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 시즌 4가 끝나자마자 '니글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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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 마지막 장면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지하철역에서 리처가 노숙하는 할머니에게 샌드위치의 반을 건네고 둘이 나눠 먹을 때, 어두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그 순간 햇빛이 비친다. 리처라는 인간을 생각하면 이상할 만큼 조용하고 따뜻한 장면이었다. 사람을 때려눕히는 장면보다 그 장면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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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니글리'가 시작된다. 첫 화부터 리처가 잠깐 모습을 보인다. 니글리를 도와주고 다시 사라진다. 마치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보라는 듯하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리처가 사라진 자리를 니글리가 이어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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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작품은 아니다. 니글리라는 인물을 가져와 그 사람의 성격과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래서 '리처'처럼 이미 짜여 있는 거대한 원작의 구조를 따라가는 느낌은 덜하다. 대신 니글리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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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작부터 상당히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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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자가 옷을 홀딱 벗은 채 지하철에 몸을 부딪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곧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충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보인다. 이단종교집단이 있고,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약물이 있고, 사회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사람들을 끌어들여 실험을 하고, 이용하고, 결국 비밀을 알리려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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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는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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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올린 '굿모닝 베로니카'도 시즌 2는 이단종교를 둘러싼 사건이었다. '모범택시'에서도 비슷한 소재가 등장했고, 연상호가 원작을 쓴 '사이비' 시리즈도 종교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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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종교에 빠지는 것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믿음과 외로움, 불안 같은 것을 누군가 이용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곳에 빠져버리면 남은 사람은 어디까지 따라가야 할까. 돈을 가져다 바치고, 가족이 무너지고, 그 사람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가족 전체가 망가지는 일도 현실에서는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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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소재를 보면 단순히 악당을 찾아서 때려잡는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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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글리 역시 혼자 움직이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리처처럼 결국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는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제3의 인물들을 끌어들여 사건을 파헤친다. 그게 니글리라는 캐릭터의 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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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리처보다 액션이 약하면 어쩌나 싶었다. 리처는 사람이 아니라 거의 걸어 다니는 중장비에 가까우니까. 누군가를 한 대 때리면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날 것 같은 액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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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니글리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리처와 똑같을 필요가 없다. 니글리에게는 니글리만의 방식이 있다. 몸으로 밀어붙이는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황을 읽고 움직이는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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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니글리라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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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와 함께 있을 때는 늘 리처 옆에 있는 유능한 동료 정도로 보였는데, 혼자 세워놓으니 그 사람에게도 과거가 있고 상처가 있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원래 조연이었던 사람이 주인공이 되면 이런 재미가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뒷면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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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화를 보려고 하는 중이라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줄거리가 어느 정도 보인다는 점은 오히려 마음에 든다. 요즘은 반전을 만들기 위해 반전을 쌓아 올리는 작품도 많은데, 이건 처음부터 보이는 악의 구조를 조금씩 파헤치는 쪽이다. 그러면서 니글리라는 사람을 따라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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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이야기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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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 마사키가 야마가미 데쓰야를 연기한다는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도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제작이 중단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공개된 각본에 실제 사건과 전혀 다른 설정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총격범을 진범이 아닌 희생양으로 만들고, 뒤에 종교단체가 있으며 진짜 암살자는 한국인 히트맨이라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가져왔으면서 완전히 다른 음모극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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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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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에는 이미 종교 문제와 가족의 붕괴, 돈, 원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처럼 영화로 만들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가상의 한국인 암살자를 집어넣어 버리면 현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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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 필요는 없다. 창작자는 얼마든지 허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실제 인물과 실제 살인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보는 사람도 계속 의식하게 된다. 특히 정치인 암살처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사건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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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히려 《니글리》 같은 작품이 편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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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라는 걸 알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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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종교도, 약물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모두 현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소재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장르적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니 일단 니글리가 어떻게 사건을 파헤치는지를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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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직 2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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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가 떠난 자리에 니글리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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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처럼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앞으로 이 사람이 어디까지 파고들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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