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페이는 새로운 곤충을 채집하여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일이 목표가 되었다. 생물이 전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모래사막 속에서 끝까지 살아서 생존하는 곤충은 적응력,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학교 업무에 지쳐가던 쥰페이는 척박한 곳에서도 살아가는 곤충을 채집하러 사구가 많은 바닷가로 간다. 모래 때문에 벌레가 전혀 살 것 같지 않은데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곤충을 찾아낸다.


모래는 생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쉴틈도 없이 흘러 다닌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말이다. 매일 반복된 생활 속에서 어딘가에 매달려 있기만 할 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한다면 이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모래가 움직이는 모습은 쥰페이를 점점 흥분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때,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무슨 조사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곤충채집을 합니다. 아? 그래요?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군요. 정부요? 아닙니다, 저는 학교 선생입니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이시군요.


마을 사람은 쥰페이에게 막차가 끊겼으니 원한다면 묵을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의 안내를 받고 간 곳은 기묘한 집이었다. 넓은 모래 구덩이 안에 붙어 있는 집은 곧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잘 도 버티고 있었다. 마을 사람의 말을 듣고 하룻밤만 마을에서 묵기로 한다. 묵을 집은 거대한 모래 구덩이를 줄로 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있는 민박 집이었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살고 있고 전등도 하나뿐이다. 여자는 30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다.


그날 저녁 쥰페이는 여자에게 식사를 제공받는데 여자는 큰 우산을 쥰페이 머리 위에 대어 준다. 모래가 떨어져요. 모래는 온 집에 떨어졌고 지내는 게 만만찮았다. 쥰페이는 날이 밝는 대로 마을을 나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자는 기묘한 말을 한다. 첫날에는 누구나 적응을 하지 못해요. 쥰페이는 내일 나갈 텐데 왜 그런 말을 하죠? 묻지만 여자는 밤에 일을 한다.


여자는 밤새 모래를 퍼 내는 일을 했다. 모래를 퍼내고 또 퍼내고 계속 퍼낸다. 오로지 모래를 퍼내는 일만 한다. 모래는 마치 여자를 속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모래가 계속 쌓이기 때문에 밤새도록 모래를 퍼내는 것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를 이런 곳에 붙잡아 놓고 이런 일을 매일 시킨다는 것에 쥰페이는 화가 났고 아무렇지 않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 여자에게도 화가 났다.


아침에 쥰페이가 눈을 뜨니 밤새 모래를 퍼내는 일을 하고 발가벗고 잠들어 있는 여자. 쥰페이는 옷을 입고 집을 나가려는데 사다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곳에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다리를 치운 마을 사람들은 쥰페이를 모래사막 한가운데 여자와 함께 가둬둔 것이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모래 속에서 발버둥 치는 곤충이 된 셈이다.


쥰페이는 한낮에 모래 구덩이 위를 올라가려다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고, 여자를 미끼로 마을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했으며, 탈출을 위해 여자에게 협조를 하기도 했다. 쥰페이는 여자와 함께 매일 비슷하고 반복된 일을 하며 지낸다.


왜 이곳을 나갈 생각을 안 하나요? 쥰페이가 묻는다. 이곳에서 나가면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을 한다. 두 사람은 모래 때문에 옷을 벗고 잠들어야 했고 같이 잠을 자는 관계가 된다.


그러다가 쥰페이는 탈출에 성공을 한다. 마을 사람들을 들개를 대동하여 쥰페이를 잡으러 오고 쥰페이는 마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 보지만 푹푹 빠지는 모래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러다가 결국 모래 늪에 빠져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결국 다시 여자 곁으로 돌아온 쥰페이.


여자를 보며 실패했다고 말한다. 여자는 쥰페이를 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여기서 순조롭게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배급받던 물을 내려주지 않는다. 쥰페이는 목이 말라 미치려고 한다. 결국 물을 담아 두었던 통에 깔린 물에 젖은 모래를 먹다가 구토를 한다.


쥰페이는 절망에 빠진다. 하루만 있고자 했던 곳에서 일주일, 몇 달이 흘렀다. 여자와는 살을 맞대며 이 반복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작은 희망고문을 한다. 쥰페이는 탈출을 하기 위해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통을 넣고 까마귀 미끼를 넣는다. 까마귀가 걸려들면 구해 달라는 편지를 써  다리에 묶어 날려 보낼 셈이다. 그런데 확인해 본 통에는 까마귀는 잡혀 있지 않고 맑은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모래가 물을 만들었다. 이 방법을 좀 더 연구하면 마을에도 물을 많이 마실 수 있고 이렇게 고립되어 노예가 되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유수장치에 관한 일지를 매일 기록한다. 탈출은 더 후에 해도 된다. 굳이 오늘 바로 탈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 유수 장치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들이 이 마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자와 함께 부업을 하여 여자가 원하는 라디오를 구입하는 것이다. 비로소 작은 희망을 찾은 쥰페이.


여자는 잠들어 눈을 뜨기가 무섭다. 옆에 쥰페이가 없을까 봐. 그러다가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고 배가 아파 마을 사람들이 여자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사다리를 걷어 가지 않았다. 쥰페이는 탈출할 기회가 와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쥰페이는 생각한다. 자유가 뭔지, 순응하고 복종하는 게 뭔지.


복종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 처절하게 매달리는 게 복종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삶에 복종당하는 게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다. 하루가 일 년이 될 줄 몰랐던 쥰페이는 7년이나 모래 속에 가둔 곤충처럼 지낸다. 하지만 자유로워 모든 것이 반복의 불확실한 7년 전의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아도 가능성이 있는 희미한 그림자 쪽을 택한 쥰페이는 모래 속의 여자와 함께 살아간다. 미끼이자 인질이자 동반자인 여자는 모래와 같다.


정부는 7년이나 나타나지 않은 쥰페이를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이름을 올린다. 쥰페이는 곤충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려 했지만 실종자로 이름이 올라가는 아이러니가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아베 코보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너무나 재미있게 볼 영화다. 소설 속에서 쥰페이의 바깥세상은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라고 했다. 기묘하게 불편하고 기묘하게 설득되다가 기묘하게 공감을 원한다면, 최고의 소설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면 봐도 좋을 ‘모래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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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4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런 상황에 처한 인간의 행동패턴을 살펴볼 수 있네요. 그럼에도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옹, 모래사막이라는 현실에 빠져 적절히 그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쥰페이.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란 생각이 드네요.

교관 2023-06-25 12:19   좋아요 0 | URL
너무 좋은 댓글입니다. 선택 앞에서는 늘 불안하고 겁이나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