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이 먹고 싶은데 다이어트 때문에 망설여지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같은 기사가 있다. 부산일보에 돼지국밥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역사라든가 종류 같은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뤘기에 넘어가고, 공깃밥을 제외하고 돼지국밥 일반 성분에는 수분이 제일 많다. 그다음이 단백질이다. 지방과 탄수화물은 3.46% 또는 1% 정도라서 돼지국밥을 먹고 걱정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물론 밥을 말고 양념이나 새우젓이나 김치를 왕창 곁들인다면 달라지지만 돼지국밥 자체는 잘못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박찬일 요리사에 따르면, 돼지국밥의 추억이 뇌의 어떤 기능, 서번트가 흘러나오는 뇌기능과 만나게 되면 그 맛이라는 건 극대화가 된다. 돼지국밥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테이블마다 고개를 숙이고 뒤질세라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아버지들과 돼지국밥을 가득 채우는 연기와 돼지국밥만의 냄새가 있다.

포장을 하거나 집에서 해 먹으면 따라갈 수 없는 돼지국밥집만의 분위기가 있다. 기사에서도 말하지만 돼지국밥은 소울푸드다. 영혼의 음식으로 누구나 돼지국밥에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밥에 대해 하나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화나 사극에서 왕왕 볼 수 있다. 국밥러들이 기쁜 건 국밥의 폭이 넓고 크기 때문이다. 국밥은 정말 다양하다. 국밥 하면 돼지국밥, 선지국밥, 콩나물 국밥까지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침까지 넘어간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조선시대가 배경이 되는 사극에는 어김없이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대사가 있고 국밥을 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국밥이 있는데 옛날에 주모에게 달라는 국밥은 무슨 국밥일까. 궁금하다. 조선시대에도 국밥의 종류는 다양했을 것이다. 국에 밥을 말아먹는 형태, 탕반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밥은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다양하지 않았나 싶다. [장군의 아들] 속에서도 김두환이 국밥을 먹는다. 맛있게도 퍼 먹는다. 영화 속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은 맛있게 보인다. [독전]에서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김성령도 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장면은 [궁합] 속에서 옹주 역의 심은경이 아이들에게 국밥을 사주는 장면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이 국밥을 아주 맛나게 퍼 먹는다. 그러나 영화 속 국밥이 무슨 국밥인지 모른다. 도대체 옛날에 먹었던 국밥은 어떤 국밥일까. 여러 국밥들 중에서 돼지국밥은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만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돼지머리를 계속 고아서 국물을 우려내는 국밥, 뼈(때로는 고기와 함께)로 우려내는 국밥, 그리고 살코기로만 우려내서 국밥을 마는 스타일이 있다.

대체로 돼지머리로 우려내는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살코기로만 담백하게 우려내는 국물의 국밥은 좀 더 비싸다. 전통시장의 오래된 돼지국밥 집들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낸다. 셋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하게 고기를 담아준다. 그렇지만 꼬릿 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난다. 나는 그게 좋아서 전통시장의 국밥집을 자주 찾았다. 무엇보다 허름한 분위기, 시간이 멈춘 듯한 벽면이나 벽지,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와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잡음이 뒤섞여서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을 잃고 소음처럼 들리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이 정겹다.

몇십 년 된 솥이 매일매일 육수를 무럭무럭 우려내다 보니 국밥집 안으로 들어가면 솥의 냄새도 미미하게 나는 게 참 좋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투박한 맛은 분명하다. 국밥에는 부속물이 가득 들어있다. 내장이나 간 같은 살코기보다는 부속물 위주의 국밥이라 언제나 푸짐하다. 그렇다고 해서 살코기 위주의 국밥보다 맛이 떨어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긴 흐름을 보낸 단단한 맛.

비슷비슷한 돼지국밥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맛.

시장 상인들의 시름과 허기를 달래주던 맛.

