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는 단편집이다. 무려 25편이나 실려 있다.

아무튼 예전에는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단편을 실어서 들고 읽는데 무겁구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단편집은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나 ‘여자 없는 남자들’처럼 하나의 주제로 여러 편의 단편이 실린 책이 아니니까 대체로 이전의 다른 단편집에도 실린 단편들이 가득하다.


단편집 제목이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인데 어떤 곳에서는 ‘지금은 없는 왕녀를 위하여’로도 되어있다.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는 하루키의 사소설인데 대학교 시절 누구에게나 추앙을 받고 대접을 받았던 예쁘고 잘 나가던 공주 같은 여학생과 과별 엠티를 가서 술을 마시고 다 같이 우르르 모여 잠이 들었을 때 그 미묘한 접촉과 그 사이에서 느끼는 여백의 아찔함과 공간의 뒤틀림을 적었다. 아무리 멋진 남성에게도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 같았던 공주는 일명(이건 그저 내가 붙인 별명이다) 얼음공주로 예쁜 얼굴을 망가트리지 않겠다는 심상인지 전혀 웃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다녀도 돋보이던 그녀가 하루키에게 어떤 이유로 잠시 틈을 열어 준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의지라기보다는 일종의 흐름으로 그녀는 그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에게는 미질이 단점인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성질의 그것이 타인으로 하여금 그녀에게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의 남편을 우연하게 만나게 되고, 그녀의 남편은 가끔 아내의 입에서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의 그런 면모는 죽어버렸다.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그녀는 흐름에 몸을 던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미질이 단점이었던 녀석이 있었다. 나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또 늘 어울려 다녔다. 그런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아주 잘 생겼다. 오자키 유타카의 재탄생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잘생겨서 그냥 질투가 나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마치 수선을 해서 입은 것처럼 너무 잘 어울렸다. 그 녀석을 수식하는 말 앞에 언제나 ‘너무’가 붙는 녀석이었다. 직각어깨에 키도 컸고 무엇보다 말을 잘했다. 막힐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막힘없이 술렁술렁 여자애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막힘없이 흐르는 개울물처럼 말을 하는데 얼굴이 너무 잘 생긴 것이다. 조각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지고 여자애의 눈을 쳐다보며 술술 말을 하면 누구나 그 녀석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날 때부터 저런 얼굴로 태어날 수 있을까. 교복을 입지 않을 때 입는 옷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입해서 입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얼굴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늘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각 여자 학교에서 예쁘다는 애들은 다 만났다. 어딜 봐도 그 녀석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타입인데 점심도 같이 먹고 하교 후에도 어울려 다녔는데 이유를 찾자면 둘 다 시끄러운 음악에 빠져 있었서였다. 다른 그 어떤 것도 맞는 구석이 없었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보 공유가 가장 잘 되었다. 그래서 서로 단골 레코드 가게를 소개하고 죽치고 앉아 음악을 듣거나 판테라의 음반이 나오면 공유를 하곤 했다.

 

