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소설은 쓰지 못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가 단상에 올라 와세다 대학 2021년에 입학식 축사를 했다. 와세다 대는 이날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술 공로자로 표창했다. 이날 운동화를 신고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축사한 내용을 간략하게 보면-


안녕하세요. 입학을 축하합니다. 코로나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지만 올해도 모두 여기에 모여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소설가는 머리가 좋아도 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바로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한 소설은 별로 재미있지가 않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읽어주는 문장을 쓰는 것은 제법 머리를 쓰는 일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머리가 움직이지만 수재나 우등생이 아닌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적당한 때를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균형 찾아주세요. 와세다 대는 그런 작업에 알맞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소설은 천 년 이상, 여러 가지의 형태로 여러 곳에서 사람들의 손에 전해져 왔습니다. 소설가라고 하는 직업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마치 횃불과 같이 전해져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 횃불을 전해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그것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서포트해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로서는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자주 되새겨 보는데 이 말은 아마도 생각은 머리가 하는 것이지만, 또 그 생각을 확장시키는 세계관 역시 머리가 하는 것이지만 머리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 옳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따뜻한 마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져 가는 것이라 비록 논리적이지 못하고 범우주적일지라도 마음으로 글을 써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하고 말하는 것 같다.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말하는 추억도 어쩌면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지만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저 안쪽에서부터 부드럽고 따뜻한 추억이 흐뭇하게 한다. 그러나 자칫 추억이 마음이 아니라 머리의 영역으로 가면 저 안쪽으로부터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고 여러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다.


특히 남녀관계는 머리보다는 마음 쓰는 일이다. 우리는 머리 쓰는 일에 마음 쓰고, 마음 쓰는 일에 머리 쓰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루키 일본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20년 12월 다이아몬드지

하루키는 일본의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상황이 하루키 자신의 창작활동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 그리고 일본 정치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엄청난 의역, 내 마음대로 살을 붙이거나 떼 버려서 썼다는 점.


하루키는 코로나 시대에 자신의 글 쓰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인간이라는 건 공기가 없으면 어떻든 살아갈 수 없고 우리가 마시는 공기의 흐름이나 성분 같은 것들이 바뀌면 인간의 몸 역시 바뀌게 되고 그에 맞게 적응하기 위해 변화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내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실지로 어떤 작품이라도 그 작품을 써보지 않는 이상 알 수는 없다.


소설을 쓰는 인간으로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로 인한 모든 변화를 그대로 써나가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는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는 그대로 쓰고 싶은 마음을 눌러 놓은 채, 사실적인 부분은 표층적인 부분에 붙여 놓은 채 무의식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심층적인 부분을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보는 방식이다. 요컨대 해변의 카프카에서 형이상학적인 현상이 일어나듯이. 이 방식은 시간이 무척 오래 소요되며 많은 체력도 소요되며 전혀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두 가지의 방식이 나에게는 모두가 소중한데 마음이 가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 쪽이다. 우리는 모두 무의식 저편에서 심층적으로 바라고자 하는 비 규정적 형태가 꿈틀거리고 있고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하고 그것이 진정한 스토리를 지니고 서서히 물속에서 기어 나올 때 꽤 흥분되는 것을 감출 수는 없다.


정치인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하루키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일본 정치인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만의 메시지를 내지 못한다며 총리가 종이에 적은 것을 읽는 것은, 그건 정말 최악이다. 코로나는 모두에게 처음이라 이런 굉장한 혼란의 펜데믹 상황에서는 정치인도 그릇된 판단을 할 수는 있다. 실수를 하는 게 인간이니까. 그러나 아베 마스크 같은 경우, 국민들에게 그것을 배포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실수를 제때에 인정하는 정치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실수를 저질러 버린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덕목이 아닌가. 이런 일들이 예전부터 지속되었는데 이번 펜데믹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이 안타깝다. 일본 사람들은 타인을 신경 쓰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전체의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면 비난을 듣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는가, 어떻게 발언을 하는가, 국민들에게 어떤 표현을 쓰는 가는 정치인의 문제인 동시에 표현을 해야만 하는 예술가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무라카미 라디오에 교토 대학 전 회장과 교토 대학 세포 연구소 소장을 초대해서 할 예정이라든가, 학술회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건 영화 같은 것을 보면 터무니없는 발언이라며 묵살하는 권위를 질타했다. 여하튼 살아있는 사람 중에 가장 흥미 있는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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