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상처를 받았어야 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참아가며 물 흐르듯 흘러가게 두면 그 상처는 흉터가 되고 시간이 지나 곪아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게 된다.


내 마음에 생긴 고독한 공백은 아내에 의해 채워진다. 고독해서 고독으로 소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나는 제대로 상처를 받지 않았다. 제대로 상처를 받는 것에 대해서 나는 적극적으로 회피를 해버렸다.


아내가 있어야 할 공백의 자리에 아내가 빠져나가면서 원래 있던 공백이 더 커져버렸다. 그 자리는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조용하고 고요하게 점점 곪고 있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나는 제대로 상처받는 것에서 피하면서 일종의 분노가 생겨났다. 그 덕분인지 안압이 오르고 내가 해야만 하는 운전을 미사키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분노가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다카츠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내를 스쳐갈 뿐인, 그저 그런 젊은 남자 다카츠키 때문이라 여기고 그를 연극에 동참시켰다. 그 녀석을 보며 이 알 수 없는 분노를 언젠가는 노출시키리라.


하지만, 하지만 다카츠키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저 아내의 몸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아내를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있었다. 그 녀석의 눈을 보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가 죽은 지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녀석은 제대로 슬퍼하고 있었다. 다카츠키에게 향한 분노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 분노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적어도 다카츠키는 나보다 상처를 제대로 받았다.


그 녀석의 눈을 통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텅 비어있었다. 그때 들리는 소리는 침묵, 침묵의 소리였다. 진실은 두렵지만 진짜 두려운 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침묵의 소리가 매일 나를 괴롭힌다는 걸 알았다. 점점 조금씩 침묵이 나의 몸으로 파고 들어온다고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나에게 침묵으로 이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미사키와 나는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사키 어머니의 죽음, 나의 아내의 죽음. 내 딸이 죽지 않았다면 미사키와 같은 나이다. 나는 그만 이 어린 아가씨 미사키를 보며 제대로 상처를 받는 방법을 알아 버린 것 같다.


어쩌겠어요. 또 살아가는 수밖에요.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평온을 얻게 되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열렬히 가슴 뜨겁게 믿어요. 그때가 오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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