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에 베스트셀러극장 1화가 올라왔기에 봤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83년 11월에 시작한 베스트셀러극장은 옆 방송국의 TV문학관과는 결이 달랐다. 문학적인 분위기보다는 대중적인 재미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그런데 첫 회부터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김성종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지금 봐도 이야기가 꽤 탄탄하다. 당시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조차 없었을 텐데, 그 심리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수사극으로서의 재미도 제법 있다.
정애리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도회적인 얼굴이어서 그런지 시골에서 올라온 인물인데도 어딘가 남다르게 보인다. 네 자매 중 맏이로 집안일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여자다. 그런데 꿈과 미래에 대한 욕심이랄까, 허영이랄까, 그런 면이 있다. 사귀는 남자친구는 갈수록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버스에서 이정길을 우연히 만난다. 담배 연기 때문에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뀐다. 모던하고 남자다운 이정길에게 끌린 정애리는 결국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고 이정길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집에는 소설책이 가득하다. 전 남자친구와는 달리 이정길은 쿨하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가도 좋다는 식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문제는 정애리가 아는 언니 김애경의 소개로 대기업 회장 김무생의 비서로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 정애리는 이정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무생이 고백하자 아이를 낙태한다. 그 일을 계기로 이정길 안에 잠들어 있던 사이코패스의 본성이 드러난다. 낙태를 집도한 의사를 시작으로 하나씩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 근처에는 정애리의 전 남자친구를 범인으로 몰 만한 증거를 남긴다.
지금은 CCTV도 휴대전화도 흔한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려면 결국 현장에 남은 흔적과 사람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 이정길은 그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수사를 맡은 전운이 차근차근 뒤를 쫓으면서 극은 점점 긴장감을 높여 간다. 마지막에는 회장과 정애리의 결혼식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83년이라는 시대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들도 보이고, 한창 젊었던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배우들도 있다. 익숙한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무엇보다 오래된 드라마라고 해서 느긋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회부터 이런 미스터리를 보여줄 줄은 몰랐다. TV문학관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