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고탄다와 키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같다. 게다가 이 소설에도 역시 엄청난 음악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음악을 찾아서 카테고리 안에 넣어 두고 들어가면서 읽으면 정말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는 말은 사실 좀 거짓말이지만.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을 때 나는 남들에 비해 그 짧은 분량을 너무나 길게 읽었는데 그 세계 안에도 베토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좀 이상하지만, 짧으니까 천천히 읽지 뭐, 라는 생각에 병수가 등장할 때 베토벤을 들으며 병수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병수에 좀 더 가까이 이입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왜 그런지 김영하가 시를 너무 적고 싶은데 이미 소설에 발을 담가 버려서 뺄 수 없으니 온통 직유와 은유로 가득한 살인자의 기억법을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속에 등장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병수를 신랄하거나 또는 조금 떨어져서 긍휼히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댄스 댄스 댄스에서도 하루키 식의 음악이 와장창 등장한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틀어 놓고 들으며 읽는 것은 이제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옆에 잠자는 고양이 같은 기기로 틀어 놓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지금 좋은 세계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소설 속 키키는 두 사람에게 어떤 트리거가 되었다. 댄스 댄스 댄스의 전신 격인, 양. 쫓. 모(양을 쫓는 모험)에서 키키는 아름다운 귀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양쫓모에서 키키와 함께 양의 행방을 찾으러 갔다가 양사나이에 의해 키키는 그곳에서 나가고 주인공만 결락을 가진 채 남게 된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댄스 댄스 댄스’로 와서도 주인공은 내내 키키를 생각한다.


주인공은 양쫓모에서 키키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좀 더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키키는 신비로워서 형태가 모호하지만 ‘시’ 같아서 구체적이다. 역시 키키는 '시'적이다. 키키의 모습은 획일화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깊이 있게 생각하면 키키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주인공과 고탄다는 키키로 인해 현실을 자각하고 비현실 같은 실재에서 도망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탄다는 그만 키키가 있는 세계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물처럼 차오르는 결락을 어쩌지 못하고 만다. 키키는 명확하게 일어나 버린 일이며 동시에 아직 명확하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과 제로 사이에 끼인 순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는 키키는 어떤 방아쇠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키키를 표현해보기로 하고 집 앞 바닷가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은 11장의 사진을 합성했다. 나무들이 보이는 곳에 아파트와 건물들이 있는데 다 날려버리고 나무를 합성했고 하늘에 구름 여러 개를 합성했고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도 삭제했다.


- 예쁘게 하고 나왔는데 또 이상하게 찍는 거 아니죠?


- 아니라니까 신비로운 여자를 담을 거야.


- 그러니까요, 그냥 모델처럼, 그냥 예쁘게, 그냥 얼굴이 잘 나오게 찍어줘요.


키키라는 신비로운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셔터를 눌렀다.


- 키키라고 부르지 말아요.


- 아니야, 오늘은 키키 여야 해. 키키는 이런 관념을 잔뜩 가진 여자니까 그렇게 걸어와. 명확하지만 명확하지 않게, 우연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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