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보면서 느꼈던 건, 시즌 1과 비교되는 부분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윤여정을 비롯한 한국 배우의 설정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최고의 나라라고 치부하던 미국, 그 넓은 땅에 살고 있는 여러 인종이 모인 미국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이구만.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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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느꼈던 건 의료시스템이다. 민영화가 된 미국의 병원들과 종합병원이나 준종합병원의 횡포 비슷한 것들. 애슐리가 4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현재에도 미국 병원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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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내과 같은 병원은 미국에서는 호스피탈이라 부르지 않고 닥터 오피스라고 부르는데 이래저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과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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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도 그렇고. 무슨 말이냐 한다면 일단 돈 많고 잘 사는 미국인은 너무 좋지만, 그 외 일반 미국인들은 그저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최선인데, 미국은 여기저기 약을 하니까 의료시스템을 찾아야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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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서민들은 트럼프 때문에 더 어렵다. 하층민들에게는 구호와 지원금이 매달 나온다. 가족 수대로 나오는데 그 돈으로 전기세 같은 세금을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다음 지원금이 나올 때까지 약하거나 술 마시며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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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국가 지원금으로 죽지 않을 정도로 생활이 되니 굳이 약도 있고 술도 있는 생활반경에서 벗어나서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면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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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신발 신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 미국의 모든 집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인식에 미국은 신발 신고 소파에 앉고 침대에 눕는다. 비 오는 날 돌아다닌 젖은 신발이며, 바지 단이며.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집구석이 엉망이 되는 걸 생각하면 으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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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도 그렇고 비행기에서 린지가 화장실에 갔을 때 위생이 엉망이다. 미국을 돌아다니는 한국 유튜브를 보면 일반서민들이 다니는 곳이 그렇게 쾌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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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시즌 2의 내용은 전부 봐서 알 테고, 지질하고 화 참지 못하고 가진 것 없지만 뽐내고 싶어 죽겠는 애슐리를 연기하는 케일리 스페이니가 가장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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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목소리를 가진 섹시한 에이바로 나온 미카엘라 후버는 원피스 2에서 쵸파 역할을 했다. 물론 목소리로. 가오갤에서도 플로어로 나왔다. 플로어는 토끼였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시즌 1을 머릿속에서 걷어내고 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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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로 점점 몸이 작아지는 주인공이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이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바뀐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몇 번 영화가 되었다. 슈링킹 맨은 프랑스 동명 원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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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작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걷어내고 보면 흑백 버전인 원작이 훨씬 재미있다. 대사나 내용이 거의 같은데 2026 영화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집 안, 지하실의 거미, 개미, 붕어, 같은 모든 것들이 위험천만한 것들이라 생존에 중점을 두었다면, 원작은 홀로 작아진 주인공의 고독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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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버전은 아무래도 그래픽이 좋아서 정말 작아진 주인공이 별거 아닌 곤충과 벌레를 피하는 장면이 리얼하게 보이는 반면에 원작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50년대 영화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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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작의 주인공은 점점 작아지는 몸으로 유명해져 길거리를 나가서 배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몸은 점점 더 작아진다. 몸이 작아지는 계기의 설정도 두 영화가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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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폴은 수영을 하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그 뒤로 몸이 점점 작아진다. 정확히는 줄어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작아져 딸의 인형집에서 생활하는 폴을 두고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왔을 때 폴은 보이지 않고 옷에 묻은 피를 보며 죽었다고 확신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폴이 없어져 이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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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고양이에게 쫓겨 지하실에 갇혀 있지만, 너무 작아진 폴을 알아채진 못한다. 폴은 편안했던 집이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절망과 좌절이 든다. 이 집은 아내와 딸을 위해 행복하게 설계했지만, 개미만큼 작아진 폴에게는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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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형태가 변하면(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치매로, 또는 어떤 무엇인가로) 원래 사랑하는 존재에서 점점 멀어진다. 폴보다 더 두려움에 갇혀 있던 캐릭터는 앤트맨의 재닛이다. 