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에세이 중에 ‘나는 쇠고기와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라는 글이 있다. -바다라는 것은 역시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 냄새를 맡으려 생활하지 않으면 진짜 좋은 점을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쇼난이나 요코하마의 바다는 약간 지나치게 세련되어서, 그러한 ‘생활 감각으로서의 바다'가 타향에서 온 방문객에게는 완전히 전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라는 구절이 있는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 이유는 집 근처가 바로 바닷가라서 그렇다. 매일 출근하기 전 이른 오전에 바닷가에서 약간의 글을 적는데 매일 바다를 보게 된다. 여기 바닷가도 해수욕장이지만 해운대처럼 굉장히 세련되지 않아서 소박하지만 꽤 운치가 있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바다는 모름지기 매일 보면 바다의 변화나 흐름이 매일 다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흥미롭다. 


매일 보는 바다지만 매일 보기 때문에 매일 달라지는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쩐지 매일 봐야만 알 수 있다. 그저 어쩌다가 보는 바다에서는 그 달라짐을 눈치채지 못한다. 바다는 가늘게 눈을 뜨고 꾸준히 봐야만 그러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 감각으로서의 바다가 아니라 다가가면 조만큼 가버리는, 마치 나 잡아봐라, 하는 것 같은 친숙하지 않은 바다가 되어 버린다. 십 년 만에 와서 바다를 보는 사람은 바다는 그대론데 나는 이만큼이나 늙었군,라고 한다. 그건 사람이 조금씩 늙어가지만 눈치채지 못하다가 십 년 후에 늙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늙어버릴수록 보석 같은 아이는 쑥쑥 커가니 늙었다고 흥! 할 수만은 없다. 


여기는 너무 대도시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차들도 너무 많고, 건물도 너무 높아졌다. 더불어 이렇게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려면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지치게 된다. 그 와중에 이렇게 바닷가가 있고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집의 문을 열고 기지개를 켜고 걸어가면 바다가 있기에 생활 감각으로서의 바다를 만끽하기에 조금은 느슨해질 수 있다. 


지방이라 당연하지만 사투리가 난무한데 몇 해 전부터는 카페의 직원들에게도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신기할 정도로 사투리를 들을 수 없다. 아마도 대도시화된 영향 탓이리라.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나 정도밖에 없다는 착각이 들 만큼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 “왜 이카는 데, 저거 두가, 아 거참 씨그랍네, 주께지마레이”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바닷가의 장기방에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정도다.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는 장면을 구경하면 재미있는 경우가 있다. 훈수를 잘못 둬서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하고, 한 수를 옮기는데 너무 오래 걸려 또 전쟁이 나기도 한다. 전쟁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훈훈한 대통합으로 마무리를 한다. 


어떤 날의 바다는 사념이 가득하다. 4월이 되면 동네의 노인들이 나와서 볕을 쬐며 벤치에 앉아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 노인들의 등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꼭 바다의 사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또 어떤 날의 바다는 궤변을 잔뜩 늘어놓은 터무니없는 모호한 칼럼을 읽는 것 같다. 여기를 읽고 있는데 이미 읽었던 문장 같다. 또 길을 잃어 헤매는 바다코끼리의 울음 같기도 하다. 어떤 결락을 바다는 잔뜩 지니고 있다.


이른 오전의 바닷가에서 약간의 글을 작성한 다음 고개를 들면 바다가 눈앞에 늘 펼쳐져 있다. 그러면 멍해지는 시간을 보낸다. 하루키의 말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꽤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바다와 하늘이 몽땅 파랗게 질려 있는 경우가 있고, 구름이 달팽이보다 느리게 흘러 저기까지 가는 것을 멍하게 보다 보면 시간이 이만큼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은 언제나 사람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어항 속 붕어의 유영을 보는 것처럼 멍하게 바다를 바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뇌수가 팬케이크 반죽 같은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정말 긴 털이 세 가닥 달린 손톱만 한 사마귀가 붙은 노인이 와서 빨대를 머리에 꽂아서 뇌수를 쪽쪽 빨아먹어도 흐응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멍해진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을 대로, 겨울이면 겨울, 여름이면 여름에 걸맞게 인간은 멍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바다를 보며 멍해지는 재미에 빠지려면 매일 생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바다를 봐야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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