고단함을 이겨내는 맛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 배경의 국밥도 이렇게 서민들이 앉아서 퍼먹는 장면들이 많은 것으로 살코기가 잔뜩 들어간 설렁탕 종류의 국밥은 아닌 것 같다. 시래기국밥이거나 콩나물 국밥 같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밥이었을 것이다. 배도 채우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요즘도 다른 국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주모를 불러 국밥을 말아 달라고 했을 때 나오는 국밥은 그런 종류의 국밥이지 싶다. 그러나 서민들도 고기가 들어간 국밥을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창궐]을 보면 초반에 한 남자가 좀비로 변하기 전에 국밥 집에서 국밥을 퍼 먹으며 고기 들어간 국밥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이 영화가 고증이 잘 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추해 보면 내장국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요즘이야 돼지부속물을 넣은 국밥이 살코기 국밥만큼 대접을 받지만, 예전에는 부속물은 그대로 버렸다. 대창은 그냥 버리는 부속물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고 했을 때 대체로 단일 국밥 메뉴가 있는 곳이고 때에 따라 부속물이 들어가는 내장 국밥이지 않을까. 주로 주모가 국밥을 말아주는 주막은 서민들이 오가는 곳으로 양반들은 거의 오지 않기에 비싼 국밥은 팔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도 이제부터는 [주모, 여기 내장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든가 [여기 선지 국밥 하나 주시오]. 또는 [고기가 들어간 시락국밥을 말아 주시오]처럼 세세하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추를 많이 넣어야 맛있다고 하는 장면이 좋은 것처럼 조선시대 국밥 장면도 디테일을 살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몇 편의 영화가 언급되었을까?

참고로 조선후기 주막에서 팔던 국밥은 양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내서 간장 타먹는 장국밥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양반들은 평민보다 가난한 경우도 많았고, 주막에서 원래는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끼여서 이용해야 하는데, 양반이 와서는 독방 내놓으라고 꼬장 부리는 그런 에피소드가 많다고 한다.

국밥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해 보자. 여름이 빠져간다. 이제 찬물에 샤워는 못할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국밥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시기가 되었다. 국밥은 돼지국밥 같은 국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 딱 버티고 서서 팔짱을 끼는 국밥이 있는데 육개장 형태의 소고기 국밥이 아닌가 싶다. 소고기 국밥의 형태는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국밥이 또 아닐까 싶다.

소고기 국밥은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대량으로 조리한 소고기 국밥에서 나의 그릇에 소고기가 많이 들어있으면 왜 그런지 해냈다!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집에서도 명절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소고깃국을 끓이는 집이 많다. 소고기 국밥은 육개장에 가까워서 매콤하기도 하며 양껏 들어간 무 덕분에 달달한 맛도 가지고 있다. 국밥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는데, 소설가 박완서의 일화다.

박완서 소설가의 친구 중에 아들 두 명을 잘 키운 친구가 있는데, 아들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각각 보내서 박사로 성공을 시켰다. 그 아들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박완서는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결혼식은 친구의 자택, 정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박완서는 좋은 사람들이라 가든에서 열리는 거대한 결혼식을 생각하고 갔지만, 작은 마당에서 지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식 후 하객들을 위한 음식도 집 앞에 있는 옛날식 국밥집에서 국밥을 조달하여 하객들을 먹였다고 한다.

서로 빙 둘러앉아 육개장 같은 국밥을 먹으며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결혼식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박완서 소설가는 그 결혼식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모습이 주례사였는데, 주례 선생님은 초등학교 담임이었다. 주례는 보통 신랑의 약력이나 업적을 먼저 말하고 주례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해 담임이었던 주례는 신랑이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이 되었는지 몰라서 그저 신랑의 초등학교 쩍 이야기를 했다.

신랑 아무개 군은 초등학교 때 무척 오줌싸개였습니다.

와하하.

그리고 개구쟁이였던 신랑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대부분 주례사를 했다. 주례사를 하면서 주례도 웃고 하객들도 웃음바다였다. 주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고기 국밥을 앞에 놓고 후루룩 먹으며 결혼식장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곳에는 권위도 겉치레도 강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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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이름이 [겨울 이야기]였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라 사람이 늘 많았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붉은 벽돌로 벽면이 이루어져 있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붉은 벽돌로 파티션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모든 테이블이 독립적이어서 비밀 공유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카페에는 조관우의 노래 [겨울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왔다. 겨울 이야기에서 겨울 이야기가 나오니 좀 웃겼다. 하지만 노래가 좋아서 자주 듣다 보니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겨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꼭 낮잠을 많이 잔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었다. 조관우의 얼굴을 몰랐기에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겨울 이야기] 속 두 여인에 빠져들었다. 카페에는 추억의 노래가 많이 나왔다. 60년대 맨하탄스나 카펜터즈, 루 리드의 노래도 종종 나왔다. 날이 쌀쌀해지면 겨울 이야기는 더욱 따뜻하고 빛이 나는 것 같은 카페가 되었다. 카페에서 겨울 이야기를 계속 튼 사람은 아르바이트하던 여자애였다. 눈이 크고 안경을 썼고 포네티일의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작은 몸에 목소리가 큰 여자애였다.

