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하루키를 우국원과 호크니스럽게 그려보기.
삽입한 글자가 뭉개져서 삽화보다는 그림처럼 보이는 어이없는 마술.
두 번째 그림은 호크니의 초기작을 따라 그렸다. 말 그대로 그림 제목이 헬프다.
지금의 호크니로 자리 잡기까지는 엄청난 의식의 방해로부터 이기기 위해 무참히도 싸우고 깨지고 했을 것이다.
그건 우국원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 우국원의 그림을 봤을 때 호크니가 떠올랐고 하루키를 그렇게 한 번 그려보고 싶었다.
하루키, 호크니, 우국원의 세계에 있으면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에서처럼
캄캄한 밤이 오더군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정말 길 따위 잃고 한 없이 헤매고 싶어 진다.
시디 왕국의 역습 편 하루키 그리기
태엽 감는 새 3권을 읽다가 책 사이에 꽂아둔 책갈피의 모서리가 햇빛을 받아 면도날처럼 반짝거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 좋은 계절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카다 도루(주인공)는 끝내 크레타 섬에 가지 않았다. 가방도 구입하고 여권 사진도 찍었지만 오카다 도루는 결국 남기로 했다.
도망가지 않고 부딪히기로 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생활에 균열이 가게 한 것들에 대해서 마주하기로 했다.
계절이 흐른다. 나무가 또 한 겹의 옷을 갈아입는다. 나무는 아무도 모르게 옷을 갈아입는다.
한 겹 또 한 겹, 인간은 나무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도망가지 않고 계절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옷을 갈아입는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흐른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더냐,라고 하던 정태춘과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 흘러 흘러 지금까지 왔다.
태엽 감는 새의 오카다 도루도 정면으로 삶을 대하며 흐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