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가장 가까이 있어서 가장 멀리 있는 존재다. 가족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싶고 모든 걸 알아야 하지만, 전부 알 수 없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집단이 가족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엄마아빠에게는 말 못 할 비밀과 고민을 잔뜩 가지고 있다. 선생님에게도 말할 수 없다. 오로지 친구만이 자신을 나누고 공유한다. 엄마는 자식을 다 안다는 착각 때문에 가정에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영화도 그런 가족을 말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타인, 함께라서 불편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엄마는 자신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지내고 있지만 아들에게 말할 수 없다.

아들은 캐나다까지 유학을 보내준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지만 공부는 포기하고 잘하는 요리로 유튜브를 하고 싶다. 이미 캐나다에서 같이 살고 있는 여자 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하지만 결혼할 거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두렵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도 춘천으로 오게 된다.

이 모두가 전부 한 집에서 잠시 머물게 되면서 관계와 가치관에 대해서 부딪히고 알아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예전부터 한국 가정에 가득한 가부장제와 아버지의 권력과 함께, 동성애와 그걸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엠지세대의 결혼관과 부모세대와의 마찰 그리고 인류애까지 잘 버무려 놓았다.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장영란, 류경수, 스테파니 리, 옥지영 등 연기들이 아주 좋다. 꼰대 아버지는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꼰대진상이다. 나중에 딸이 화가 치밀어 너!라고 아버지에게 대든다.

누군가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할지도 모른다. 너! 뒤에 좀 더 거칠게 아버지에게 대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신파인 듯 신파 아닌 신파가 있고,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모자라지만 블랙코미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일반적으로 주위에서 늘 있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재미있다. 보다가 눈을 돌리게 되지는 않는다. 내 처지가 가족이 불편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감이 확 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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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작들이 워낙 수작이어서 개봉 전부터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했다. 낮술은 정말 최고였고, 조난자들 역시 보다가 이렇게 무섭게 영화를 만들다니 하며 놀랐다.

노영석 감독 혼자서 쿵짝쿵짝 전부 다 해버려서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 영화가 나올 수 있다며 [더 자연인]에 대해서도 씨네 필 이런 곳에서 관심이 대단했다.

노영석 감독 같은 사람이 이 바닥에 뿌리처럼 버티고 있어서 한국의 독립영화가 그나마 지탱이 가능하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코미디와 호러를 섞는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상업영화에서 그 같은 노력을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노영석 감독은 혼자서 촬영에, 각본에, 편집, 배급까지 하면서 그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 그렇다고 생각이 든다. 유튜브, 몰카, 먹방, 자연인, 빙의, 귀신을 한 화면에서 잘 버무려 보여주었다. 그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해 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2023년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는데, 개봉은 많이 늦어졌다. 시놉을 보면 유튜브로 성공하고픈 인공과 병진이 귀신을 본다는 자연인을 찾아가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수상한 산속의 남자는 인공과 병진에게 밥과 된장만을 내는데, 병진은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천상의 소스 맛에 반하게 되어서 계속 산속에 머물면서 촬영을 하자고 한다. 병진은 애초에 빨리 돌아가자고 했던 사람인데 인공과 반대가 되었다.

인공에 눈에 비친 자연인은 너무나 기괴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인데 새벽에 불 꺼진 부엌에서 몰래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지 않나, 된장 소스를 땀이나 타액으로 만들지 않나, 마네킨을 사랑하는 여자처럼 대하질 않나. 이상하다. 병진은 점점 기괴한 자연인과 붙어서 시시덕 거리며 거짓말까지 한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 대사들도 종잡을 수 없다. 섬찟하면서도 느닷없이 웃기고. 노영석 감독은 [가장 자유롭게 만든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서바이벌이었다. 관객도 함께 즐기고 웃고, 쫄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재미순으로 보자면 낮술, 조난자들, 더 자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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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대표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담은 다큐 같은 로드무비다. 주인공 요코는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서 전설의 물고기를 잡는 방송의 리포터를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 힘이 들고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전설 속 물고기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즈벡 사람들은 믿고 있으며 여자가 가까이 오면 부정 타서 전설의 물고기가 오지 않으니 낚시에 같이 데리고 가기 싫어하는 현지인. 음식도 맞지 않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감독이 큐 사인이 떨어지면 웃으며 맛있게 먹어야 한다.

