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평론가들 중 몇몇은 하루키는 단편소설 작가라고 했다. 그 말은 장편소설은 호흡이 너무 길고 이야기가 어쩌고저쩌고 해서 별로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하루키의 중단편 소설이 영화가 많이 된 것만큼 어쩌면 레이먼드 카버처럼 단편소설가에 적합한지도 모르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읽는 재미가 있다.


그중 가장 긴 이야기에 속하는 일큐팔사 역시 재미있었다. 하루키 장편의 장점이라면 두 세계가 쪼개진다. 신작과 일각수의 꿈도 현실과 세계의 끝으로 나뉘고, 어둠의 저편에서도 현실과 알파빌로 나뉜다. 상실의 시대는 나오코의 세계와 미도리의 세계, 댄스 댄스 댄스와 양. 쫓. 모는 현실과 돌고래 호텔의 세계로 나뉜다.


일큐팔사 역시 두 세계로 나뉜다. 1984년과 1q84년. 두 개의 달이 뜬 세계에서 덴고와 아오마메는 만난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 각각 두 개의 달을 보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일큐팔시에는 여러 세계가 나온다. 고양이 마을이 나오고, 후카에리가 살았던 산속의 마을이 나오고, 시청료를 받으러 다녔던 덴고의 어린 시절, 종교에 접합한 부모를 따라 포교활동을 하던 아오마메의 어린 시절, 그리고 공기번데기 등 상상력을 끌어올려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세계들이 있었다.


일그러진 세계에서 두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사랑이었다.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주인공이 16살의 소녀를 만났을 때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것 같았다’라고 했다.


덴고와 아오마메 역시 그 어릴 때 딱 한 번 손을 잡았을 때 그 순수한 심정으로 사랑을 느끼고 그 감정을 손을 오므리고 내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일그러진 세계, 두 개의 달이 뜬 세계에서야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아오마메가 수도 고속도로의 계단을 오르는 순간부터, 후카에리, 공기번데기와 두 개의 달을 바라보는 덴고와 아오마까지 사람들은 일큐팔사의 세계를 잘 표현했다. 다른 장편 소설에 비해 일큐팔사의 일러스트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보면 이 이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