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병든 엄마를 요양원에 맡기고 돌아가는 산길에서 구불구불한 코너를 돌다가 그 앞에 걸어가는 노인을 모지 못하고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노인이 넘어졌다. 그 옆의 아들이 운전대를 잡은 주인공에게 소리를 친다.

주인공은 너무 놀라서 사과를 하려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니라 양인지 염소 같다. 하지만 내려서 죄송하다고 하며 염소 어머니를 부축했다.

그때 저 먼 하늘에서 까마귀 떼가 원을 그리며 노려보고 있다. 염소 아들이 까마귀 떼를 유인한다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저기 언덕에 부축해서 좀 모셔다 달라고 한다. 자신이 갈 때까지 좀 같이 있어 달라고.

주인공은 자신 때문에 염소 어머니가 놀라서 그러겠다며 업고 언덕까지 간다. 겨우겨우 힘들게 언덕까지 가서 보니 언덕은 너무나 아름다운 꽃밭이었다.

그곳에 어머니를 내려놓고, 회사에 늦게 가게 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 염소 어머니와 사진을 찍는다. 세상에 사람 같은 염소가 있다니. 회사에 보여주면 아마 다들 놀라겠는걸. 하며 셀카를 여러 번 찍는다.

그리고 사진을 확인하니 사진 속의 염소 어머니 옆에는 염소 아들이 있을 뿐이다. 회사에 늦어져 안 되겠다 싶어 염소 어머니에게 여기에 있으면 아들이 올 테니 저는 가보겠다고 한다.

그때 염소 어머니가 두 손을 꼭 잡아준다.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 낯설지 않은 기분이다. 아아 이게 아닌데. 주인공은 헐레벌떡 언덕을 내려온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다.

자신이 요양원에 두고 온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염소 어머니와 똑 닮은 자신의 어머니 모습을.

형제들은 전부 가족을 이뤘지만 병든 어머니를 모시려는 형제는 아무도 없고, 그것 때문에 형제들끼리 싸움을 하고, 결국 자신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다 드렸지만 이건 아니었다.

달려서 그 염소 어머니가 있는 언덕으로 가니 처음 봤을 때 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언덕이 아니라 삭막하고 황량한 바위 언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곳곳에 버려진 염소 어머니들이 있다.

12분짜리 이 짧은 애니메이션은 현대사회의 노인 부양에 대해서 초현실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더 좋다. 중년 가장이 되면 아이들은 다 컸지, 고민이 있어도 어디 전화할 때가 없지, 아이들과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지,

심지어는 딸은 세탁기에 아빠 옷하고 같이 돌리지도 말라고 하지, 5년 후 퇴직 걱정해야지, 거기에 병든 노모가 있으면 책임감과 죄책감과 불안 때문에 가장 먼저 어머니를 처분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 의미를 잘 살린 단편 애니메이션 ’엄머의 집‘이었다. 과연 엄마의 집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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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린이의 친구 제노모프‘라고 했던데, 큭큭큭 정말 코가 막히게 시리즈 1이 마무리가 되었다. 누군가는 신선하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8화는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 이 시리즈는 기생수의 세계관을 따라간다. 에이리언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저들은 그저 살기 위해 인간을 죽이는데,

인간은 인간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미워하고 죽이기 때문에 제노모프와 친구가 되어, 아니 제노모프를 지배한다는 이야기.

이 시리즈에는 여러 외계 생물체가 나온다, 그냥 다 싸잡아 제노모프라고 했을 때, 제노모프에게 하이브리드가 된 웬디가, 이게 웬걸 입으로 끄르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니 제노모프가 웬디의 말에 복종을 한다.

이게 뭐람.

웬디와 친구들은 성인의 몸을 가진 어린아이들이지만 자신들을 살려줬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을 연구하려고 했던 인간의 반대편, 제노모프 쪽에 선다.

웬디는 손짓으로 막 다 할 수 있다. 절대 열리지 않던 쇠문도 열어버리고, 7화에서 제노모프들이 이 섬을 나가면 세계가 지옥이 될 게 뻔하니까 이전의 에어리언 영화들처럼 이 안에서 끝내는 걸 바랐지만, 섬 밖으로 나가는 예고를 하며 시리즈가 끝난다.

1화는 영화처럼 시작을 하기에 기대를 잔뜩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영화만큼 제노모프가 영상에 왕창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기생수와 닮은 건, 아니 따라 하는 건 제노모프가 나타남으로 해서 인간과 인간 간의 불신과 배신 그리고 이해관계가 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노모프를 제압하고 심지어 지배까지 하며 연구소 내의 모든 장치를 손동작으로 컨트롤하는 웬디가 사실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시즌 2에서는 뭘 하려는 걸까.