요코는 촬영하기 전에 혼자서 우즈벡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송에 맞게 조금이라도 스며들려고 하지만, 작고 일본에서 온 요코는 현지인과의 괴리가 힘들다.

놀이기구 촬영을 하다가 오바이트를 하고, 혼자서 촬영금지 구역을 촬영하다가 현지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한다. 요코는 이 험난하기만 한 타국에서의 촬영을 어떻게 이어갈까.

이 영화는 우즈베키스탄과 일본의 수교 몇 해, 같은 기념으로 담은 영화정도 되겠다. 요코는 현지인들에게 문화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문화가 다른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는 우리나라 독립영화 [다우렌의 결혼]에서도 잘 나온다. 카자흐스탄으로 호기롭게 가서 순조롭게 촬영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문화차이에 대해서 잘 나왔다. 요코로 나오는 주인공은 마에다 아츠코. 그 외에 카세 료(연출 감독으로 나오지만 화면에 거의 드러나지 않게 연기를 한다), 소메타니 쇼타(기생수), 에모토 토카오(형이 좀 더 유명한 배우다)가 나온다.

마에다 아츠코는 34살인가 그런데, 데뷔 20주년이다. 그래서 팬들과 함께 핀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가는 투어를 개최한다. 그런 걸 보면 팬들을 끔찍이도 생각한다. 하지만 참가비가 75만 엔이다. 거의 800만 원 정도. 오로라는 자연현상이라 자연이 화가 나서 못 보거나, 천재지변 같은 것으로 관람을 하지 못할 수 있는데 환불은 불가능이다.

마에다 아츠코는 일찍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도 하고, 아무튼 연예인 생활이 파란만장하다. 마에다 아츠코 같은 얼굴을 이어받아서 인기가 많은 배우가 요즘 영화,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야마시타 미즈키다.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서치아이로 보면 얼굴이 겹쳐지는데 이질감이 없다.

구로시와 기요시의 공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영화는 맞지 않다. 초현실이 옅게 가미된 로드무비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사실 여행을 하거나 타국으로 가면 초현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착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요코가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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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 속 살인마, 많은 영화 속 살인마의 모태가 된 실제 살인마 에드 게인의 이야기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에드가 어떻게 살인의 욕망에 사로잡히는지 잘 나오는데, 그 발화의 씨앗이 부헨발트의 암캐라고 불리는 일제 코흐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면서부터다.

시리즈는 과거 일제 코흐의 온갖 악행을 보여주면서 망상과 현실을 보여준다. 베이츠 모텔 시리즈처럼 죽은 엄마가 에드의 눈에는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여자 친구를 죽은 엄마에게 소개를 주다가 여자가 도망을 가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 망상으로 노먼 베이츠와 히치콕이 등장하여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에드 게인은 히치콕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리즈 속에 등장하는 일제 코흐는 예쁘게 나오지만 실제 일제 코흐는 그냥 마녀처럼 생겼다. 이 여자가 지구가 탄생한 이래 아마도 가장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닐까 싶다. 히틀러보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그 어떤 나치의 악마보다 더 악마였다. 일제 코흐의 탄생배경이나 자란 환경 같은 건 인터넷에 많으니 넘어가자.

지금부터 하는 일제 코흐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우리나라의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1906년 생으로 착하기만 하던 소녀가 커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나치의 선전 연설을 듣고 나치즘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나치 인사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치당에 가입을 한다.