앤트맨 여자 친구의 엄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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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그래도 지하실이라는 인간사회에 속한 공간이지만 재닛은 분자 원자 그런 세계에 갇히게 된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과 생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만 둥둥 떠다녀야 하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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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링킹 맨은 사이언스 픽션 소설계의 전설 중 리처드 메드슨의 소설이다. 57년에 사이언스 픽션 영화가 또 한 편 같이 공개되는데 슈링킹 맨과 반대로 [어메이징 콜러설 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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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도록 거대한 남자라는 영화와 슈링킹 맨은 원래 당시의 제작환경을 고려해 B급 코미디영화로 만들어지려고 했지만, 특수효과를 맡았던 감독이 투입되면서 코미디를 버리고 진지하게 연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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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남자의 이야기 역시 후세에 많은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슈링킹 맨이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공포, 버려지는 슬픔과 외로움, 이데올로기적 두려움을 말한다면, 거대한 남자는 방사능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50년대 세계는 그런 격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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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남자도 의미적으로 바뀐 형태 때문에 인간들의 공격을 받는다. 존 가드너의 [그렌델]을 읽어보면 그렌델 역시 흉측하게 생겼다. 그렌델은 인간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인간은 그렌덴의 외모만 보고 공격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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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을 때 그렌델과 콜러설 거인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반격해도 실로 엄청난 힘이 가해져 인간들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슈링킹 맨이 70년 만에 리메이크가 되었다면 거대한 남자도 아마 리메이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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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시각적 재미는 대체로 충족이 되니 이 전체의 이야기처럼 인간에 대해서 좀 더 다가가는 연출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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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의 작품으로 첫 장면부터 끝장난다. 삼체의 그것처럼, 버스에 탄 여고생들의 몸이 어떤 무엇에 의해 전부 반으로 잘려 버리면서 시작한다. 영화는 프로이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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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독일의 끝내줬던 시리즈 [다크]처럼 다중 우주가 섞여 있다. 몹시 어려운데 시적이라 좋다. 답이 없다. 그저 멍하게 보면 된다. 멍하게 보는 이들은 대부분 여미새처럼 그냥 보면 되는 남자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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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우면서 잔인하고 야한 장면이 가득하다. 소노 시온의 이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영화는 정말 난해하고 몹시 야한 시를 콜라주해 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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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점이라면 1시간 30분 중에 1시간 가까이 나오는 세계에 남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소노 시온의 영화를 소비하는 건 남자들이다. 영화에 온통 여자들만 나온다는 건 참으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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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전부 여자들이다. 그것도 젊고 예쁜 여자들만 세계에 있다. 주인공은 다중 우주를 통과할 때마다 세 명의 주인공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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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알 수 없는 날카로운 것에 의해 친구들과 여자들이 몸이 반으로 쓸려 나가고 선생님들에게 살육당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결혼식을 앞두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난타전을 벌이고 세 번째 주인공은 마라톤 선수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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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보는 이들은 너무 깊이 있게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온 세상이 여자만 가득한데 1시간이 넘어가면 남자들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양자경의 [에브리씽 에브리워어 올 앳 원스]와 괴를 같이 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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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몹시 잔인하고, 변태적이며 더 난해하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이라면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다. 그 세계에서는 샤프링시스템을 통하면 육체는 이 세계에서 죽어도 저쪽 세계에서 정신은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에 육체가 죽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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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 세계에는 음악이 없고 그림자가 서서히 죽어가고 마음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나를 찾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건 살아있을 때 해야 하며 그 선택에 있어서 옳은 결론이 나지 않더라고 받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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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소노 시온의 변태적이고 이 허무맹랑한 영화를 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다. 표층적인데 심층적으로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 말도 안 되는 영화 [리얼 술래잡기]였다. 이 영화가 시리즈로 5편까지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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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에 나온 이 영화는 실화다.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오후, 우루과이대학 럭비팀을 태운 항공기가 칠레로 상륙하기 직전 안데스산맥에서 추락한다. 오래된 영화지만 추락 장면은 여전히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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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맥들은 날개를 날려 보내고 프로펠러는 객실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꼬리 부분은 떨어져 나간다. 비행기는 동체만 남아 미끄러져 예상치 못한 곳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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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몇은 즉사하고 살아남은 사람도 중상이었다. 남은 생존자들은 구조를 기다리지만 72년의 상황이란 지금처럼 제때 구조신호를 받고 빨리 구조대가 오는 시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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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라디오에 들리는 중단된 수색작업의 소식으로 생존자들은 절망적인데. 