어른 몸을 빌린 아이들이 제노모프와 손잡고 지구 쟁탈전을 벌이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 기분만 드는 에이리언 어스 시즌 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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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르 란티모스의 금기를 깨버린 란티모스식 영상은 불쾌한 골짜기를 걷는 느낌이지만 멈출 수 없다. 세상의 모든 통로와 단절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적인 성장은 아이 때 멈춘 후 그대로다.

그럼에도 본능은 살아있어서 육체를 탐하고 접촉에 의한 흥분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형제자매들 지간에도 금기를 넘어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마당에서 물을 틀어 놓고 놀 때에는 어린이들처럼 에너지를 전부 소진시켜 가며 논다.

나지 말아야 할 곳에 난 송곳니가 내내 신경 쓰이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교육을 받고, 매일 고양이가 괴물이라고 듣게 되면 고양이가 진짜 괴물로 여긴다.

단순히 친구 같은 개로 키우길 원하십니까? 주인을 지켜주고 명령에 복종하는 그런 개를 원하지 않으세요?

대사는 영화를 관통한다. 송곳니는 요르고스를 파격적인 감독으로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된 영화다. 송곳니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억압적인 독제체제 속에서 히틀러처럼 끊임없이 라디오를 통해 세뇌당하고 학대당하면 사람들이 바보가 되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재자의 입장에서는 대들지 않고 그저 먹을 것만 주면 말 잘 듣는 바보들이 국민이면 최고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축소해서 보면 한 가정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절대권력을 이야기한다. 가족이란 너무나 애매한 집단이다. 가족은 공포와 슬픔을 동시에 지닌 정의할 수 없는 조직이다. 가정집의 대문이 닫히는 순간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 계급이기 때문이다. 교육문제, 부동산문제, 성차별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라고 정희진 여성학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김소연 시인은 말한다.

이 영화는 불쾌함의 연속이다. 벌을 줄 때에도 가그린을 먹이고,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비디오테이프로 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물건의 이름도 전부 다르게 말을 하고, 고양이를 죽인 아들에게 고양이가 괴물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아버지는 밖에서 일부러 고양이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옷을 찢고 피를 얼굴과 옷에 묻혀서 들어온다.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는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가족을 사회에서 매장을 시키고 집 안에 매몰시키는데, 이렇게 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아버지는 지치지도 않고 하는 것에 놀라게 된다.

아들을 위해 데리고 오던 여자가 오지 못하자 여동생과 누나 둘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하는 장면도 불쾌하다. 나지 말아야 할 곳에 비어져 나온 듯한 송곳니를 빼는 장면도 불쾌하다.

결국 영화는 불쾌하게 끝이 난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우리 인간이 불쾌한 골짜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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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처음에는 유치한 듯 시작하지만, 끝에 가서는 꽤 뭉클해지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이야기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나카 케이와 나가노 메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미 다 알겠지만 이 둘은 불륜으로 현재 일본에서 난리다. 다나카 케이는 뭐랄까 깔끔하게 생긴 일반인 같은 얼굴인데 자세히 뜯어보면 잘생긴 얼굴이다. 그래서 악역에도, 선한 역에도 잘 어울린다. 튀지 않고 그렇다고 묻히지도 않아서 꾸준하게 인기가 있다.

나가노 메이는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니까 설명은 차치하고, 두 사람이 이 영화를 찍으면서 완전히 눈이 맞아 버렸다는 것이다. 다나카 케이는 유부남이지만 그만 나가노 메이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본능이 이성을 짓눌러 버렸다. 둘은 정신줄을 놓고 들켰음에도 에이 몰라, 식으로 만나고 있었다. 지방에서 다나카 케이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 관중 뒷 자석에서 나가노 메이가 꽁꽁 싸매고 따라가서 앉아서 다나카 케이를 기다렸다. 꽁꽁 싸멨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나가노 메이다.

둘의 불륜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가노 메이는 많은 광고가 줄줄이 취소가 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떨어질 줄 몰랐다.

위험을 감수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이 인간의 감정은 정말 무엇일까. 만약 나의 애인이, 나의 아내가, 나의 남편이 나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사실 훈련을 한다고 해서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훈련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 이미 본능에 잠식된 인간의 마음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나가노 메이는 그간 같이 일했던 남자배우들을 오빠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동료로 취급했는데, 다나카 케이는 자신을 지켜줄 아빠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 영화에서도 다나카 케이는 나가노 메이를 아빠처럼 보살피는 역할로 나온다.

그랬는데 가장 최근에 나가노 메이와 사타구니 켄타로가 사귄다며 또 한 번 열도가 발칵 뒤집어졌다. 사카구치 켄타로는 연예인 치고 깨끗한 이미지로 지금까지 아무런 소문 없이 인기를 얻은 배우다. 한국에서마저 인기가 굉장하다.

