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월 7일) 하루키의 신작이 도착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사람들이 일괄적으로 9월 7일에 대부분 받아서 포스팅을 했다.


하루키 팬들, 일명 하루키스트들은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 출간에 몹시 흥분한 상태들이었다. 나도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사실 굉장한 감격과 엄청난 찬양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니, 이 정도로 좋아할 일이야? 같은 포스팅이 많아서 좀 놀랐다.


어제는 받자마자 읽으려고 펼치니 졸음이 쏟아지고, 잠을 깨고 다시 책을 펼치니 다시 잠이 쏟아져서 읽기를 포기했다. 예전부터 바쁠 때 그 시간에 틈입하여 책을 읽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좀 읽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좀 읽고, 기다리면서 책을 읽던 습관 때문인지 멀쩡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읽으려니 잠이 쏟아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나의 사소한 행복을 방해했다.


여하튼 하루키는 팬들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작가의 후기) 원래 중편 소설을 늘려서 장편으로 내놓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설가의 스타일은 많다. 소설가뿐 아니라 예술가들, 애니메이션 작가도 그렇다.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켄타로는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작화를 매일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89년부터 연재를 해서 아직 못 끝냈으니 대단한 작품이고 걸작이다.


사람들은 어쩌다 천재 같은 소설을 써내는 소설가보다는 꾸준히 소설과 에세이를 출판하는 것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 속을 벌리면 문체라든가 작가 정신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기본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매일 한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나도 그 점이 좋다. 10여 전에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설령 미완성이든 작법이 엉망이든 문체가 이상하든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그냥 매일 조금씩 쓴다,라고 정했다. 그렇게 정했을 때에는 의지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점점 줄여 나갔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술자리, 쓸데없는 약속 같은 것들을 하나씩 쳐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재는 친구들에게 미움을 쌌는지 죄다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불만이나 후회는 없다. 만약 예전처럼 친구들과 늘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시답잖은 이야기나 매일 늘어놓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소식을 듣는 친구들은 회식에 친구들과의 잦은 술자리 때문인지 몸이 너무 불어났다.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대신 매일 조금씩 글을 쓸 수 있었고 매일 조깅을 했고 그 덕분인지 문예지에 단편 소설이 실려 2년이나 연재를 할 수 있었고, 종이책도 출간할 수 있었고, 밀리의 서재에서 연락이 와서 전자책으로 단편 소설집도 나올 수 있었다.


오르한 파묵은 좋은 소설가란 똑똑한 것도 아니며 화려한 문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매일 꾸준하게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라고 말했다. 헤밍웨이도 매일 글을 적다가 오늘 좀 많이 작업했다 싶으면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덜 작업을 해서 그 균형을 맞추었다.


나는 남들보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매일매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런 습관은 누군가에게 잘 못 보일 수는 있으나 잘 보이기는 힘들다) 하는 건 아니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도 하지 않는다. 오직 한 달 전의 나, 일 년 전의 나와 비교를 한다. 그때보다 지금이 글 쓰는 것이 좀 더 나아졌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인간은 매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밥을 매일 먹어야 한다. 잠도 매일 자야 하고 똥오줌도 매일 놔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진다. 지극히 간단한 문제를 우리는 가끔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매일 밥을 먹으니 매일 조깅을 하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자. 아주 간단하다. 20년 전에 비해서 요즘은 글을 쓰는 게 더 수월해졌다. 예전에는 불빛과 책상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 머리에 뭔가가 떠오르면 그대로 폰이나 태블릿에 메모를 하면 그만이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소식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하루키 소식

하루키의 신작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목각 애장판을 딱 300부만 제작해서 판매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미 다 팔렸겠지요.


하루키의 장편이 일본에서 애장판을 발매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특별 사양의 제작에 따라 시간이 걸려 주문하자마자 바로 받지는 못 할 텐데요.


애장판 사양은 하루키 사인이 들어간 호두나무 케이스에 호일 각인 방식의 저자명이 들어가고 속지도 좋고 아무튼 그렇다네요. 제작 부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달랑 300부 한정이구요.


문제는 가격이 10만 엔, 우리 돈으로 100만 원 정도 하는데, 엄청 비싼데 금방 팔려 나갔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고급스럽고 몹시 탐나는 물건이에요. 돈을 떠나서 아 손에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애장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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