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어느 날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양아치 세 명과 싸우다 만신창이가 된 주경일은 병원에 입원한다. 주사를 죽어도 맞기 싫다며 간호사에게 대들던 그가 천사 같은 숙희를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천사 앞에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얌전히 엉덩이를 내미는 주경일이라니.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란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사랑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느 날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은 노인을 편들어 주었는데 옛 은사님이었다. 은사님 집에서 술 한잔을 하려는데 딸이 들어온다. 바로 숙희였다. 숙희는 주경일에게 무척 친절하고, 사랑이 싹튼 주인경은 숙희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기도 하고 소풍도 함께 간다. 주경일 입장에서는 꿈같은 시간이지만 숙희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같은 병원의 닥터 박이다. 주경일은 숙희를 다시 만나려고 꾀병까지 부려 병원에 입원한다. 금식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소주에 족발까지 먹다가 숙희에게 들키는 장면이 재미있다.
한편 동네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박원숙은 주경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주경일의 눈은 숙희에게만 가 있으니 속이 편할 리 없다. 질투에 술까지 마신 박원숙은 이주일과 함께 여관에 가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게 참 얄궂다.
이 영화는 이주일이 주인공인 만큼 코미디가 중심이지만, 의외로 드라마적인 요소가 짙다. 부모 없이 자란 주경일에게 가족이라고는 하나뿐인 여동생뿐이다. 둘이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여동생은 오빠가 못마땅해하는 공사판 노동자 민호와 자꾸 어울린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민호는 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민호에게 오히려 결혼을 권하게 된 주경일. 하지만 이번에는 여동생이 결혼을 거부한다. 없는 살림에서 민호와 함께 시작해 꿈을 이루는 게 소원이었는데, 자신만 좋은 집으로 시집가면 오빠 혼자 남아 고생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엇갈리는 모습이 당시로는 짠하다. 그렇게 미워하던 민호에게 연애 상담까지 받는 주경일의 모습도 재미있다.
영화에는 당시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시절이다. 휴대전화도 없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직접 찾아가야 했고, 만나기로 한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연락 한 통이면 해결될 일도 발품을 팔아야 했던 시대. 그런 풍경이 지금 보면 오히려 낯설고 정겹다. 80년대 서울의 아파트 단지와 거리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이주일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미디에 드라마적인 감정까지 얹으니 영화가 제법 풍성해진다. 여기에 천사 같은 원미경까지. 허리가 한 뼘이나 될까 싶을 만큼 가냘픈 원미경의 마음을 얻으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이주일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사랑 앞에서는 서툴러지는 남자다. 그래서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https://youtu.be/77nWFJzSE6g?si=GYTI4RlL95kUkN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