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밥이 먹고 싶은데 다이어트 때문에 망설여지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같은 기사가 있다. 부산일보에 돼지국밥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역사라든가 종류 같은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뤘기에 넘어가고, 공깃밥을 제외하고 돼지국밥 일반 성분에는 수분이 제일 많다. 그다음이 단백질이다. 지방과 탄수화물은 3.46% 또는 1% 정도라서 돼지국밥을 먹고 걱정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물론 밥을 말고 양념이나 새우젓이나 김치를 왕창 곁들인다면 달라지지만 돼지국밥 자체는 잘못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박찬일 요리사에 따르면, 돼지국밥의 추억이 뇌의 어떤 기능, 서번트가 흘러나오는 뇌기능과 만나게 되면 그 맛이라는 건 극대화가 된다. 돼지국밥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테이블마다 고개를 숙이고 뒤질세라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아버지들과 돼지국밥을 가득 채우는 연기와 돼지국밥만의 냄새가 있다.
포장을 하거나 집에서 해 먹으면 따라갈 수 없는 돼지국밥집만의 분위기가 있다. 기사에서도 말하지만 돼지국밥은 소울푸드다. 영혼의 음식으로 누구나 돼지국밥에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밥에 대해 하나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화나 사극에서 왕왕 볼 수 있다. 국밥러들이 기쁜 건 국밥의 폭이 넓고 크기 때문이다. 국밥은 정말 다양하다. 국밥 하면 돼지국밥, 선지국밥, 콩나물 국밥까지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침까지 넘어간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조선시대가 배경이 되는 사극에는 어김없이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는 대사가 있고 국밥을 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국밥이 있는데 옛날에 주모에게 달라는 국밥은 무슨 국밥일까. 궁금하다. 조선시대에도 국밥의 종류는 다양했을 것이다. 국에 밥을 말아먹는 형태, 탕반문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밥은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다양하지 않았나 싶다. [장군의 아들] 속에서도 김두환이 국밥을 먹는다. 맛있게도 퍼 먹는다. 영화 속에서 국밥을 먹는 장면은 맛있게 보인다. [독전]에서도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김성령도 국밥을 맛있게 먹는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장면은 [궁합] 속에서 옹주 역의 심은경이 아이들에게 국밥을 사주는 장면이다. 꾀죄죄한 아이들이 국밥을 아주 맛나게 퍼 먹는다. 그러나 영화 속 국밥이 무슨 국밥인지 모른다. 도대체 옛날에 먹었던 국밥은 어떤 국밥일까. 여러 국밥들 중에서 돼지국밥은 국물을 우려내는 방식만으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돼지머리를 계속 고아서 국물을 우려내는 국밥, 뼈(때로는 고기와 함께)로 우려내는 국밥, 그리고 살코기로만 우려내서 국밥을 마는 스타일이 있다.
대체로 돼지머리로 우려내는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살코기로만 담백하게 우려내는 국물의 국밥은 좀 더 비싸다. 전통시장의 오래된 돼지국밥 집들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낸다. 셋 중에 가장 가격이 저렴하고 푸짐하게 고기를 담아준다. 그렇지만 꼬릿 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난다. 나는 그게 좋아서 전통시장의 국밥집을 자주 찾았다. 무엇보다 허름한 분위기, 시간이 멈춘 듯한 벽면이나 벽지,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와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잡음이 뒤섞여서 소리는 소리로서의 기능을 잃고 소음처럼 들리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이 정겹다.
몇십 년 된 솥이 매일매일 육수를 무럭무럭 우려내다 보니 국밥집 안으로 들어가면 솥의 냄새도 미미하게 나는 게 참 좋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투박한 맛은 분명하다. 국밥에는 부속물이 가득 들어있다. 내장이나 간 같은 살코기보다는 부속물 위주의 국밥이라 언제나 푸짐하다. 그렇다고 해서 살코기 위주의 국밥보다 맛이 떨어지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긴 흐름을 보낸 단단한 맛.
비슷비슷한 돼지국밥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는 맛.
시장 상인들의 시름과 허기를 달래주던 맛.