스필버그 사단의 감독이며 태양의 제국, 칼라퍼플의 제작자로 더 알려진 프랭크 마샬이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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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실제 사건을 재현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72일. 그러니까 두 달 반 만에 총 마흔다섯 명의 승객 중에서 생존자 16명이 구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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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생존자들의 사투가 놀라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정부 당국도 수색작업을 포기한 상태에서 먹고 마실 것마저 떨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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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후 열흘이 지나자 그들은 결단을 내린다. 눈 속에 묻었던 사체들을 다시 끄집어낸다. 살아남기 위해서 인육을 먹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그 인육은 다름 아닌 생존자들의 부모와 형제, 친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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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나온 93년까지, 20년간 열여섯 명의 생존자는 가족 같은 유대로 매년 그들이 구조되었던 12월 22일에 모두 다시 모인다고 한다. 그 누구도 21년 전의 그 고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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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 중에서 프로듀서이자 사업자인 난도 파라도처럼 사회생활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당시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된 사람도 있고, 또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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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 파라도는 영화에서 자문역할을 맡아서 당시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죽은 시인의 사회, 늑대개의 애단 호크가 이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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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 그리고 피붙이의 살을 먹어야 하는 인간의 절망과 비애. 이런 것들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영화 [얼라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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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화창한 5월 27일 신주쿠역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다. 각각 다른 교복을 입은 여고생 54명이 선로 앞에 일렬로 서서 손을 잡고 맑고 깨끗한 얼굴로 하나, 둘, 셋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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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차가 진입함과 동시에 54명은 선로로 뛰어내려 열차에 갈리고 피부가 터지고 피가 낭자하면서 지옥이 된다. 영화는 이렇게 충격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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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의 해맑은 얼굴과 도저히 그런 얼굴로 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54명이나 되는 수의 여고생이 뛰어내려 버린다. 이후 날짜 별로 자살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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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야간 근무를 하던 간호사가 [디저트]라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있던 두 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이 빵을 사러 간 사이 창문을 열고 사이렌이 울리는 쪽을 보다가 그대로 뛰어내린다. 빵을 사 온 간호사는 경비원과 이야기하다가 빵이라는 말을 듣고 또 뛰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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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유행처럼 번지고 경찰은 오리무중이다. 해커에게 걸려 온 전화로 경찰은 집단 관련 사이트를 알게 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하얀 가방 안에는 피부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만든 것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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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 자살을 하고, 애인과 함께 죽고 싶어서 애인이 길을 걸어가는 시간에 맞춰 뛰어내려 자살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영화는 거의 25년 전이라 화면이 엉성해서 그렇지 몹시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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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클럽 사이트에는 실시간으로 사망자가 늘어가는 숫자가 체크되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개인이나 작은 규모로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범죄라 단정 짓고 수사에 임하는데. 감독인 소노 시온을 좋아한다면 충격에 충격이 난무하는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소노 시온은 17세인가 시인으로 등단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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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런 사이코패스적 영상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한 영화는 당시 사회성을 짙게 반영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흥기였던 바블시대에도 젊은 층은 구석으로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많이 했다. 기성세대는 돈을 버는 것에 눈이 멀어 전혀 청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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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하루키와 오자키 유타카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글과 노래는 구석으로 내몰린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오자키 유타카의 죽음과 일본에서 글을 쓸 수 없었던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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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무너지고 격동의 밀레니엄 시대에 유행처럼 번진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영화는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한다. 이 영화 속에도 형사 구로다에게 자신의 일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 즉 가족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나누지 못하는 범죄자라고 해커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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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체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멀쩡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남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남에게 받은 상처가 더 많고 더 크다고 착각해서 그렇다. 이 영화는 뇌와 시각을 자극하는 영화 같지만 인간을 안아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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