1936년에 작센하우스 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거기 수용소장 카를 오토 코흐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 일제 코흐는 장교와 결혼해서 돈과 권력을 쥐고 있어서 성공에 도취되었다. 그러다 다음 해 남편이 부헨발트 수용소로 발령을 받아가면서 거기서 일제 코흐가 점점 악마가 되기 시작한다. 수감자들에게 자신을 수용소장의 아내라며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유태인 수감자를 고문시키고 남녀 가리지 않고 성적으로 학대를 했다. 그러면서 점점 나치의 눈에 들어 1941년에는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여성감독관이 된다. 이때부터 상상하기도 힘든 행각이 펼쳐진다. 채찍으로 다니면서 마구 채찍질을 해서 수감자들이 고통스러워하면 할수록 일제 코흐는 즐거워했다.

밤에는 장교 부인들과 발가벗고 향연을 펼치고 남편의 부하 장교들과 하루에 12명까지 섹스를 즐겼고 자랑을 하며 다녔다. 한 수감자가 일제 코흐를 오랫동안 봤다는 이유로 수감자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채찍질을 했고, 짜증이 나고 심심하면 여자 수감자를 맹견 우리에 넣어 물려 죽는 장면을 보는 걸 좋아했다.

일제 코흐는 전수받은 해부기술을 이용해서 수감자들의 머리를 절단해 주먹만 한 크기로 화학처리한 후 집안에 장식을 하고, 식탁에도 자신이 죽인 수감자의 두개골로 장식을 했다. 무엇보다 수감자들의 피부를 벗겨내어 인피로 천을 만들고 책 버커와 지갑, 장갑을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이 시리즈에도 나온다. 일제 코흐는 인피로 수공예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렇게 인피로 만든 공예품을 동료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일제 코흐는 고운 피부로 만든 공예품을 좋아해서 수감자 중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바로 죽여 버렸다고 한다. 문신이 있는 피부는 장갑으로 만들었고 그 장갑을 끼고 수용소를 돌아다녔다. 일제 코흐는 남편에게 말해 수용소 안에 동물원을 만들어서 곰과 독수리의 먹이로 수감자를 넣었다. 곰은 사람을 갈기갈기 찢었고, 독수리는 사체를 먹고 뼈를 쪼았다고 생존자가 증언하기도 했다.

나치 패망 후 1945년 4월 일제 코흐 남편은 연합군에게 총살을 당하지만 일제 코흐는 도망을 쳐 일반인 틈에 끼어서 도망을 간다. 47년에 일제 코흐는 체포가 된다. 하지만 혐의를 모두 부정하고, 아픈 척 연기를 하고, 법정에서 일급 코미디라고 희생자들을 조롱하며 1951년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일제 코흐의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지면서 다시 체포되어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지만 일제 코흐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렇게 복역하며 60세까지 살다가 아이샤흐 형무소에서 침대 시트를 가지고 목을 메어 자살을 한다. 이 모습도 이 시리즈에 나온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드가 괴물이 되는 과정이 잘 나오는데, 일제 코흐의 이야기와 노먼 베이츠(싸이코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욕망과 망상에 사로잡히고 빠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하는지 잘 드러난다. 삐뚤어진 욕망과 망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살인을 해도 그게 살인인지 인지를 못하게 된다. 일제 코흐를 그대로 답습한, 전기톱 살인마와 노먼 베이츠를 탄생시킨 시체를 사랑한 살인마 에드 게인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살인마를 사랑한다. 너무 이상한 말이지만 살인마가 잡히면 추종하는 사람들과 팬들이 생긴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지금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에게도 추종하는 인간들이 있다. 트럼프가 인기를 얻은 시기도 10년 동안 이어진 방송에서 남들이 하지 못했던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시원하게 욕을 한다는 건 달콤한 것이다. 상대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고통에 찬 표정을 보는 걸 사람들은 좋아한다. 폭력은 나쁜거라 하지만, 은행강도를 폭력으로 잡았더면 그 폭력은 정당화되어 추앙 받는다. 살인도 비슷하다.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살인마들을 찾아다니며 죽였다면 그 살인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다. 덱스터도 그랬고, 비질란테와 배테랑 2편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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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이 먹고 싶은데 다이어트 때문에 망설여지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같은 기사가 있다. 부산일보에 돼지국밥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역사라든가 종류 같은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뤘기에 넘어가고, 공깃밥을 제외하고 돼지국밥 일반 성분에는 수분이 제일 많다. 그다음이 단백질이다. 지방과 탄수화물은 3.46% 또는 1% 정도라서 돼지국밥을 먹고 걱정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물론 밥을 말고 양념이나 새우젓이나 김치를 왕창 곁들인다면 달라지지만 돼지국밥 자체는 잘못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박찬일 요리사에 따르면, 돼지국밥의 추억이 뇌의 어떤 기능, 서번트가 흘러나오는 뇌기능과 만나게 되면 그 맛이라는 건 극대화가 된다. 돼지국밥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테이블마다 고개를 숙이고 뒤질세라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아버지들과 돼지국밥을 가득 채우는 연기와 돼지국밥만의 냄새가 있다.

