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 젊음의 코드, 록
임진모의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에 한 권의 책이다. 제목만 봐도 눈에 딱 들어온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제목이 록을 좋아하는 사람을 잡아끈다.
우리가 젊음을 언제까지다,라고 지정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하고, 또 여러 방송 같은 곳에서 젊음이란 몇 살까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제목을 보면 얼추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것은 록은 젊음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건 록을 듣고 있다면 그. 자리, 그 시기, 그 나이가 젊음이라는 말이다. 임진모 형님도 젊음을 죽 끌고 갈 수 있는 이유가 록을 좋아하고 듣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이라는 것은 단지 나이나 외모 같은 표층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건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주로 소설을 읽고 또 책을 거의 새것처럼 읽는 편이다.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는 스타일이 아닌데 임진모 형님의 이 책은 줄을 죽죽 그어가며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대략 2005년도쯤인데, 아무튼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스파이더맨, 에릭 사티, 하루키, 존 레넌, 커트 코베인, 에밀리 디킨슨, 릴케, 헤세, 카프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전부 외톨이라는 것. 이들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외톨이로 외롭게 작업을 했다. 스파이더맨은 좀 다른 의미지만. 외톨이라는 건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타고나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미쳐서 환장하는 록을 발산하는 록 그룹 역시 외톨이처럼 음악을 만들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헤세는 고독한 사람에게서 문화가 탄생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독자적인 삶이나 독자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일생 동안 군중의 일원으로 살고 행동한다는 것, 이런 사실을 그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개별자로서의 개성과 삶을 소명으로 여기고 감당할 능력이 있는 소수에 속하며, 군중과 달리 섬세한 감각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더 자세하게, 더 예민하게, 더 풍부하게 뉘앙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군중과는 다른,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더 풍부하게 많은 것을 느끼는 외톨이들이 문화의 제1선에서 창작과 창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임진모 형님도 있다. 이 책은 록의 시작부터 지금의 헤비 한 메틀까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록 마니아들은 홀딱 빠져서 읽게 된다.
록의 정신, 록 스피릿은 바로 ‘저항’이다. 그래서 사화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부모세대에 반항을 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대체로 록을 접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 중 반 이상은 록이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천사보다는 악마 쪽에 더 기운다. 보수보다는 진보에 가깝고 지키려는 쪽보다 부수고 변화를 꾀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항상 변화의 바람 앞에는 록이 시대를 같이 해왔다.
이 책에는 록의 본거지인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한국 록의 시작점과 한국 록의 정신 그리고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와 양희은부터 지금까지(라고 해봤자 15년 전이다)의 한국 록에 대한 계보와 이해 그리고 록의 사상 같은 것들이 임진모의 손가락 끝에서 탄생되었다.
책과는 별개로 ‘물 좀 주소’의 한대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격인 물리학자, 그것도 핵물리학자인데 실종이 되었다. 아직도 이유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조부는 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실종이 되고 한대수가 16살이 되던 무렵에 미국 FBI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고 한다. 한대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면 검색해서 찾아보면 된다. 한대수의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원데이'를 한 번 들어보자. 89년 곡인데 2015년에 뮤직비디오로 다시 태어났다.
한대수 형님도 록을 하고 있으니 젊은것이다. 한대수 형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대수 형님의 예전, 모든 노래들을 들으면 그렇다.
록이 가장 전성했던 시기는 60년대와 7, 80년대였다.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산업혁명이 나라 이곳저곳에서 일어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스스럼없이 당겼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반항, 저항 그리고 발광은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시작점은 미국의 주다스 프리스트, 영국의 롤링스톤즈 같은 록의 전설이 된 그룹들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사람들을 몰고 다녔고 음악으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총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가사에 시를 입히고 철학을 노래한 포크록의 보브 딜런, 조안 바에즈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한때 뜨겁게 열애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록이 상륙을 한다.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혁명이 빨리 일어난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그들과 함께 미제 문화가 들어온다. 그중 하나가 음악인데 신중현과 엽전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렀던 패티 김을 선두로 해서 위에서 말한 포크 록의 한대수 등이 저항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어머니 영향으로 나도 패티김의 노래를 줄곧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패티김의 공연을 세 번 봤다. 언제 한 번 썰을 풀어 보겠다.
책의 중반부터 헤비메탈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끝까지 간다. 이후로는 헤비메탈에 대한 임진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 '아웃 월드'의 캘리 카펜터가 있는데 뭐랄까, 우리는 흔히 고음 하면 쉬즈 곤을 생각하지만 캘리 카펜터의 목소리는 그것을 넘어버린, 미칠듯한 고음으로 뇌를 터지게 만드는, 초고음 외계 물질 테러 같은 목소리를 내뿜는다. 캘리 카펜터는 인간 형상을 한 외계인이라는.
일본으로 가면 극악의 샤우팅을 하는 그룹이 있다. 에니메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바로 마징가제트를 록 버전으로 부른 악마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다. 극렬하고 과격한, 아니 이걸 넘어서는 극악무도의 샤우팅을 한다. 무자비한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의 페인팅은 그룹 키스를 보는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지옥이 몸에 있다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듯 노래를 부른다. 마징가제트를 이렇게 과격하게 부르는 건, 마징가가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에반게리온이나 게놈처럼 하나의 크리쳐 같은 개념으로 마성이 분출하는 마신이다. 그러니까 에반게리온처럼 각성을 하면 마성이 깨어나 악마가 되는 게 마징가다.
아무튼 이런 헤비 한 록도, 포크 록도, 그리고 펑크 록을 비롯한 모든 록을 들으며 좋아하는 건 젊음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시끄러운 록을 들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영애의 ‘여울목’을 들어 보자.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 간다
가사의 한 부분인데 시다. 시. 블루스적인 한영애의 목소리가 시를 만나 슬픔의 향을 풍긴다. 임진모 형님이 이 노래를 찬양했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어린 시절에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 속의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첩을 뒤지다가 부모님의 사진을 본다. 옷도 이상하고 화장도 과하고 머리고 촌스럽고. 큭큭 거리며 웃다가 문득 사진 속의 부모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임을 깨닫고 생각에 잠긴다. 내 부모도 나와 같은 시기를 거쳤으니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 모든 시간을 거치고 헤쳐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다는 걸 느끼고 인간의 삶에 평범한 삶은 없다는 것과 위대하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마냥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뚝딱 해결될 줄 알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조그만 움직임에도 선뜻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온통 정글이고 겁나는 것 투성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나를 배신하고 만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유가와’가 옆에 있다면 무심하게 이랬을 것이다. 문제에는 분명히 답이 있지, 그렇지만 그것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부터 너는 몇 개든 그런 경험을 하겠지, 그건 나도 똑같아, 그렇지만 초조할 필요는 없어, 우리들 자신이 성장해나가면 분명 그 해답에 도달할 것이다, 네가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도 같이 생각할게, 함께 고민해 나가는 거다, 잊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
유가와의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면 목놓아 울 수도 없다. 책임이라는 막중한 무게가 눈물도 쏙 들어가게 만든다. 어른이 될수록 ‘약해짐’에 가까워진다.
시간 5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매들렌 렝글’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약점이 없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약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한영애의 여울목을 와삭 거리는 낙엽이 많은 계곡에서 들으면 좋다는 임진모는 이 노래를 한없이 찬양했다. 발 밑으로는 색이 죽은 낙엽이 가득하여 쓸쓸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찬란한 색으로 물든 단풍과 파란색 물감을 부어 놓은 하늘이 있다.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다. 그 어른은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