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영어 버전의 문고본이다. 한국 버전의 두꺼운, 그것도 두 권으로 된 책을 이렇게 달랑 한 권으로 반 토막을 내버린 것 같은 카프카 온 더 쇼어 문고본은 역시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의 책이다. 문고본이라 막 다루기에 좋은 책이다. 아무 때나 꺼내서 쓱 읽고 아무렇게나 던져놨다가 다시 꺼내서 읽어 보고 아 이 책은 정말 마음에 드는군, 하면 양장본으로 구입을 해서 집의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보는 분위기를 가지는 것이 미국이다.


그래서 같은 책도 문고본, 양장본으로 나오니까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겠지. 그에 비해 우리의 선택권은 좁다. 예전에는, 불과 15년 전에는 한 출판사에서 여러 소설가들의 소설을 문고본으로 출판을 해서 편하게 읽었는데. 거기서 박범신의 소설을 나는 꽤나 읽었다.


아무튼 이렇게 작고 얇아지면 내용에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영어라는 언어가 가지는 장점도 있고, 또 우리나라에 출판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경우 1999년도 출판 본과 2011년도 출판 본이 있는데 두께의 차이가 많이 난다. 2011년도 버전의 출판 본에는 삼분의 1이 날아갔다.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밀란 쿤데라가 체코 출신으로 후에 프랑스로 귀화해서 프랑스어로 번역된 책이 다시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서 나온 것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얇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책이 얇아졌다고 해서 소설의 내용이 덜하냐 하면 기이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얇은 책은 함축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도취적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약간은 긴 운문을 읽는 기분도 든다. 두꺼운 책은 현대적이고 원서가 가지는 원문을 좀 더 그대로 번역해 놓은 느낌이다.


해변의 카프카에는 철학, 클래식, 팝, 건축 등 다른 장편에 비해 여러 문화가 세세하고 많이 등장한다. 베토벤의 독보적인 모습을 시작으로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슈만을 지나 백만 달러 트리오의 루빈스타인(피아노), 하이 패츠(바이올린), 피아티고르스키(첼로), 그리고 하이든의 협주곡 제1번과 피에르 푸르니에의 첼로 연주가 나온다. 이 모든 클래식을 찾아서 한 번씩만 들으니 하루가 그냥 훌쩍 지나가버린다. 아무튼 해변의 카프카에서 최고 중 하나는 역시 대공에게 바치는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를 알았다는 것. 마치 호시노 청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변의 카프카에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연한 호기심에 가득 찬, 구심적이면서도 집요한 정신과 장 자크 루소의 울타리, 안톤 체호프의 자립적인 개념의 필연성, 헤겔의 자기의식, 앙리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이 부분이 나올 때가 재미있었지, 웃음). 헤테로(이형접합자), 티에스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 소포클레스의 훌륭한 희곡 엘렉트라, 레드 헤딩과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 괴테가 말하는 세계, 그리고 악의 평범성의 아돌프 아이히만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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