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통쾌해서가 아니다. 쾌변을 하고 난 뒤처럼 개운해서도 아니다.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난 뒤처럼, 그냥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이야기가 롤러코스터처럼 크게 굽이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 곁에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렇게 오래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주인공 이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절의 서울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마라톤을 하고, 뜀틀을 넘고,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뛰어다닌다. 거리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방앗간과 카세트테이프 가게, 레코드 가게가 보인다. 파란 비닐우산도 등장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옛날 소품’으로 배경에 놓여 있지 않다. 하나하나 세심하고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빵집의 TV에서는 린다 카터가 출연한 '원더우먼'이 나오고, 벽에는 그 시절 달력이 걸려 있다. 골목 벽에는 '별들의 고향'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화 초반부터 김만수의 ‘푸른시절’이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 하나만으로도 1970년대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람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영화관 간판도 좋다.

그 영화관에서 이랑이 '러브 스토리'를 보며 눈물 콧물을 쏟는 장면도 재미있다. 이후 장면을 보면 이랑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히 어느 한 시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풍경이 섞여 있다. 특정한 한 해를 재현했다기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가던 시절의 모습을 한데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풍경이 옛날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대사도 재미있다. 억지로 문학적인 표현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여학생들을 보며 남학생들이 “쟤 얼굴이 우리 엄마 닮았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철수가 학교 옥상에서 커다란 방패연을 만들어 몸에 묶고 뛰어내리려 하자, 친구들이 “야, 영희랑 놀아야지. 너 죽으면 교과서 바뀐다” 같은 대사들. 이런 대사가 참 좋다.

멋을 부린 말이 아니라, 그 나이의 아이들이 실제로 할 법한 말이라서 웃긴다. 철수와 이랑이 가까워지는 과정도 좋다. 둘 다 이성에 대해 제대로 경험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운명적인 사랑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색하고 서툰 채로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며 가까워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쓰윽. 이랑이 철수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아이들과는 참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그런 사소한 차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 공기가 참 예쁘다. 수채화처럼 번지는 색감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서울의 골목과 학교, 사람들의 옷차림이 모두 조금씩 빛바랜 듯하지만,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동의 만화거리에도 영화 속 장면들이 벽화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실제 거리의 벽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랑에게 달리기는 전부였다. 늘 1등을 하던 이랑은 어느 날 달리기 시합에서 다른 아이에게 추월당한다. 그리고 일부러 넘어져버린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 믿고 있다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랑에게는 그날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배신당한 듯한 기분. 나는 이 장면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수민을 바라보는 이랑의 마음도 그렇다. 수민은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고 있어 예뻐 보인다. 이랑은 엄마에게 자기 교복은 왜 이렇게 크냐고 투덜거린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영화가 끝난 뒤까지 계속 생각난다. 아마 성장이라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사건 하나로 사람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사소한 일들이 계속 마음을 건드린다.

친구 때문에 흔들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밀려나고, 나보다 예쁜 아이를 보며 질투하고,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안재훈 감독이 연출했고, 각본은 '은중과 상연'의 송혜진 작가가 맡았다. 현실적인 감정과 잔잔한 여운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감성이 영화 곳곳에 잘 배어 있다. 거창한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랑과 철수가 겪는 성장의 순간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아가미'도 안재훈 감독의 작품이다. 구병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두 영화를 이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성장통은 그런 것 같다. 눈을 떴다가 다시 눈을 감는 하루 동안에도 계속 마음을 찌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상처받으면서 조금씩 자라난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내가 잠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분이 좋다. 특별히 신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오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난 사람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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