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이 TV에서 서서히 튀어나올 때 어떤 이는 주온을 떠올릴지도 모르나 공포가 주를 이루는 주온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TV 피플은 초현실 적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적이며, 팩토리의 수장 격인 앤디 워홀 적이기도 하다.

 

TV 피플은 기사단장의 그것처럼 현현하는 이데아 적이기도 하다. TV 피플은 당신에게 기묘한 인상을 준다. 뭔가 석연치 않은, 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일큐팔사에서 쓰바사의 입에서 기어 나온 리틀 피플의 메타포가 TV 피플일지도 모른다.


TV 피플이 TV을 둘러매고 설치하는 건 정교하다. TV 피플이 나타나고 난 후 어딜 가나 TV 피플이 떠오른다. 화장실에서도, 회사에서도, 식당에서도 무엇을 하려고 하면 당장의 것이 소멸하고 TV 피플이 생각난다. 옆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잘하다가도 TV 피플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 그 누군가는 마치 나를 없는 사람으로 대한다.


TV에서 튀어나온 TV 피플은 나에게 더 이상 돌아와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며 모든 것에서 한발 물러나게 한다. 점점 손이 투명해지는 것 같더니, 나의 손이 원근감이 이상해지고 언어가 뭉그러지고 곧 모든 곳이 소멸하고 만다. TV 피플이 된 것이다. 메타포이자 이데아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영화로 친다면 루시가 네트워크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단편 ‘TV 피플’과 같은 소설은 정말 좋아 죽을 것 같다. 전혀 일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적이지도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마치 날개를 달고 달리의 그림과 합쳐진 것 같다. 트루먼 카포티의 초기적처럼 아주 초현실적이며, 몹시 심리적이며, 굉장히 환상적이다.


TV 피플은 나의 고뇌일지도 모르고, 나의 과오나 나의 미련일지도 모른다. 내가 제때에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하나의 개념의 웅덩이로 남아있는 것들이 크타카스스스 하면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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