카페에서는 카페만의 유니폼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었다. 카페에는 사이다와 우유도 팔았다. 요즘처럼 혼자서 당당하게 카페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며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주로 친구와 가서 커피를 제외한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주문을 하면 아르바이트가 서빙을 했다. 카페에 자주 가던 아이들은 용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음료 값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한 번 주문하고 세 시간이 되면 재주문을 하거나 나가야 했다.

고등학교 사진부여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여러 사진을 담았는데 봄이면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오는 제비를 많이 담으려고 했다. 겨울 이야기를 자주 틀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얼굴이 동글동글한 여자애를 보기 위해 사진부 애들과 함께 겨울 이야기 카페에 자주 가서 우유와 사이다를 열심히 마셨다. 겨울 이야기 카페에 가면 그 여자애가 있었고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게 뭐랄까, 충족감 같은 것이 들었다. 고작 그 정도만으로 행복했다. 학교 축제 준비로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겨울 이야기 카페에서 회의를 자주 했다.

제비를 사진으로 담는 걸 좋아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기와집 같은 곳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서 열심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제비는 신기하기만 했다. 새끼들은 주둥이를 벌리고 짹짹 울어댔다. 어른들은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 집 밑에 판자를 대주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겨울이 오기 전 제비들은 스텔스처럼 도로에 바짝 붙어 비행을 했다. 셔터를 누르지만 필름 카메라가 제비의 비행을 담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유와 사이다를 마시며 제비 사진들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축제 출품할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여자애가 와서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 계기로 그 여자애와 좀 친해지게 되었다. 그 여자애는 우리 학교와 멀리 떨어진 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소설 [이방인]을 좋아하고, [아이다호]를 심도 있게 본 문학소녀였다. 늘 겨울 이야기 카페에 와서 지정석 같은 테이블에 나는 앉았고, 그 여자애는 테이블 옆에 서서 잠깐씩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밖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떨렸다. 그날 그 애는 안경을 벗고 머리를 풀고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포니테일의 유니폼 입은 모습만 보다가 다른 모습에 조금 놀랐다. 아이다호를 좋아한다는 그 애를 데리고 가유희사를 보러 갔다. 주성치와 장국영이 한 화면에 나와서 코믹한 연기를 펼치는 묘한 영화였다. 유치했지만 그 애는 주성치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닮았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다. 주성치 영화를 알아봐 주니 내심 기뻤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바닷가에 앉아서 그 애가 들고 온 조관우 2집 리메이크 앨범을 같이 들었다. 조관우가 [겨울 이야기]를 부르고, [슬픈 인연]을 부르고, [님은 먼 곳에]를 불렀다. 조관우 얼굴 어떻게 생겼어? 나도 몰라, 이렇게 미칠 것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데 얼굴이 뭐가 중요해.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 애와 두 번 더 만났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손을 잡았다. 주로 그 애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그 애는 말할 때 단어 같은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을 했다.

문학소녀답게 릴케와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했고,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론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나는 입을 조금 벌리고 경청하는 학생이 되었다. 노래방에 갔을 때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여섯 번 정도 번갈아가며 불렀다. 내가 부를 때는 조관우를 따라 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어 이상했지만, 그 애가 잘한다고 치켜세워서 계속 불렀다. 그 애는 내가 찍은 제비 사진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진 뒤에 글자를 써서 주기도 했다. 세 번째 만나고 헤어질 때 이제 [겨울 이야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카페에 갈 일도, 또 겨울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어진 것이다. 그 애는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서는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그대로 추억이 되어 하이얀 눈처럼 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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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리즘 영화로 티브이로 방영된 1회 분 짜리 이야기다. 시네마 지옥에서 김의성 배우가 추천한 영화이기도 하다. 정말 재미를 주었던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의 연습 편? 정도 될까 싶은데, 바카리즘의 영화를 좋아하면 이 역시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바카리즈무의 각본으로 탄생된 영화나 드라마는 호불호가 확실한데, 나는 아주 좋아하는 쪽이다. 이미 바카리즘의 영화를 몇 편 올린 적이 있다. 바카리즈무라는 이름은 가명인데, 바카 즉 바보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뭐 그런.