고단함을 이겨내는 맛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 배경의 국밥도 이렇게 서민들이 앉아서 퍼먹는 장면들이 많은 것으로 살코기가 잔뜩 들어간 설렁탕 종류의 국밥은 아닌 것 같다. 시래기국밥이거나 콩나물 국밥 같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국밥이었을 것이다. 배도 채우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요즘도 다른 국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영화 속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주모를 불러 국밥을 말아 달라고 했을 때 나오는 국밥은 그런 종류의 국밥이지 싶다. 그러나 서민들도 고기가 들어간 국밥을 먹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창궐]을 보면 초반에 한 남자가 좀비로 변하기 전에 국밥 집에서 국밥을 퍼 먹으며 고기 들어간 국밥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이 영화가 고증이 잘 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추해 보면 내장국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요즘이야 돼지부속물을 넣은 국밥이 살코기 국밥만큼 대접을 받지만, 예전에는 부속물은 그대로 버렸다. 대창은 그냥 버리는 부속물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고 했을 때 대체로 단일 국밥 메뉴가 있는 곳이고 때에 따라 부속물이 들어가는 내장 국밥이지 않을까. 주로 주모가 국밥을 말아주는 주막은 서민들이 오가는 곳으로 양반들은 거의 오지 않기에 비싼 국밥은 팔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도 이제부터는 [주모, 여기 내장국밥 하나 말아 주시오]라든가 [여기 선지 국밥 하나 주시오]. 또는 [고기가 들어간 시락국밥을 말아 주시오]처럼 세세하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서 부추를 많이 넣어야 맛있다고 하는 장면이 좋은 것처럼 조선시대 국밥 장면도 디테일을 살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몇 편의 영화가 언급되었을까?
참고로 조선후기 주막에서 팔던 국밥은 양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내서 간장 타먹는 장국밥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양반들은 평민보다 가난한 경우도 많았고, 주막에서 원래는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끼여서 이용해야 하는데, 양반이 와서는 독방 내놓으라고 꼬장 부리는 그런 에피소드가 많다고 한다.

국밥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해 보자. 여름이 빠져간다. 이제 찬물에 샤워는 못할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국밥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시기가 되었다. 국밥은 돼지국밥 같은 국밥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서 딱 버티고 서서 팔짱을 끼는 국밥이 있는데 육개장 형태의 소고기 국밥이 아닌가 싶다. 소고기 국밥의 형태는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국밥이 또 아닐까 싶다.
소고기 국밥은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대량으로 조리한 소고기 국밥에서 나의 그릇에 소고기가 많이 들어있으면 왜 그런지 해냈다!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집에서도 명절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소고깃국을 끓이는 집이 많다. 소고기 국밥은 육개장에 가까워서 매콤하기도 하며 양껏 들어간 무 덕분에 달달한 맛도 가지고 있다. 국밥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는데, 소설가 박완서의 일화다.
박완서 소설가의 친구 중에 아들 두 명을 잘 키운 친구가 있는데, 아들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각각 보내서 박사로 성공을 시켰다. 그 아들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박완서는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결혼식은 친구의 자택, 정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박완서는 좋은 사람들이라 가든에서 열리는 거대한 결혼식을 생각하고 갔지만, 작은 마당에서 지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식 후 하객들을 위한 음식도 집 앞에 있는 옛날식 국밥집에서 국밥을 조달하여 하객들을 먹였다고 한다.
서로 빙 둘러앉아 육개장 같은 국밥을 먹으며 정겹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결혼식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박완서 소설가는 그 결혼식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모습이 주례사였는데, 주례 선생님은 초등학교 담임이었다. 주례는 보통 신랑의 약력이나 업적을 먼저 말하고 주례사를 시작하는 것에 비해 담임이었던 주례는 신랑이 무슨 공부를 했는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이 되었는지 몰라서 그저 신랑의 초등학교 쩍 이야기를 했다.
신랑 아무개 군은 초등학교 때 무척 오줌싸개였습니다.
와하하.
그리고 개구쟁이였던 신랑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대부분 주례사를 했다. 주례사를 하면서 주례도 웃고 하객들도 웃음바다였다. 주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고기 국밥을 앞에 놓고 후루룩 먹으며 결혼식장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곳에는 권위도 겉치레도 강압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