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탐포포를 비롯해서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실제로 영화 속 캐릭터이지 않을까 하는 연기를 한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흠뻑 젖어든다.
13년의 복역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야쿠자였던 미카미는 적응을 하고 싶다. 그 누구보다 이 사회에 야쿠자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사람들 속에 스며들고 싶다.
하지만 이미 몸에 세포처럼 붙어 버린 초조함과 절망에서 벗어나고픈 성급함, 그리고 폭력적인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미카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들도 많다. 복지사도, 슈퍼의 주인도, 처음에는 돈벌이로 다가온 다큐멘터리 작가도 다 미카미를 응원한다.
우리가 평소에 늘 하던 슈퍼에서 물건을 고르고, 운전을 하고, 사람들과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게 서툰 미카미다. 13년 만에 나온 세상 밖으로 나온 미카미는 실은 세상 밖으로 나온 게 처음일지 모른다.
그 이전에는 야쿠자에 속해 있는 조직원으로 칼질을 일삼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해 왔다. 정작 어린 시절부터 조직 생활을 한 미카미는 사회라는 곳이 처음이다.
밖으로 나온 사회는 정의와 선이 가득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불의에 사람들은 모른 척 지나갔다. 미카미는 강도짓을 하는 양아치 두 명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런 미카미를 사회는 나무란다. 그러지 않는 게 좋다. 그게 흘러가는 이치다.
미카미는 운전면허시험도 계속 떨어지고 결국 예전 야쿠자 동료를 찾아간다. 거하게 대접을 받은 미카미는 역시 야쿠자에 속해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경찰들이 급습하고, 야쿠자로 살아가는 건 요즘 사회에서는 무리라는 걸 알게 된다. 계좌하나 만들지 못하고, 아이들은 유치원에 보내지도 못한다. 평생 몹쓸 짓을 하며 술과 음식 때문에 말년에는 병에 걸려 시들해지는 것이다.
그런 미카미가 딱 맞는 일을 찾는다. 요양보호소에서 보조로 일을 한다. 이렇게 뿌듯한 기분은 처음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
시설에서 미카미는 정신지체가 있는 젊은 보조와 친하게 지낸다. 그는 미카미를 보며 항상 웃어 준다.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창피한 게 아니라고 미카미는 생각한다. 그런데 보호사 두 명이 그 친구를 괴롭히고 때리는 장면을 본다. 불의를 보면 지나쳐야 한다.
예전처럼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런 자신이 너무나 밉고 싫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데 모두가 그 정신지체 보조를 욕하며 흉내 내며 웃는다. 그때 미카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같이 웃어 버린다.
밖에서는 태풍이 오기 직전이고 그 정신지체 보조는 꽃을 꺾고 있다. 모두가 그를 놀린다. 그 속에 미카미도 있다. 퇴근하고 집으로 올 때 그 젊은 보조가 와서 미카미를 위해 태풍이 오기 전에 꽃을 꺾었다며 준다.
미카미가 바라는 멋진 세계는 이런 세계는 분명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고 했고, 고레에다 감독은 [서투른 한 남자의 생을 격려와 웃음으로 끝까지 응시한다.]라고 했다. 미카미는 그 꽃을 쥔 채 다음 날 아침 멋진 세계로 가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