그래서 바카리즘의 영화를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에 잔잔한 웃음이 모여서 뭐야? 하면서 좀 크게 웃게 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최고다. 전부 뭔가 하나 나사가 빠진 듯한 대사와 행동이 재미있다.

특히 키쿠치 린코의 코만 발갛게 해서 치는 대사와 어투 같은 게 너무 재미있는데 참 잘 어울린다. 이 야기는 그라비아 모델 출신 젊은 사장의 가사도우미를 하던 주인공 두 명이 탈세 의혹이 있다는 소문에 사장의 집을 털러 간다.

그때 요가를 배우던 전혀 상관없는 친구(요시다 요)도 같이 가게 된다. 큰 아파트에 잠입을 성공한 주인공들은 여자여자한 사장의 집에서 탈세한 돈을 훔치려 하지만 전혀 찾을 수 없고, 기부를 많이 한 상패를 보며 아 잘 못 됐구나 하게 된다.

세 명은 사장을 오해했다며 집을 나왔다가 죄책감이 들어 사장의 집에 다시 들어가 청소를 하고 냉장고의 음식을 정리하고 요리까지 해 놓고 나오려는데, 그만 집에 든 도둑과 마주하게 된다. 그 뒤로 우당탕탕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바카리즘 식으로 이어진다.

당황과 황당 속에서 능청스럽게 치는 대사와 몸짓이나 행동이 엉뚱하면서 너무 재미있다. 그 집에는 또 다른 사람이 숨어 있었는데 두둥. 아무튼 주고받는 대사가 평소에 우리가 할 법한 대사이긴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기가 막히는 대사들이 주욱 이어진다. 모든 배우가 다 재미있지만 키쿠치 린코를 중점적으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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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는 5녀 만에 연기에 다시 도전한다. [오늘의 영화] 사전 미팅 자리에서 상대 배우 혜랑을 만나서 연기를 맞춰 본다.

감독은 대본 리딩보다는 두 사람의 케미가 종요하다며 두 사람이 먼저 친해져야 하니 촬영은 그 후에 하자고 한다.

모임을 마치고 철기와 혜랑은 나와서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어쩌지 못한다. 어차피 두 사람이 연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색함을 풀어야 한다.

날은 푹푹 찌는 폭염이고, 철기는 짬뽕 잘하는 곳이 있는데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먹어보지 않을래요?라고 혜랑에게 말을 한다.

혜랑은 잠시 생각하더니 날이 더워 냉우동이 먹고 싶다며 가자고 한다. 철기가 맛집이라고 이끈 동네 중국집에는 에어컨이 고장 났다.

거기에 시원한 음식은 전부 안 된다고 한다. 나갈까 하다가 혜랑은 맛집이니까 먹고 가자고 하며 두 사람은 뜨거운 짬뽕을 먹고 나온다.

이미 폭염의 날 땀으로 샤워를 한 두 사람은 나와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이번에는 혜랑이 아는 카페인데 걸어서 20분 넘게 가야 한다. 게다가 오르막 길이다.

철기는 땀으로 옷이 다 젖고, 도착한 오래된 맛 집 카페도 에어컨이 고장 나서 기사가 고치고 있지만 가망이 없다. 그대로 앉아서 팥빙수와 시원한 음료를 주문한다.

더운 가운데 먹는 팥빙수는 맛있기만 하다. 철기는 팥빙수를 먹다가 입가에 팥도 하나 묻히며 먹는다. 혜랑은 피디에게 보여주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때 감독에게 전화가 온다. 아직 사진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거기 묻은 거 뭐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감독은 날씨 때문에 스케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철기는 자신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걱정한다.