근래에 리사의 뮤비에 출연을 해서 꽁냥꽁냥 분위기를 연출해서 팬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켄타로는 타카하타 미츠키와 몇 년 사귀고 있었는데, 그때에도 나가노 메이와 미즈키가 함께 출연하게 되면 미즈키가 어떤 낌새를 알아챘는지 나가노 메이와 같이 출연을 하지 않았다.

나가노 메이는 16살 때부터 켄타로를 좋아해서 커서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하더니, 같이 연기를 한 후에 두 사람의 열애설이 터지고 말았다. 켄타로의 여친이었던 미즈키는 이런 미래를 알았던지 켄타로와 헤어지고 난 후 작년 12월 오카다 마사키와 결혼을 했다. 이 모든 꼬인 연애사에 승자는 미즈키다.

켄타로는 이번 부국제에 왔는데 나가노 메이와 열애설 때문인지 너무나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제일 미스터리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그 마음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그 마음을 다 알려고 하다 보면 요즘처럼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사건으로 발전을 하기도 한다. 그냥 한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면 좋겠지만 사랑이라는 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식어버린 사랑은 또 다른 불같은 사랑에게 향한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변해버린 그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나가노 메이와 다나카 케이, 사타구니 켄타로의 이야기가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그렇다면 이 연애사에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 다나카 케이?

어쩌면 다나카 케이의 아내일지도 모른다. 검색해 보면 다나카 케이의 부인 사쿠짱이 그간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아내인 사쿠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다나카 케이는 사쿠짱이 임신 중일 때에도 20대 초반의 그라비아 여성 모델 두 명과 심야에 술에 취해서 같이 있는 장면이 목격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이시하라 사토미도 나오지만 현실 불륜 이야기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영화는 꽤 재미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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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돌파만큼은 헤비‘다. 유쾌하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고 핀란드식 코미디에 빵 터진다. 무엇보다 영화를 가득 채우는 고어하고 엄청난 핀란드 메탈이 강력해서 좋다.

해비해비하고 고어한 메탈로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핀란드는 메탈 천국이다.

율라이프 채널에 잘 나오는데, 핀란드는 인구가 550만 명 정도 되는데, 메탈밴드가 3,000개 이상 있다. 이 나라에서는 메탈이 가장 인기 있는 음악 장르다. 우리나라의 트로트와 비슷하다.

그리고 메탈 음악 교육이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어린이용 메탈밴드가 있는데, 헤비사오로스다. 그러니까 엄청난 메탈 사운드로 공룡분장을 한 어른 밴드가 이 닦자!!! 잠자자!!!! 공부하자!!! 뭐 이렇게 한다.

아무튼 핀란드에서 메탈은, 그러니까 고어한 메탈, 데스 한 메탈, 고딕 분위기와 세기말 감성의 메탈이 인기가 있다.

왜 그런고 하면 건 낮에는 춥고 어디 멀리까지 놀러 가지 못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감정을 폭발할 수 있는 매개가 메탈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 아이들은 메탈을 자장가 삼아서 듣고 잠을 잔다. 만약 메탈을 듣지 않거나 부르지 않는다면 핀란드 사람들은 몹시도 춥고 차가운 나라에서 우울에 빠져서 지낼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주인공들은 12년 동안 메탈 연주를 해서 실력은 좋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무대 울렁증 때문에 무대 경험도 없다.

주인공 네 명은 메탈 연습을 제외하면 아버지 순록고기 집에서 일을 하고, 레코드숍에서, 정신 요양원에서 일을 한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엄청난 곡을 만들어 데모를 만들어 노르웨이 메탈 축제 담당자에게 전달을 하고, 그 축제가 열리는 곳까지 가는 이야기가 우당탕탕 펼쳐진다.

이들이 하는 메탈 장르는 ‘심포닉 종말 이후 순록 분쇄 안티 기독 극렬 이단 전쟁광 페노스칸디아 메탈’이다.

데모도 카세트테이프에 뜨고, 돈이 없어 홍보 사진도 과속 카메라에 찍힌 사진으로 하는데 이게 너무 멋지게 나왔다.

네 명 중 드럼이 사고로 죽고(참 웃기게 죽음) 무덤을 파내 친구도 데리고 메탈 축제에 가다가 국경 수비대의 미사일도 피하고,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축제에 도달한다.

그리고 멋진 공연으로 마무리를 한다. 영화는 계속 피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코믹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동네에서 루저취급을 당한다.

그럼에도 메탈을 놓을 수 없다. 영화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다. 아무튼 홍보사진으로 찍힌 과속 카메라의 모습은 가히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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