같은 헤드셋을 둘렀어도 그 녀석은 광고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음악 감상실에서 한 번 웃으면 여자애들이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녀석은 많은 여자애와 사귀었고 여자 친구가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길게 사귀지는 못했다. 그 녀석은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멈추지는 못했다. 그게 묘하게도 자신의 여자 친구보다 훨씬 외모 적으로는 못난 얼굴인데도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여자 친구와 사귀기 시작하면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들은 서로 며칠 만에, 한 달 만에, 하면서 그 기간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그걸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헤어졌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한 번은 자율학습을 몰래 빠져나와 음악감상실에 갔다가 강변을 걸으며 왔다. 그때 강변을 걷고 있는 여학생 두 명이 있었고 그 녀석은 그쪽으로 가서 말을 걸었고 당연하게도 여학생 두 명은 그 녀석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학생 두 명 중에 한 명은 정말 예쁘고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못생긴 애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다. 질투를 유발하려고 그러는 걸까. 누가 봐도 예쁜 애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고 웃어줘야 하는데 그 녀석은 예쁜 애 옆의 못생긴 애에게만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예쁜 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이야기하며 강변을 계속 걸었다. 왜 어정쩡하냐면 예쁜 애는 이미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예쁜 애의 친구에게만 관심을 보이니 예쁜 애는 화가 난 것이다. 그리고 못생긴 애는 뭐랄까 약간 우쭐함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후에 예쁜 애는 그 녀석과 주말에 따로 만나서 데이트를 즐길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그리고 수순처럼 예쁜 애와 잘생긴 녀석은 한 달 정도 만에 또 다른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그 이면에는 어쩌면 외모적으로 완벽한 녀석의 작은 결함을 상대방이 크게 볼 수 있을 수 있다. 더 파고들면 그 결함을 그 녀석 자신이 몹시 힘겨워하고 속앓이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사람, 유명하면서 너무나 예쁜 여자들은 자신이 가진 미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그 녀석은 키도 크고 옷도 잘 입고 교복도 다른 애들보다 잘 어울리고 유행을 따라가는 신발을 신고 유니크한 음악을 좋아하고 잘생겼지만 새가슴이 너무나 싫었을지도 모르고 움푹 파인 엄지손톱이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그 녀석에게 나 때문에 못생긴 애에게 그럴 필요 까진 없었다고 하니까 그 녀석은 한 참을 가만히 있더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못생긴 애가 가방을 옮길 때 보니까 손이 너무 예쁘더라는 것이다. 예쁜 얼굴은 더 이상 그 녀석의 환심을 사지 못하지만 예쁜 손을 가진 여자는 드물다고 했다. 자신이 늘 꿈꾸던 이상적인 예쁜 손과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예쁜 얼굴의 여자애는 따라오지 못하는 어떤 무엇의 세계를 못생긴 여자애가 가지고 있었다.


날 때부터 예쁜 손과 예쁜 손톱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이 충만하고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녀석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쁜 얼굴의 여자도 자신보다 못 생겼지만 친구가 가지고 있는 예쁜 손과 예쁜 손톱은 동경이고 어쩌면 질투를 불러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메이크업과 성형이나 시술을 통해 얼굴은 확 변할 수 있지만 손이나 손톱의 문제는 한계가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도 열 손가락을 수술을 해서 한동안 구부리지 못하고 열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다닌 적이 있었다. 단지증에 개구리손처럼 뭉툭하며 손가락이 아주 굵었다. 그런 손을 가진 여자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낸다면 다행이지만 사회는 그런 손을 가진 여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히 학창 시절에 받은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수술을 했다고 해서 광고에 등장하는 손처럼 예뻐지지 않는다. 생각과 현실은 괴리가 크다. 그래서 돈을 이만큼이나 들여서 수술을 했지만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좌절을 한다. 손, 손가락, 손톱이라는 게 늘 장갑으로 가리고 다닐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외모가 우월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아주 사소한 결점 때문에 작아지는 경향이 짙다. 그건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혼자만 알고 있고 또 주위의 몇몇만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 작은 결점이 그 외에 모든 것이 빛나는 그 사람의 속을 망가트린다. 그런데 외적으로 망가졌다고, 아니 조금 손해 보는 것처럼 생긴 사람들은 그 작은 하나의 장점 덕분에 세상을 거침없이 영차영차 살아간다.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이 단편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 공주가 지니고 있던 단단한 깐깐함 같은 것들이 물에 불어 흐믈흐믈 나가듯 나의 세계도 시간과 함께 조금씩 실타래의 끝이 되어 빠져나가는 편린을 보는 것 같다.


모든 단편이 이전에 소개한 단편집 ‘고독한 자유’나 ‘하루키 단편 걸작선’에 실린 작품이지만 읽다 보면 생소한 단편도 눈에 띈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이나 ‘세 가지 독일 환상’ 같은 단편은 처음 읽어 보는 것처럼 아주 생소하다.

뭐야? 이런 내용이었어? 전혀 생각이 안 나네. 그래서 좋네.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 단편집의 표지가 저 앞의 ‘양을 쫓는 모험’의 책 표지와 거의 흡사하다.

아마도 같은 북디자이너가 하지 않았을까.


소개처럼 하루키 문학의 고향이요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단편 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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