포장을 하거나 집에서 해 먹으면 따라갈 수 없는 돼지국밥집만의 분위기가 있다. 기사에서도 말하지만 돼지국밥은 소울푸드다. 영혼의 음식으로 누구나 돼지국밥에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밥에 대해 하나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화나 사극에서 왕왕 볼 수 있다. 국밥러들이 기쁜 건 국밥의 폭이 넓고 크기 때문이다. 국밥은 정말 다양하다. 국밥 하면 돼지국밥, 선지국밥, 콩나물 국밥까지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침까지 넘어간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조선시대가 배경이 되는 사극에는 어김없이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대사가 있고 국밥을 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국밥이 있는데 옛날에 주모에게 달라는 국밥은 무슨 국밥일까. 궁금하다. 조선시대에도 국밥의 종류는 다양했을 것이다. 국에 밥을 말아먹는 형태, 탕반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밥은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다양하지 않았나 싶다. [장군의 아들] 속에서도 김두환이 국밥을 먹는다. 맛있게도 퍼 먹는다. 영화 속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은 맛있게 보인다. [독전]에서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김성령도 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장면은 [궁합] 속에서 옹주 역의 심은경이 아이들에게 국밥을 사주는 장면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이 국밥을 아주 맛나게 퍼 먹는다. 그러나 영화 속 국밥이 무슨 국밥인지 모른다. 도대체 옛날에 먹었던 국밥은 어떤 국밥일까. 여러 국밥들 중에서 돼지국밥은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만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돼지머리를 계속 고아서 국물을 우려내는 국밥, 뼈(때로는 고기와 함께)로 우려내는 국밥, 그리고 살코기로만 우려내서 국밥을 마는 스타일이 있다.

대체로 돼지머리로 우려내는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살코기로만 담백하게 우려내는 국물의 국밥은 좀 더 비싸다. 전통시장의 오래된 돼지국밥 집들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낸다. 셋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하게 고기를 담아준다. 그렇지만 꼬릿 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난다. 나는 그게 좋아서 전통시장의 국밥집을 자주 찾았다. 무엇보다 허름한 분위기, 시간이 멈춘 듯한 벽면이나 벽지,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와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잡음이 뒤섞여서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을 잃고 소음처럼 들리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이 정겹다.

몇십 년 된 솥이 매일매일 육수를 무럭무럭 우려내다 보니 국밥집 안으로 들어가면 솥의 냄새도 미미하게 나는 게 참 좋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투박한 맛은 분명하다. 국밥에는 부속물이 가득 들어있다. 내장이나 간 같은 살코기보다는 부속물 위주의 국밥이라 언제나 푸짐하다. 그렇다고 해서 살코기 위주의 국밥보다 맛이 떨어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긴 흐름을 보낸 단단한 맛.

비슷비슷한 돼지국밥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맛.

시장 상인들의 시름과 허기를 달래주던 맛.

