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사진집이라고 하는 이 책은 하루키 에세이 우천염전의 사진 버전이라고 봐야 할까 싶다. 우천염전 에세이는 여행기라고 하나 먼 북소리와 다르고, 라오스에는~~ 과도 다른, 개고생을 거듭하는데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하루키만의 유쾌한 직유로 풀어내는 에세이였다.


우천염전을 비롯해서 여기 사진집의 사진은 하루키를 따라나선 에이조 군이 맡았다. 그 이전의 여행기에서 사진은 주로 아내인 요코 씨가 맡았다. 하루키 뉘앙스로 에이조 군보다 요코 씨의 사진이 좀 더 프로 같다. 그러나 하루키는 좀 덜 프로 같은 에이조 군의 사진을 좋아한다. 요코 씨도 사진작가이니 요코 씨의 사진은 즉 돈을 받고 팔아 버려도 될 법하다.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유키의 엄마로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나온다. 소설가인 남편 마키무라 히라쿠와는 떨어져 외팔이 남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진작가는 사진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이다. 유키의 엄마이자 사진작가로 나오는 캐릭터는 하루키가 아내인 요코 씨를 염두에 두고 그려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태엽 감는 새 이후 노몬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해서 여러 험난하고 위험한 곳을 여행하느라 아내보다는 에이조 군이 따라나서게 되었다. 에이조 군의 사진을 보면 하루키의 말대로 소박함에서 묻어나는 일상의 노력들이 보인다.


우천염전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글이 좋다. 하루키의 헤실헤실 키득키득 류의 에세이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군데군데 소설적 암시적인 문장이 가득하다.


[그것은 어쩌면 ‘바다’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같은 문장이 우천염전에는 가득하고, 2편 격인 사진집으로 여행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전부 에이조 군이 담았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소박하고 투박하다. 그래서 흙의 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질감의 사진이라 그 속의 인간들의 생생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 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사진이 좋다.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은 감탄이 있지만 감동은 좀 드물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 사람이 있으면 스토리가 피어난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사람을 담은 사진이다. 물론 팔리지 않고 돈은 덜 되겠지만.


브레드 피트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 생각나는 이 사진을 보면 알래스카를 사랑한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숭고한 자연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 에세이는 무척이나 좋다. 사실 사진으로만 본다면 하루키의 여행법 보다 몇 배는 더 좋다. 대자연의 경외를 고스란히 에세이에 쏟아부었다. 거대한 그리즐리가 야영하는 텐트 안으로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아내며 죽어 버린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부족한 면을 에이조 군이 담은 사진과 함께 인간의 발자취 내지는 흔적을 찾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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