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고야스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고야스 일가의 무덤은 매우 심플한 묘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놀리스처럼 매끈하고 평평한 돌에(상당히 값나가는 석재) 세 사람의 이름이 반듯한 서체로 새겨져 있는 모습을 본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 역시 아주 심플하다. 지루하지만 그 속을 잘 파헤치면 마음의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특히 테마곡이 흐를 때면 그동안 지금껏 봐왔던 영화의 역사가 찰나로 지나가면서 그 중심에 인간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니체를 관통하고 하루키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에세이에서 여러 번 언급을 했다.


주인공이 고야스의, 고야스 가족의 묘비 앞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린 건 하루키 자신이 하루키 자신의 묘비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는 달리기 에세이에서 자신의 묘비도 아주 간단하게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인가? 그 정도의 짤막한 글귀로 묘비에 새기고 싶다고 했다.


하루키가 거장이고 우리보다 앞서 나간 생각과 사고를 하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고야스 묘비 앞에 선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 되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육체는 육체고 정신은 정신이고. 죽고 나면 죽음 그 이후는 영혼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Zilch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무의 상태가 되는 것이 결코 행복하고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육체를 잃은 영혼은 끝내 사라지고 만다. 아무것도 없고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만다.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잃은 고야스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는 어쩌면 현실적 무의 상태로 도서관을 운영하며 삶을 견뎌왔을지 모른다. 고야스의 죽음은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고야스 가족의 묘비를 보는 주인공에게 하루키 자신이 이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밀란 쿤데라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개입을 해 버렸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느낌까지 들었다. 하루키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버린 느낌. 그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눈물도 혈액과 마찬가지로 온기를 지닌 몸에서 짜낸 것이다. 살아있으니 눈물을 흘릴 수 있다. 하루키도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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