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에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로였다. 이게 무슨 재미야?’ 싶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재미있게 봤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정도 꽤 재미있고, 곳곳에 코믹한 장면을 심어놓았다. 무엇보다 애비게일이 연기를 잘했다. 자기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뱀파이어의 표정. 그게 꽤 능글맞다. 특히 혼자서는 안 되니까 손을 내밀며 같이 힘을 합쳐서 처죽이자고, 파이팅까지 하는 장면은 웃겼다.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뱀파이어인데 하는 짓은 묘하게 귀엽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코믹한 구석을 가지고 있다. 누가 특별히 웃기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서 웃음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캐서린 뉴튼이 재미있었다. 까불까불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잘 헤쳐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애비게일에게 속내를 모조리 간파당한다. 그리고 뱀파이어에게 물려버린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된 모습이 참 웃긴다. 무섭다기보다 ‘큭큭’ 웃게 만든다. 캐서린 뉴튼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까불거리는 느낌이 뱀파이어가 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더 그렇다. 그리고 딘 역의 앵거스 클라우드. 영화에서 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가 제일 먼저 목이 잘려 죽는 인물이다. 그런데 앵거스 클라우드는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해인 2023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포리아] 에서도 마약상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 사실을 알고 보니 영화 속 모습이 묘하게 다르게 보였다. 배우의 실제 삶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가끔 이런 기분을 준다. 영화 자체는 1936년에 나온 [뱀파이어의 딸]을 바탕으로 했다. 뱀파이어인 애비게일이 먹잇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꼬드기고, 가지고 놀다가 하나씩 죽여버리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반전도 하나 던진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그런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설정이 꽤 재미있었다. 요즘 공포영화가 워낙 가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영화가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꽤 재미있는 공포영화가 되어 있었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사람을 계속 놀라게 하고 피가 철철 흐른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고어가 심한 영화들을 보면 어느 순간부터 무섭다기보다 피곤해진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면 징그럽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애비게일]은 적당하다. 잔인한 장면이 없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역겹지는 않다. 피가 나오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중간중간 웃기는 장면이 끼어들고 배우들이 그걸 잘 받아낸다. 그래서였을까. 2024년의 나는 ‘이게 무슨 재미야?’ 하면서 봤는데, 2026년에 다시 본 나는 꽤 재미있게 봤다. 영화도 가끔은 보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영화인데 내가 달라진 건지, 영화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