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어떻게 번 아웃이 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루키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하루키는 어째서 번 아웃 없이 계속 작품을 써내는가? 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에 대해서 언급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번 아웃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던 미드 ‘덱스터’에게도 온다. 인간미 철철 넘치는 연쇄살인마 덱스터의 긴 시리즈가 죄다 재미있었다. 원작대로 끝을 내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덱스터의 광풍에 휘말려 10년을 지속하게 되었다.


덱스터는 애인인 리타에게도, 리타의 아이들에게도, 동생인 데브라에게도, 친구인 엔젤과 마스카(한국인)에게도, 경찰서 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자신을 가리고 다정한 이웃으로 지낸다. 애인인 리타가 부르면 전기톱으로 살인마들을 썰어대다가도 달려간다.


덱스터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냉철한 혈흔 분석가로, 사랑스러운 애인으로, 다정한 아이들의 아빠 대신으로도, 그리고 연쇄살인마로도 완벽하려 한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인간의 감정을 느끼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시즌 2에서 번아웃이 오게 된다. 안 하던 실수를 하고 결국 라일라와 독스 경사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들키고 만다.


번아웃이라는 건 최선을 다하려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오게 된다. 낚시도 취미로 할 때에는 너무나 재미있지만 이게 먹고사는 일로 바뀌면 만만찮아진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고 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다 보면 번아웃은 자동적으로 오게 된다. 번아웃이 왔을 때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쓰러지면 일어나면 되지만 주저앉아 버리면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나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을 때는 펜을 놓아 버린다. ‘소설 안 쓴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뭘’ 하는 마음으로 모른 척 살아가는 것이 하루키가 번아웃의 세계에 빠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지만 하루키가 이렇게 자신만의 루틴을 정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포기한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자식이다. 하루키는 자식이 없다. 아이가 태어났다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없으니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야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거기에 쏟아부어야 하는 정성과 신경은 우주만큼 크고 넓다. 가정을 지키고, 하는 일이 잘 되고,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게 돌봐주려 최선을 다하는데 번아웃이 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루키도 아이들이 있었다면 번아웃을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도 잘 나온다. 장편 소설에는 아이들이 매번 등장하고, 또 엄마와 그 아이와의 관계를 하루키식으로 풀어놨다. 그걸 읽으면 아이와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힘들다는 걸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 말을 하고 있다.


멀리 있는 하루키를 보지 말고 가까이 있는 김영하 소설가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김영하 소설가 역시 번아웃 없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글을 쓰고 있고 작품을 내고 그림을 아이패드로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책 표지를 만들고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건네주고 위로를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라고 했다. 이기주의가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글을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는 타인이 하면 된다. 비난은 튕겨내고 비판을 받으면 된다.


번아웃이 온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매번 최선을 다한다. 책도 공격적으로 다독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다가 적게 읽으면 내가 왜 이렇지? 왜 내가 이것밖에 못 읽지? 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우리는 하루키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하루키는 4 반세기 이상 철저한 자기 관리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줬다.


진실이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상처 입힌다.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늘 거짓말이 필요했어요.


최선을 다 하다 보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 하는 데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하고, 그때도 안 되면 말지 뭐,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우리는 그동안 살면서 그걸 터득했기에.






노르웨이 숲에 나왔던 재즈 한 곡 Antonio Carlos Jobim - The Girl From Ipanema https://youtu.be/AWxyzVbiT98


비는 계속 내렸다. 이따금 천둥마저 쳤다. 포도를 다 먹고 나자 레이코 씨는 여느 때처럼 담배에 불을 댕겨 물고, 침대 밑에서 기타를 꺼내어 치기 시작했다. <데사피나도>와 <이파네마의 소녀>를 치고, 그리고 바카락의 곡이며 레넌과 매카트니의 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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