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80년 문예지에 발표되었던 세계의 끝 부분의 원작에 해당되는 소설로 미완성작품이라고 생각한 하루키가 단행본에 수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 곧 나올 신작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원작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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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름은 없다. 18세의 여름 풀밭 위의 추억 그것뿐이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름은 없다. 냇물도 이름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룰이었다. 우리의 머리 위에 희미한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별에도 이름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이름 없는 세계의 풀밭 위로 침전해 가고 있었다.


"거리는 높은 벽에 둘러 쌓여 있어"라고 너는 말했다.

"넓은 거리는 아니지만 숨 막힐 만큼 좁지도 않아."


이렇게 하여 거리는 벽을 갖게 되었다. 네가 계속 말했던 거리는 한줄기의 강과 세 개의 다리를 갖고 망루와 도서관을, 그리고 버려진 주물공장과 가난한 공동주택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의 석양의 뜨거운 빛 속에서 나와 너는 어깨를 움츠리듯 그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그 벽에 쌓인 거리의 가운데야"라고 너는 말했다.

"그러나 18년이 걸렸어. 그 거리를 찾는데... 그리고 진실한 나를 바라보는데."

"그 거리에서 도대체 너는 무엇을 하고 있지?"라고 나는 물었다.

"도서관에서 일하지." 너는 당당하게 말했다.

"일은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그곳에 가면 정말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응, 물론 네가 그 거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약.."


너는 그 부분에서 입을 다물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나는 말 못 한 너의 이야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네가 정말로 나를 바란다면 그것이 너의 말이었다. 나는 너를 안았다. 그러나 그 여름 황혼 속에 내가 안았던 선 그저 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너는 벽에 둘러 쌓였던 거리 속에 있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사과나무가 자라고 짐승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가난하고 오래된 공동주택에 살며 검은 빵과 사과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짐승들은 나뭇잎과 나무 열매를 먹고 긴 겨울에는 그 반수가 굶주림으로 죽었다. 어째서 나는 그 거리에서 돌아가고 싶다고 바라게 되었을까.


“거리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야”라고 너는 말했다.

“그리고 나오는 일도.”

“어떻게 하면 되지?”

“바람을 가져, 지금보다도 더욱 강하게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거리에 살 수 있게 돼. 얼마만큼 긴 시간이 걸려도 체념하지 말고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라도... 너를 위한 장소도 계속 놓아둘게.”

“나를 위한 장소.”

“그래 하나정도 빈 곳이 있어. 너는 그 거리에서 예언자야.”

“예언자?” 나는 웃었다.

“나는 예언 따위는 할 수 없어.”

“아무 예언도 하지 않아도 좋아. 손님을 얻을 필요도 없으니까. 예언자는 도서관의 서고에서 오랜 꿈의 정리를 하는 일만 하면 돼. 나도 그 일을 도와주지.”

“오랜 꿈.”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의 팔 속에서 너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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