고단함을 이겨내는 맛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 배경의 국밥도 이렇게 서민들이 앉아서 퍼먹는 장면들이 많은 것으로 살코기가 잔뜩 들어간 설렁탕 종류의 국밥은 아닌 것 같다. 시래기국밥이거나 콩나물 국밥 같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밥이었을 것이다. 배도 채우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요즘도 다른 국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주모를 불러 국밥을 말아 달라고 했을 때 나오는 국밥은 그런 종류의 국밥이지 싶다. 그러나 서민들도 고기가 들어간 국밥을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창궐]을 보면 초반에 한 남자가 좀비로 변하기 전에 국밥 집에서 국밥을 퍼 먹으며 고기 들어간 국밥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이 영화가 고증이 잘 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추해 보면 내장국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요즘이야 돼지부속물을 넣은 국밥이 살코기 국밥만큼 대접을 받지만, 예전에는 부속물은 그대로 버렸다. 대창은 그냥 버리는 부속물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고 했을 때 대체로 단일 국밥 메뉴가 있는 곳이고 때에 따라 부속물이 들어가는 내장 국밥이지 않을까. 주로 주모가 국밥을 말아주는 주막은 서민들이 오가는 곳으로 양반들은 거의 오지 않기에 비싼 국밥은 팔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도 이제부터는 [주모, 여기 내장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든가 [여기 선지 국밥 하나 주시오]. 또는 [고기가 들어간 시락국밥을 말아 주시오]처럼 세세하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추를 많이 넣어야 맛있다고 하는 장면이 좋은 것처럼 조선시대 국밥 장면도 디테일을 살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몇 편의 영화가 언급되었을까?

참고로 조선후기 주막에서 팔던 국밥은 양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내서 간장 타먹는 장국밥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양반들은 평민보다 가난한 경우도 많았고, 주막에서 원래는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끼여서 이용해야 하는데, 양반이 와서는 독방 내놓으라고 꼬장 부리는 그런 에피소드가 많다고 한다.

국밥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해 보자. 여름이 빠져간다. 이제 찬물에 샤워는 못할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국밥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시기가 되었다. 국밥은 돼지국밥 같은 국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 딱 버티고 서서 팔짱을 끼는 국밥이 있는데 육개장 형태의 소고기 국밥이 아닌가 싶다. 소고기 국밥의 형태는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국밥이 또 아닐까 싶다.

소고기 국밥은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대량으로 조리한 소고기 국밥에서 나의 그릇에 소고기가 많이 들어있으면 왜 그런지 해냈다!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집에서도 명절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소고깃국을 끓이는 집이 많다. 소고기 국밥은 육개장에 가까워서 매콤하기도 하며 양껏 들어간 무 덕분에 달달한 맛도 가지고 있다. 국밥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는데, 소설가 박완서의 일화다.

박완서 소설가의 친구 중에 아들 두 명을 잘 키운 친구가 있는데, 아들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각각 보내서 박사로 성공을 시켰다. 그 아들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박완서는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결혼식은 친구의 자택, 정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박완서는 좋은 사람들이라 가든에서 열리는 거대한 결혼식을 생각하고 갔지만, 작은 마당에서 지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식 후 하객들을 위한 음식도 집 앞에 있는 옛날식 국밥집에서 국밥을 조달하여 하객들을 먹였다고 한다.

서로 빙 둘러앉아 육개장 같은 국밥을 먹으며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결혼식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박완서 소설가는 그 결혼식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모습이 주례사였는데, 주례 선생님은 초등학교 담임이었다. 주례는 보통 신랑의 약력이나 업적을 먼저 말하고 주례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해 담임이었던 주례는 신랑이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이 되었는지 몰라서 그저 신랑의 초등학교 쩍 이야기를 했다.

신랑 아무개 군은 초등학교 때 무척 오줌싸개였습니다.

와하하.

그리고 개구쟁이였던 신랑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대부분 주례사를 했다. 주례사를 하면서 주례도 웃고 하객들도 웃음바다였다. 주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고기 국밥을 앞에 놓고 후루룩 먹으며 결혼식장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곳에는 권위도 겉치레도 강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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