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혹시 이 책을 읽어 보셨는지. 일단 표지의 하야오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하루키는 어딜 봐서 이게 하루키의 얼굴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재미있는 얼굴로 표지를 하는 이 시대의 용감함을 배워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가 하루키와 하야오의 작품을 분석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읽고 보면 뭐랄까 ~이즘, ~론(제목에서처럼), 같은 관념이 많이 나오고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일본의 잘 나가는 다른 작가들도 질근질근 씹히고 있다.


씹힌다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자. 이 책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순문학이라 불리는 일본문학이 세계 최고의 문학 반열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한때 세계는 일본의 ‘것’을 모든 부분에 입혀버리는 ‘자포니즘’이 성행했었다. 80년대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 자포니즘이 대단히 유행했다. 리들리 스콧이 마이클 더글라스와 앤디 가르시아, 케이트 캡쇼를 데리고 일본에서 촬영한 ‘블랙 레인‘은 명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마츠다 류헤이의 아버지 – 일본의 연기파 배우 마츠다 유사쿠가 같은 형사로 나온다. 요즘 봐도 재미있다.


이런 자포니즘 문화는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쳤다. 8, 90년대 모든 예능, 드라마, 광고는 일본의 그것들을 베끼다시피 했다.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잉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비단잉어는 일본에서 100년에 걸쳐 교배종으로 탄생시킨 유일무이한 물고기인 것이다.


원래 잉어는 검은색밖에 전 세계에 없었는데 일본은 그들의 정원문화를 만들기 위해 100년에 걸쳐 담장, 가이즈까 나무(일본의 향나무로 검색을 해보면 우리나라 대부분 학교, 관공서에 죄다 심어놓은 향나무다. 나무는 죄가 없겠지만 이 나무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심은 인간이 이토 히로부미라서 이 향나무들은 의미적으로는 다 뽑아야 하고 이미 많은 곳에서 뽑고 있지만) 등, 정원에 예쁜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비단잉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일본식 정원과 비단잉어가 너무나 예뻐서 우리나라 박통이 들고 와서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에 일본식 조경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현충사 속의 연못에 비단잉어도 넣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자포니즘이 여기저기 이곳저곳에 파고들었다.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오쓰카 에이지가 하는 말은 무엇이냐면 현재 일본에서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하면 하루키와 하야오인데 이들이 과연 세계문화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이런 말을 길게, 주절주절, 론이니 이즘이니 같은 관념으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와바타, 겐자부로,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작가들도 죄다 이야기 구조가 스타워즈의 전신 격인 조지 캠벨의 신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씹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순문학은 세계 최고인데 일본의 최고 문화예술가들이 그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쓸데없이 주절주절 징징 짜는 내용이다,라고 나는 본다.


게드 전기는 하야오의 지브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다른 작품만큼 인기가 없다. 아니 전혀 인기가 없다. 하야오의 아들이 만든 작품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게드 전기를 싫어하거나 안타깝게 볼 수는 있지만 혐오까지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내용을 이야기 구조를 들어서 저자는 또 주절주절 신랄하게 해 놨다. 그리고 마지막에 옮긴이, 선정우 번역가 역시 번역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도 읽어보면 이 책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키의 소설은 구조밖에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다 식이지만 이미 퓰리처부터,, 아무튼. 이 책이 나온 시기가 2017년인데 이때부터 방탄이들이 세계적으로 완전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계의 명품 브랜드는 한국 가수들과 협업하기를 바랐고 손흥민은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오르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나의 아저씨’를 본 파올로 코엘료가 극찬의 트위터를 올렸고 9시간 만에 8300회의 리트윗과 2만여 건의 좋아요가 붙었다. 아마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모든 일들이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나에게는 어려웠고 추천하지도 않는다. 읽으려면 하루키의 책을 읽고,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나 한 번 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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