두 사람은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진다. 그때 감독과 촬영 스텝들이 나타나서 수고했다고 한다.

독립영화 [오늘의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 아니 초현실 장면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비현실 장면보다는 초현실 장면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 삶이 이 영화와 비슷하다. 폭염 속에 시원한 곳을 찾아 가는데, 당연할 것 같은 에어컨이 안 되어서 뻘뻘 땀을 흘려야 하고, 또 희망이 있지만 카페에서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러나 철기와 혜랑의 대화 속에서, 어릴 적 꿈과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삶이라는 것이 선택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많이 이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담아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개개인의 삶이 사실은 카메라나 대본이나 스텝이 없는 한 편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는 언제나 좋다. 좋은 소설을 한 편 읽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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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망작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영화가 좋아서 몇 번이나 봤다. 샘 레이미 식 꿈과 환상의 판타지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오즈의 마법사’를 어릴 때부터 봐서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어릴 때 오즈의 마법사는 명절이 되면 티브이에서 틀어 주었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생각이 난다.

그러다 보니 노란 벽돌길을 따라 오즈로 가는 여정이 좀 더 길고 재미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 티브이판 만화 버전도 재미있게 봤다. 그 거대한 지렁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땅 속에서 흙을 막 파먹으면서 잡으로 가는 그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었다.

‘캔사스 외 딴 시골길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로운 바람 타고서 끝없는 모험이 시작됐지요’로 시작하는 주제가도 좋았다. 이 노래만 들으면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원작의 일본 주제가는 이만큼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국버전이 너무나 익숙하기에 일본 주제가는 들어도 좀 그렇다.

이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에 변주를 주었다. 도로시가 주인공인 원작에 비해 캔사스의 마법사로, 아니 마술사로 일하던 오즈가 주인공이다. 초반 20분 정도 흑백으로 나온다. 원작에 대한 예우 같은 느낌으로 시작을 해서 오즈에 떨어졌을 때 컬러로 바뀐다. 그러니까 도로시 이전의 이야기 정도 될 것 같다. 오즈가 먼저 에메랄드 성에 간 이야기.

거기서 날개 달린 원숭이와 꼬마 인형 메이와 함께 마녀 엘파바로 변한 테오도라와 그녀의 언니, 사악의 근본인 에바노라와 맞서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래픽으로 점철된 영화라고 폄훼했지만, 진짜 마법을 부리는 마녀들에게 기술력으로 무장한 가짜 마법으로 맞서는 장면이 좋았다.

엘파바가 된 테오도라는 자아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엘파바가 되어서 오즈의 사람들을 괴롭힌다. 원작은 악의 주축인 마녀 에바노라를 도로시가 탄? 집이 깔아뭉개 죽여서 엘파바가 도로시 일행을 죽이려 든다.

이 영화에서는 그 설정을 잘 비틀었다. 마지막에 오즈가 도망가는 엘파바에게 너는 원래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잖아? 돌아와?라고 했을 때 잠시 멈칫한다. 엘파바는 어쩌면 테오도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오즈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마음이 심해서 그러지 않고 그대로 녹색마녀로 남는다.

엘파바의 웃음소리가 원작의 엘파바와 거의 같아서 놀랐다. 정말 원작의 마녀 웃음소리와 똑같다. 오즈의 마법사는 1985년 후속작이 있다. 도로시가 캔사스로 돌아왔다가 육 개월인가, 일 년 뒤 다시 오즈의 나라로 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원작은 감독이 일곱 명이나 교체될 정도로 제작자가 집착을 한 덕분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명작이 되었다. 그러나 원래 소설은 그렇게 밝고 아름답기보다 당시에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좀 어두운 부분도 있어서, 1985년 후속작 ‘리턴 투 오즈’는 아주 어둡고 고어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3D 만화로도 ‘돌아온 오즈’ 버전이 있다. 샘 레이미 식 그래픽도 좋았고, 미셸 윌리암스의 글린다고 예뻤고, 밀라 쿠니스가 정말 예쁘게 초반에 나왔다가 엘파바 마녀가 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미셸 윌리암스 하니까 히스레저와 2000년대 초반에 낳은 딸이 성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키가 미셸 윌리암스를 넘었던데. 아무튼 제목이 대사로도 나왔던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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