송으로 권기선은 아주 예쁘며,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영문프린트가 되었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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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장을 보는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까지 전부 촬영이 되었다. 희대의 쌍놈 상훈으로 나오는 이문환은 미래소년 코난의 래프카와 똑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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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단막극은 차이가 있지만 부자들이 가난까지 훔쳐가서 체험을 해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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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보면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나는 우리 집안의 몰락의 과정을 통해 부자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를 알고 있는 터였다. 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 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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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의 가난밈의 유행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단막극의 마지막은 순임이 상훈과 행복을 바라며 라디오에 보낸 사연과 함께 신청곡 세드무비가 나오면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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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볼 만하다. 스파이크 리도 영화에 출연을 한다. 1990년 영화인데 스파이크 리는 이때에도 악동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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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스파이크 리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해서 블릭 길버트라는 재즈 연주가의 음악, 사랑, 생활을 보여준다. 어린이 때부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배우기 시작흔 재즈 트럼펫을 불기 시작한 블릭 길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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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릭이 클럽에서 연주하던 6, 70년 시절은 40년대 본격 적인 흑인 브라스 밴드 재즈에서 개인 연주나 듀엣, 콰르텟 정도로 바뀌는 시기였다. 블릭은 재능이 있고 열정적이었지만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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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의 밴드가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것과 믿었던 친구이자 매니저 자이언트(스파이크 리)가 도박으로 돈을 날리는 것으로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이 안 된다. 정신적으로 교감을 이루는 재즈 가수 클린다와 육체적으로 달려드는 클럽 소유주 모건스턴 사이를 오고 가며 바람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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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 둘 다 잡아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결국 둘 다 놓치게 되는 순간까지 떨어진다. 이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음악과 사랑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블릭 길버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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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릭 길버트는 아주 젊을 적 덴젤 워싱턴이, 그리고 그와 음악적으로 쌍벽을 이루는 연주가로 웨슬리 스나입스가 나온다. 액션스타로 알려진 두 사람의 음악으로 대립을 보이는 구조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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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백미는 블릭이 부르는 모베터 블루스다. 그 유명한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직접 연주를 했다. 이 곡은 마살리스가 트럼펫 연주가 테렌스 블렌차드와 함께 곡을 만들었다. 명곡으로 지금까지 라디오에 꾸준하게 나오고 있고 브랜포드 마살리스는 우리나라에도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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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의 아버지가 베이시스트로 이미 어릴 적부터 재즈에 녹아들어 있었다. 스파이크 리는 언제나 흑인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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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작 똑바로 살아라를 보면 이탈리아인과 흑인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흑인 폭동까지 이어지는데 영화 속에서 한인 슈퍼를 점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92년 영화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LA 폭동이 일어나고 한인타운에서 약탈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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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재즈를 좋아하고 아직 보지 못했다면 모베터 블루스를 보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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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배열이 있지만 상위의 그릇 배열이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밥을 김에 찍어서 먹고 어묵 국을 한 모금,

그리고 고등어구이를 젓가락으로 뜯어서 입안으로.

미역무침으로 마무리를 한다.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올려 비비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건 상위의 배열 덕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큰 그릇에 전부 넣고 비벼 먹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먹으면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뱃속으로 음식이 들어가 버린다.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밥 상 위 배열은 그게 가능하다.

그래서 맛을 느끼며 맛있게 밥을 먹자.

새해가 밝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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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달려라 하니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에도 비슷한 시기에 걸렸고, 또 비슷한 시기에 오티티로 풀렸다. 100미터가 달려라 하니에 비해서 훨씬 재미있다.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달려라 하니 극장판은 이 영화 [100 미터]의 십 분의 일 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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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25년의 서사를 이렇게 잘 풀어냈다. 100미터 단거리 하나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대부분의 감정을 표현했다. 마지막 고통을 딛고 토가시가 전국 대회에서 출발하기 직전에는 보는 내가 조마조마했다. 보는 이들로 그런 마음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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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주제에 잠깐의 기쁨을 맛본 후 무너지는 감정의 장면은 몰입 그 자체였다. 불안은 극복하려는 게 아니다. 단거리를 달리는 것뿐인데 그 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선수들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불안을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은 더 들러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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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를 이겼을 때의 기쁨보다 졌을 때 받아들이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패배했다고 느끼지 않는 것,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 졌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하는 토가시가 이미 눈물을 흘리며 무너질 때 마음이 아프다. 어째서 달려라 하니에서는 이런 절박함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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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이 한 번 패배로 굴러 떨어지는 삶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찾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다. 1등이라고 생각하면 특등이 나오고, 오늘 최상의 컨디션인데 더 한 컨디션의 놈이 나타나고. 그러나 붕괴 속에서 자신을 잡아가는 모습이 마냥 슬프지는 않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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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뭔지 모르면서 현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현실을 적확하게 꿰뚫지 않으면 도망을 쳐도 그게 도망이 되지 않는다. 이도 저도 아닌 정지 상태밖에 되지 않는다. 도망을 치더라도 현실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도망을 칠 수 있다면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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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0미터 경주.

이 안에 희망, 실망, 영광, 좌절, 피로, 만족, 초조, 성취, 희로애락 이 모든 감정이 다 있다. 이 영화에는 빌런이라도 스테레오 타입이 없다. 전부 그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든다. 하니의 주나비 일당은 그냥 스테레오 타입이다. 게다가 100미터에 나오는 캐릭터의 운동화를 봐라,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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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가시를 보니 우리나라 양예원이 생각났다. 초신성이라며 천재가 나타났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천재 양예원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후, 방치된 채 지금은 거의 소식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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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양예원은 전담 코치도 없이 강원 소속인가? 거기서 뛰고 있지만 초등학생 수준밖에 안 된다. 근래 양예원의 인터뷰를 보면 그 모든 걸 인정하면서 무너진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양예원은 100미터에서 주인공 토가시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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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을 해서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인터뷰였다. 달리는 속도가 아닌 달리는 이유와 방향에 대해서 말하는 양예원은 100미터 주인공 토가시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100미터는 너무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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