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아주 이상하고 기묘하고 기이한, 그래서 밥 먹고 한 없이 상상력만은 똥처럼 만들어내야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하루키의 냉소는 첫 시작부터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사생활을 필요이상 말하지 마라. 사람의 이기적 본성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의 사생활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가 주변에 퍼져서 심심풀이 주제로 소비되거나 언젠가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털어놓으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은 아주 가깝지만 몇 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사이다.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 만약 나의 깊은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특히 나의 안 좋은 습관들이나 불행한 가정사는 더욱 타인의 판단과 비판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삶의 특정 부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내가 더 품위 있고, 남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집에 돌아와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


책에서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작가들끼리 친하게 지낸다는 말은 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친할수록, 그래서 말을 많이 할수록 손해 보는 직업이 있다면 소설가이지 싶다. 작가들끼리 붙여 놓으면 잘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록 소설가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옛날부터 친구끼리는 동업하지 마라, 같은 말이 있듯이.


재미있는 건 책에서도 말하지만 1922년 파리의 디너파티에서 세상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가 한자리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두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기다렸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사실 소설가가 아니라도 플라톤의 말처럼 나의 사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사생활 따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엄마, 아이들, 애인, 아내, 남편)도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혼자서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부부가 함께 한 이불에 들어도 잠은 혼자서 자야 한다. 아픈 것도 대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소설은 정신을 바짝 세워 등을 구부리고 혼자서 묵묵히 써 내려가야 한다. 그 지겹고도 힘든 작업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동력원은 오직 상상력과 엉덩이의 힘이다.


상상력은 머리가 좋아야 나오는 게 아니라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상상의 세계를 꿈꾸며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하는 인간들에게서 나온다. 고로 하루키도 말하지만 머리가 좋으면 결국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인간들이 어쩌면 소설가라는 직업에 맞지 않을까 싶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어지간히 머리가 나쁜 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글이나 쓰고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중독이 되며 빠지면 나오기도 쉽지 않다. 세상의 수많은 중독이 나쁘지만 문학은 다르다. 소설가의 특징이라면 문학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소설가 장강명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서 [나는 문학의 힘을 믿으므로 그런 때 무력한 문학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문학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멍청하기 때문이라고]라고 했다. 소설가는 참 기묘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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