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이가 촬영한 사진이 마음에 들어 편집을 했다. 예진이는 단편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전주 영화제에 영화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여자의 힘으로 스텝과 배우들을 끌고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딜레마, 괴리, 벽, 격차, 같은 것들 때문에 그렇게 바라고 원하는 영화에 대한 접근이 멀어졌다. 그래도 간간이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로 짤막한 영화를 올리고 있다. 예진이는 사진도 프로급이다. 예진이가 담은 사진의 세계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틀이 깨지는 사진이 많고, 반항과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사진과 영상은 꽤나 초현실에 가깝다. 한 번은 나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봐 달라고. 하지만 나는 시나리오를 봐줄 만한 그런 인간은 못되기에 읽었으되 시나리오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은 하지 않았다. 예진이는 그래도 이제 20대 중반을 넘었을 뿐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만큼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진이가 담은 자유한 사진 중에 이 사진은 제목이 댄스 댄스 댄스로 딱일 것만 같다. 춤을 춘다는 건 평소에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벗어나는 일로 일탈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춤을 춘다는 건 스텝을 밟는다는 것이고, 스텝을 밟는다는 것은 멈추지 않고 미래로 걸어간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일은 너무 간단하고 쉬운 일이나 우리는 그것을 망각한다.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보면 주인공과 고탄다가 만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고탄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마세라티를 주인공에게 주고 주인공의 스바루를 빌려 이목을 피해 이혼한 부인을 만나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고탄다는 이혼을 함으로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되는 것과 함께 불안과 고통도 진실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인공과 이런 대화를 한다. 불운한 기운이 잔뜩 깃든 마세라티를 바다에 빠트리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면 정말 기분이 좋을 거라고 주인공은 말한다. 그리고 후에 고탄다는 정말 차에 몸을 싣고 바다로 뛰어들어 진정 자유한 몸이 된다.


이 장면은 영화 ‘클래식’에서 준하와 태수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태수는 아버지에게 주희와 준하가 서로 사랑하니까 양보한다고 했다가 혁대를 풀어 채찍처럼 사용하는 아버지에게 미치도록 맞는다. 네놈한테는 애미애비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냐! 라며.


도서관에서 태수는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책을 보고 있는 준하에게 이게 뭔 줄 아니?라고 묻는다. 혁띠 아니야?라고 준하가 말한다.


아니다. 채찍이다. 이놈이 자꾸 날 때리네. 우리 아버진 원치 않는데 이놈이 자꾸 날 때리고 싶어 해. 그래서 이놈을 잡아왔지. 이놈한테 무슨 벌을 내려 줄까?


턱을 괴고 한참 생각하던 준하는 “사형”라고 말한다. 빙고, 내 생각도 그래,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거야. 조금씩 조금씩 죽이는 거지. 아니면 수면제를 먹일까?


그러자 준하가 “목졸라 죽이자”라고 한다. 그리고 준하는 모두가 운동장에 있을 때 홀로 쓸쓸하게 목을 맨다.


나는 곽재용 감독이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아주 좋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공과 고탄다의 이 부분이 아마도 마음속 깊게 못을 박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곽재용 감독의 영화는 하루키의 소설처럼 안 그런 척 하지만 대부분 판타지, 초현실 이야기다. 기묘하면서 아름답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에서 약간 기울어진 이야기가 많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고탄다는 죽음으로 해서 제대로 된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되었을까.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댄스 댄스 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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