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란을 좋아한다. 문제는 너무 좋아한다는 것. 이 죽일 놈의 ‘너무’가 붙으면 언제나 별로다. ‘너무’라는 부사는 부정의 의미였다. 너무 크고, 너무 깊고, 너무 높고, 너무 밝으면 별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너무’가 붙어서 2015년에 그 의미가 부정형이 아니라고 국립국어원에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멋진 사람에게 너무 멋져.라고 한들 부정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먹는 것에 ‘너무’가 붙으면 별로다. 나는 계란을 매일 두세 개씩은 먹는다. 어떤 날은 다섯 개를 먹는 날도 있다. 이게 참 많이 줄어서 이렇다. 대학교 때 자취할 때에는 한 번에 계란 한 판을 먹은 적도 몇 번 있다. 나 혼자 홀라당 먹은 건 아니고 자취방에 술 마시러 친구가 오면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다 되면 그 안에 계란 한 판을 다 집어넣어서 휘휘 저어서 고추장을 넣고 멸치볶음을 넣고 김으로 싸서 안주 겸 먹었다. 별로일 것 같지만 맛있다. 너무 맛있는 것이다.


고작 라면 하나를 끓일 때에도 계란 두세 개를 넣어서 먹기도 했다. 분홍분홍 소시지도 그냥 굽는 것보다 계란 옷을 한 번 입혀서 구운 것이 훨씬 맛있잖아. 계란프라이에 마요네즈와 함께라면 아아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세상에 계란만큼 완전한 식품이 또 있을까. 가격도 다른 식재료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었다.


계란을 너무 좋아하는 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계란이 얼마나 좋으면 고기도 계란에 찍어 먹는다. 그렇게 먹으니 너무 맛있다. 또 계란으로 미니미니 피규어도 만들어냈다. 그것이 쿠테타마다. 인기도 좋아서 한때 나의 조카는 쿠테타마에 빠져서 피겨샾에 한동안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가격이 흑흑.

이렇게 완전체 음식인 계란은 과하면 손해 보는 음식이 되었다. 박찬일도 그런 속내를 자신의 책을 통해서 드러냈다. 인간사 수많은 음식들을 관통하는 대명제, 왜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나. 다시 말해서 몸에 나쁜 건 마이 좋다는 말이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떠올리면, 한 대의 여유, 일상의 도피, 도파민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만족감. 특히 에스프레소와 절묘한 궁합.


짐 자무시는 그 조합을 어떻게 알았던지 ‘커피와 담배’라를 단편 영화들을 엮어서 사람들을 혹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박찬일도 주치의에게 계란을 조절해서 먹기를 강요받았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달걀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박찬일은 이 달걀이 인간세계에 들어옴으로 해서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했다.


계란은 과자, 아이스크림에 반드시 들어간다.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되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은 인간의 화려한 미식의 열쇠가 되었다. 프랑스 요리에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크렘 브륄레나 슈크림, 커스터드로 넣은 샌드가 노른자의 마력이라면, 한없이 부풀어 올라 미식의 허영을 충족시켜 주는 수플레, 중독성 강한 마카롱 같은 과자는 희자의 무한 변신으로 가능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 예전처럼 맛있는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지 않고 스크램블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거대 웍에서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 프라이를 만들었던 예전의 중국집 계란프라이만이 볶음밥에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짜장은 볶음밥 접시에 낄 수 없었다.


그랬던 계란이 한 때 위협을 받았다. 계란 파동으로 인해 가격이 자꾸 올라갔다. 그때가 아마 2017년으로 한 번 오른 계란 가격은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래서 결론은 가격도 예전 같지 않고, 계란은 많이 먹으면 몸에 탈이 난다고, 너무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계란찜은 언제나 위로가 된다. 계란찜이라는 음식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엄마가 어릴 때 계란찜을 해 주는데 그 내밀한 기억이 어른이 되어서 계란찜을 먹을 때 미화되어서 떠오른다.


계란찜을 아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컵라면에서 면만 건져내서 먹고 국물에 계란 두세 개를 넣어서 휘휘 저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면 정말 너무너무 맛있는 계란찜이 된다. 하지만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맛있는 음식을 너무 좋아하면 너를 공격할 거야. 이런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속에 항상 공존하고 있다.



나 매일 삶은 달걀을 까먹는데, 그래서 달걀 껍질 까는 스킬이 남다른데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삶은 계란이 등장했다. 다른 계란과 똑 같이 삶았을 뿐인데 껍질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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