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쫓는 모험’ 2편 격인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나온다. 그녀는 사진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여자다. 나는 아직 세계적인 사진작가는 만나보지 못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는 유진 스미스처럼 대체로 히스테릭할까. 생각해보면 ‘세계적인’이 타이틀에 붙으려면 히스테릭하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


허허실실 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물리칠 수 없다. 유명인에게 공격하는 대상에게는 그에 응당한 대처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데 어설프게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애매하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리추얼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유명인들을 만나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다. 만나본다고 해서 또 다 알 수도 없다. 가족과 매일 만나도 가족을 제일 잘 모르는 사람이 가족일 수 있다.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잘 나갔던 소설가 마키무라 히라쿠(흥, 어쩐지 하루키를 말하는 거 같지만 소설 속 소설가 마키무라는 처녀작을 낸 후 퇴물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하나뿐인 딸을 사랑한다. 아마도 하루키는 모든 소설에 유키, 메리, 마리, 에리, 후카에리 등 여자 아이들이 나오는 걸로 보아 하루키는 딸을 가지고 싶어 했던 걸로)를 만나 유키를 낳았지만 제대로 돌보지 않아 유키는 이미 어리지만 밉지 않은 어른 같은 아이가 되어 버린다.


유키의 엄마는 사진에 빠져서, 오늘 이것을 해야 하지만 그전에 사진을 담아야 하는 문제가 그녀 앞에 놓으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진을 촬영하러, 사진 작업을 하러 가버리고 만다.


자신의 딸, 유키마저 내버려 둔 채. 덕분에 주인공은 유키와 친하게 되지만.


하루키는 이런 사진작가의 모델을 누굴 보고 유키의 엄마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하며 생각하게 된다. 이런 캐릭터는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편에도 등장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먹고살기 위해서 그린 한 장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 있다. 그리고 후에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시대의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캐릭터로 발전이 되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외팔이 남자와 함께 가끔씩 드러나는 유키의 엄마에 비해 도모히코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복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평생 남성 혐오증을 앓고 있다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를 모델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무래도 사진작가를 모델로 했겠지. 여류 사진작가 말이다. 메리 엘렌 마크를 본떠 유키의 엄마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그녀의 소설 속 행보가 메리 엘렌 마크와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유키의 엄마가 어떤 사진을 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리 엘런 마크는 현실에서 살짝 비켜간 사람들을 담았다. 그런 사람들을 담으려면 피사체에 다가가야 한다. 멀리서 줌 렌즈로 잠아 당겨서 찍는 것은 의미가 없고 작가 입장에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온 마음과 몸을 다해서 피사체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록 소중한 사람들일지라도.


‘댄스 댄스 댄스’를 읽다 보면 그것이 마냥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아! 하루키 아내가 사진작가이지. 그러고 보면 하루키는 안 그런 척하지만 소설 속에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일이 많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고,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유키의 엄마는 자신의 아내, ‘해변의 카프카’의 고양이 고마 녀석은 키웠던 고양이, 유키나 메이 또 ‘어둠의 저편’의 ‘아사히 메리’나 ‘아사히 에리’ 자매는 하루키가 늘 꿈꾸던 자신의 딸의 모습이 아닐까 하며 생각해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식이 없는 하루키는 소설 속에서 아들보다는 딸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어린 시절의 스미레가 잃어버린 고양이의 추억은 하루키가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을 때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초기의 하루키 에세이에 사진이 많은 건 세계를 같이 돌아다닌 아내가 찍은 사진 덕분이다. 사진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소설 적으로 살짝 돌려서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아내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터키 지역의 위험한 곳을 돌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쓸 때에는 잡지사 사진작가와 함께 하면서 이후 아내의 사진이 덜 사용된 걸로 안다.


요컨대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전쟁터의 흔적을 따라 취재를 할 때에는 너무 힘드니까 아무래도 여자인 아내, 요코 씨가 험난한 곳을 따라다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키는 아이가 없기 때문일지 몰라도 늘 아내와 함께 다니며 함께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이 보인다. 실제는 어떨지 몰라도. 그렇게 한 번 세워놓은 리추얼은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방해에도 꽤 굳건해졌다.


어떤 에세이에는 출판사의 누군가가 집으로 와서 차를 내오는 동안 아내의 손금을 봐주고 있었는데 그게 질투가 나고 싫다는 말을 하루키 식으로 에둘러해 놨다. 하루키는 대체로 아내의 언급이 잘 없지만 초기 에세이에는 여행 중에 아내와의 일화를 많이 적어 놨다.


‘먼 북소리’에도 잘 나오지만 국경을 넘어 먼 곳까지 부웅 어렵게 차를 몰고 오는데 내내 기분이 이상하더니 여권을 묵었던 호텔이 두고 나와서 다시 가지러 가면서의 아내와의 일화 같은 것들이 꽤 있다.


‘댄스 댄스 댄스’의 유키의 엄마는 괴짜다.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다. 세계적인 사진가 중에는 괴짜가 많다. 로베르 두아노도 그렇다. 피카소의 친구인 그는 피카소의 모습도 사진으로 많이 담았는데 피카소 역시 괴짜가 아닌가. 웃음이 픽 터지는 사진들이 있다. 우리나라로 유명한 사진가로는 김중만이 그렇고 일전에 미투에 걸려버린 소나무의 대가 배병우도 그렇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뉴욕 컬렉션에서 엘튼 존이 사진 한 장에 몇 천만 원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매년 그 달 그날이 되면 경주에 가서 소나무를 찍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십 년 전의 소나무, 오 년 전의 소나무가 하나의 기록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아내와의 이혼, 빚더미 등 풍파를 겪지만 소나무 사진에 미쳐 있으니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면 더 하다. 노부요시 할아버지가 그렇지, 셀 수도 없다. 유키의 엄마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유키가 제일 괴짜다. 꼬마 주제에 팝은 왜 그리도 잘 알고 있는지. 그러고 보면 고탄다도 주인공도 괴짜가 아닌 게 없다. 안 괴짜가 없는 것이다. 하루키는 그렇게 괴짜가 아닌 것 같은데 괴짜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렇게 잘 적는 걸 보면 역시 하루키도 괴짜다. 결국 ‘양을 쫓는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다.


양. 쫓. 모를 여러 번 읽었다. 비록 읽고 돌아서면 까먹지만 꽤 많이 읽어 버렸다.


그럼 오늘은 소설 속에 나온 음악 엘라 피츠 제럴드의 Air Mail Special https://youtu.be/rN0ww1OzEoY  영상: Kenobis B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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