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판타지지만 몹시 현실적이다.


15살의 리쿠와 마나미는 어느 날 몸이 바뀐다. 처음에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15년이 흘러 두 사람은 어느덧 30살이 된다.


몸이 바뀌는 설정의 영화는 대개 그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코미디로 풀어간다. 내가 처음 본 바디 체인지 영화는 김소연과 정준이 출연한 우리 영화 [체인지]였다. 일본 영화 [전학생]을 각색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는 안나 페리스와 레이첼 맥아담스, 롭 슈나이더가 출연한 [핫칙]이 있다. 남녀의 몸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이 꽤 재미있었던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몸이 바뀐다는 황당한 설정을 가져왔으면서도 정작 영화는 판타지의 즐거움에 기대지 않는다. 친구의 부모를 자신의 부모처럼 대해야 하고, 낯선 몸으로 살아가면서 그 몸을 관리해야 한다. 서로의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기억을 나눠야 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고, 여자가 남자의 몸으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15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첫사랑을 겪고, 진학하고, 취업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했다. 어느새 바뀐 몸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그 삶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생겼다. 그런데 마나미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낸다. 반가워해야 할 소식인데 마냥 그렇지도 않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쿠의 몸으로 살아온 마나미에게는 이미 직장도 있고 배우자도 있으며 딸까지 있다. 이제 와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건 단순히 외모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상실의 위협인 것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시간을 교차해 보여준다. 어느 날 마나미의 몸으로 살아가는 리쿠에게 연락이 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장례식장을 찾은 리쿠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펑펑 울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테니까. 슬픔조차 자기 모습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장면에서 영화가 얼마나 집요하게 현실을 붙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는 건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자신이 내린 선택이 맞는지 고민하고, 때로는 그 삶에 짓눌리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만약 내가 죽으면 내 몸으로 살아가던 친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자기 마음대로 삶을 바꾸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고, 회사에 가면 이름보다 직함으로 불린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과 모습은 뒤로 밀려나고 맡은 역할에 맞춰 살아간다. 원하지 않아도 타인의 기대 속에서 살아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빌려 살면서도 그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내팽개칠 수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바뀌었지만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관계까지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영화는 꽤 영리하다. 두 사람이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을 단순한 해피엔딩의 신호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살아온 삶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묻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질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https://youtu.be/lYA-SIEZrYI?si=01pragU4q2T4a6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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