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취준생이다. 나를 소개할 때 취준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버리면 삶이 대단히 모호해진다. 그 모호함 속에는 하영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삐딱하다는 게 강하게 느껴진다.

행정고시를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하영은 회사에 면접을 보기로 한다. 행시준비를 하면서 생계를 위해 아파트를 돌며 녹즙을 배달하는데 한 집에서 여자가 나와서 다시는 녹즙을 배달하지 말라고 한다.

이상하다, 세상은 하영 자신만 빼고 전부 여유롭게 돌아가고 있다. 어째서 나만 이렇게 시간에 쫓겨 땀을 흘리며 신발끈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일상의 반복이 하영에게 준 것은 소화불량이다.

회사 면접하는 날, 같이 면접 보는 다른 여성은 윈피스에 얼굴도 예뻐서 자신과 비교된다. 면접관들은 하영에게 많은 질문을 하지만 그 질문들이 마치 하영을 질책하는 듯하다.

하영이 살아온 궤적을 지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면접 보는 옆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질문을 나에게만 하는 것일까. 내 삶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다. 하영은 그렇게 자신을 나무란다.

녹즙배달을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층마다 배달을 할 수 없기에 계단을 뛰어오르며 배달을 한다. 땀이 너무 난다. 그때 녹즙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해고통보를 받는다. 부당한 해고다.

하영은 회사에 따지듯이 묻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하영은 또 소화불량 증상이 심하게 도진다. 아파트 근처에 앉아서 손을 딴다. 밴드를 벗겨내니 엄지손가락에는 더 이상 침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가득하다.

이 영화는 동국대 학생영화팀에서 졸업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재학 중인 학생들로 구성된 배우들이 비참한 현실에 내몰린 청춘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90년대에는 기업들이 졸업생들에게 찾아와서 우리 회사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골라서 취직하면 되었다. 인기 있는 회사는 무역상사 같은 회사였다.

사람들 중에서는 취업 골라서 가려고 하니 어려운 거다, 어디든 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예전 코로나 때 어린 형제가 5천 원 들고 동생이 치킨이 먹고 싶은데, 형은 사 줄 수 없고, 그때 그 치킨집 사장이 형제에게 아낌없이 무료로 치킨을 내주었다.

치킨 그거 누구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선입견으로 보는 시선이 하영의 삶을 질책하듯 대하는 그 면접관의 시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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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고백의 역사를 감독한 남궁선의 독립영화로, 한 번 제대로 떠 보지도 못하고 망한 아이돌 그룹 [러브 앤 리즈]와 [파이브갓차일드]의 수민과 사랑과 태희는 학창 시절부터 친구였다.

야심 차게 아이돌로 출발했지만 망해버리고, 회사에서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도 거의 알아보지 못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세 명은 학창 시절에 연습한다고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한다. 세 명은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뭘 해 본 적이 없기에 여행이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제주도에 내린 세 명의 얼굴은 불안과 근심, 고민이 가득하기만 하다. 여행이 재미있어야 하지만 세 명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다가 한 식당의 야외에서 밥을 먹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사랑이를 힐끗힐끗 보며 비웃음을 짓는다. 결국 폭발해 버린 사랑이가 달려들어 남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그로 인해 백만 원도 되지 않는 여행경비를 전부 합의금으로 준다.

돈이 있어야 숙소를 잡고 내일 제주도를 구경할 수 있기에 세 명은 귤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첫 대면에 마뜩잖아하는 농장주인은 귤 따는 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의외로 일을 잘한다.

쉬지도 않고 말도 없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마음에 든 농장주인은 다음 날에도 오라고 한다. 다음 날에도 일을 열심히 하는데 너무 열심히 한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일을 한다. 농장주는 일당을 좀 더 쳐 준 다음에,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시켜봤지만 이렇게 일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라, 그리고 너네들은 좀 놀아라.라고 말한다.

이들 세 명은 지금까지 케이팝을 빛냈던 수많은 아이돌이 시간이 지나 잊혀 지금은 뭐하는지 모르는 아이돌을 대표한다고 생각된다. 울분과 분노, 집착에 대한 감정이 과잉되는 것을 막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오버하지 않는 점이 좋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다. 일반인이라고 해서 힘든 현실에서 미친놈처럼 오버해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감정의 껄끄러움을 주인공 세 배우는 잘 표현했다.

이들의 팬으로 나오는 보관소 직원인 소윤은 현실감에서 거리가 멀어서 공감이 좀 덜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악플러나 반대편 사람은 대하기가 오히려 편하다. 왜냐하면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팬인데, 어설픈 팬은 힘들다. 팬 입장에서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나의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악플러보다 더 한 악플러가 된다. 팬이라고 해서 한 종류의 팬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소윤은 팬이라는 이유로 수민과 사랑에게 난처한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후반에는 같이 어울린다. 이들에게서 아이돌이라는 캐릭터를 소거하고 보면 그저 26살, 친구의 죽음으로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방황하는 청춘들의 고민을 잘 볼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너무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청춘들에게 그냥 눈을 감고 숨만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말하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내뱉어야 하는 영화 [힘을 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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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시인의 '눈물의 중력'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정말 그런 눈물이 있다.

