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 하루키


하루키처럼 어른이 된 사람들은 누구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 나는 라디오를 매일 듣는데 라디오 속에는 티브이와 다르게 사람들의 너무나 소소하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고로 사람들은 생각만큼 메마른 사막처럼 지내지 않고 생각이상으로 자신만의 소확행을 확실하게 쫓아가고 있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관찰하기 위해 인간은 가능한 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하루키


느긋하지만 부지런하고, 타이트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자유한 영혼을 가지고 건강한 생각과 몸을 죽 끌고 가는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생각과 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은유이자 이데아인 것이다. 하루키는 통신판매로 싸구려 캐릭터 손목시계를 구입하고 좋아한다. 여러 개를 번갈아 차고 다니며 시간을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안달해 봤자, 기껏해야 이것이 인생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는데, 나는 언제쯤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오래전에 통신판매, 쿠팡이겠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무려 이만 원이나 하는 감성의 돌핀 손목시계. 무려 와이파이로 시간을 정확하게 알아서 맞춰준다. 무려 배터리가 필요 없이 태양열로 생명을 유지한다. 사진 속 하루키의 시계 속에는 하루를 삼등분해서 먹기, 자기, 놀기로 나온다. 전자시계는 그렇게 나눌 수 없어 안타깝지만 삼분할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식으로 나눌 수 있을까.

나의 손목시계는 스마트하지 않다.


사실 지금은 손목시계가 필요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기 때문인지 시계가 예전에 비해 세상에 더 늘어난 기분이다. 이제 더 이상 길거리에서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손목시계가 필요 없는 시대인데 예전에 비해 손목에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많아졌다. 손목시계의 종류와 질은 끝도 없이 올라가고 많아졌다. 무엇보다 스마트한 손목시계가 나타났다.


휴대전화에 시간이 나오기 때문에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시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럼에도 손목에 손목시계 하나씩은 대체로 차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나온 이후는 정말 손목시계는 누구나 차고 있다. 이 세상에 소멸한 것 중에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 역시 소멸했다. 이제 그런 모습을 보려면 70년대 영화 고교얄개에서나 봐야 할 것 같다.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차고 헐렁헐렁한 채로 사진을 찍은 모습이 많다. 아버지의 손목시계가 지금의 내가 차고 있는 그런 전자시계였다. 쇠로 된 시계줄이 있는, 손석희 시계 같은, 그런 전자시계. 팔목이 가는 나에게 아버지의 손목시계는 너무나 커서 헐렁했는데 그 착용감이 좋았다. 이렇게 비틀비틀 손목을 흔들면 시계의 무게가 느껴졌다. 꼭 아버지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또 어릴 때에는 외할머니의 시계도 좋아했다. 외할머니의 손목시계는 초시계였는데 초시계를 볼 줄도 모르면서 외할머니의 가죽 줄의 초침시계를 차고 있으면 뭔가 있어 보였다. 어이없는 분별력으로 잘도 차고 다녔다.

유튜브에는 시계 마니아들이 많아서 손목시계에 관한 영상들도 아주 많다. 손목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부품들이, 가장 작은 공간에, 가장 많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시간을 재깍재깍 움직이는 것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종류도 워낙 많아서 항공 크로노프 초침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다이버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죽줄이 어울리는 시계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 전자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 - 요컨대 남자들이 환장하는 롤렉스부터 오데마피게 로열오크, IWC, 파텍? 뭐더라? 태그호이어 등. 내가 좋아하는 지샥도 만 원짜리부터 아주 비싼 시계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내가 지샥 손목시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만 나는 거의 시계를 빼지 않는다. 조깅을 할 때에도, 샤워를 할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차고 잔다. 풀었다가 찼다가 하는 게 너무 귀찮다. 그래서 충전해야 하는 스마트폰은 별로였다.


별로 비싸지 않기 때문에(6, 8만 원 정도) 부담 없이 착용하다가 고장 나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시계로 갈아타면 되는데 아직 고장도, 싫증도 나지 않고 있다. 몇 년을 거의 매일 빼지 않고 착용하고 있는데 아직 새것 같다.


우리나라는 시계로 유명한 회사가 없다. 예전에 한독시계가 있었고, 거기서 돌핀 전자시계가 유명했다. 한독시계도 한없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났는지 잘 볼 수 없다. 위의 사진처럼 돌핀 전자시계는 저렇게 생겼고 가격이 무척 저렴하고 태양빛으로 생명이 계속 이어지며, 와이파이로 시간을 아주 정확하게 알아서 맞춘다. 저렴한 데다 시계의 기능을 충실히 해줘서 내가 원하는 손목시계인데 잘 차고 다니지 않는다. 너무 굵다. 그게 단점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큰 단점인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이 잘 간다고 해서 손목시계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에 강변에서 조깅을 하다가 멈춰서 몸을 풀고 있는데 한 어머님이 와서 시간을 물어보았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시간을 보고 알려주었다. 손목에 멀쩡하게 시계를 착용하고 있으면서.

이 지샥은 선물로 받았는데 회색에 녹색이 섞여 있어서 실내에서 볼 때와 태양광이 있는 곳에서 볼 때의 색감이 다르다. 이런 색감은 나만의 생각일지 몰라도 대체로 호불호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여러 손목시계를 다 합쳐도 조카에게 줘버린 애플워치 7의 가격에 못 미친다. 조카도 매일 충전해야 하는 스마트한 기기를 차고 다니지 않고 있어서 스마트한 기기가 인간 세계에 깊숙하게 들어오려면 배터리 문제를 구시렁구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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