너무 무거워 일어서서는,

똑바로 앉아서는 흘리지 못하는 눈물이 있다.

우리 몸은 너무 작기에

감당할 수 없는 눈물,

엎드려야만 올 수 있는 눈물이 있다.

멸치가 죽어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소리가

[멸치 한 마리 주세요]라는 말이다.

그렇게 큰 바다에서 치열하게 헤엄을 쳤지만

멸치 한 마리만 찾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을까.

멸치처럼 작은 몸에서도 눈물은 나온다.

너무 무거워 엎드려서 울 수밖에 없는 눈물.

그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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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직 멀어는, 완전한 관계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불어 완벽하지 않은 인간과 인간의 화해 역시 완벽할 수 없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완벽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완전하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기에, 영화 속 허구를 통해, 즉 이야기를 통해 감정이 순수하게 그 속에 녹아들 수 있어서 영화를 본다.

사츠키는 유조가 미츠키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언니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하다 결락과 언니에 대한 애도, 언니를 향한 분노가 일어난다. 유조는 미츠키가 비를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산을 씌워준다. 유조는 미츠키가 비를 맞지 않지만 비를 맞는다고 믿는다.

미츠키는 저 구름 너머에 천국이 있다는 걸 알지만 너무 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까울지 모르는 저 너머의 천국을 애써 멀다고 생각한다. 그건 아직 이쪽 세계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츠키가 언니의 죽음으로 언니를 더 알고 싶어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온통 허구라 결국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허구라는 걸 알지만 믿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개개인마다 존재한다. 그 허구를 믿음으로 해서 완벽에 가까운 감동을 느낀다. 그걸 영화가 해내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정말 영화를 잘 만들어 낸다.

우리는 살아있지만 언젠가는 죽은 자가 된다. 현실을 살지만 그 속에서 보석 같은 허구를 찾아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임계점에 서 있는 듯한 영화 ‘천국은 아직 멀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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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는 배달을 하기 위해 당근 거래로 자전거를 구입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호는 투잡을 뛰어야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버틸 수 있다. 쌀국수 가게에서 음식을 받아서 배달을 갔는데, 그만 잘못 배달이 되었다. 그때부터 일이 꼬여간다.

겨우 제대로 배달해 줬지만, 다 식어빠진 쌀국수 때문에 배달시킨 사람은 화를 내고, 썰국수 가게에 전화한 지호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라는 말을 듣고,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니 높낮이가 없는 기계적인 음으로 방법을 빨리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지호는 난처한 얼굴로 손님에게 새 음식을 가지고 오는데 40분이 걸린다고 말하니까 그 손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지호는 다시 쌀국수 가게로 오니 주인은 손해 본 금액은 어떻게 할 거야? 고객이 별점테러하면 책임질 거냐? 등 이전 라이더도 여자였는데, 같은 말이 길어지면서 배달 시간이 지체된다. 초초한 지호.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음식을 받아 나오니 자전거를 자신의 가게 앞에 세워두었다고 욕을 하는 식당 주인아저씨에게 계속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빨리 배달해주고 싶은데 비까지 심하게 내린다.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비가 내려 자전거를 자물쇠로 채워두려는데 그것마저 비 때문에 쉽지 않다. 왜 이렇게 나는 되는 일이 없을까. 울음이 터질 것 같지만 배달을 해야 한다.

결국 버는 돈 보다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고 배달을 한다. 울고 싶지만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이런 조마조마한 일상의 반복, 자신에 대한 실망이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일이 끝나고 진이 다 빠져나간 지호는 그제야 허기가 몰려와 간식을 꺼낸다. 그때 간식의 겉표지에 [배달기사님 수고하십니다. 하나씩 가져가세요]라는 문구를 본다.

나를 모르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에게 받은 한 줄의 위로가 또 내일을 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교차되는 자신과 라이더의 모습을 보며 끝난다.

이 짤막한 영화는 강렬하다. 20분 러닝타임 속에 바뀌지 않은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자꾸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주연보다 조연들이 훨씬 유명한 배우들이다.

연기가 신의 경지에 다른 염혜란이 쌀국집주인으로, 류경수가 쌀국수를 배달시킨 사람으로, 현봉식이 또 다른 식당집주인으로 나온다. 아마도 이렇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것은 아무래도 감독 때문일 것이다.

영화 [메기]와 [야구소녀]의 히로인으로 [녹야]에서는 판빙빙과 함께 연기를 한 이주영의 감독데뷔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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