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


‘격이 없는 사이’라는 건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가 없는 사이다.


보통 격이 없는 사이를 아주 좋은 사이, 무엇이든지 격이 없이 이야기하는 사이라고 어른들은 말했고 아이들에게 주입식으로 그 사실이 진실이라고 교육을 했다. 그리하여 요즘도 여러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격이 없는 사이라는 말을 한다.


격이 없는 사이끼리 왜 그래?라고 말을 해버리면 상대방이 그 말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격이 없는 사이는 과연 좋은 사이이며, 격이 없는 사이가 정말 올바른 관계일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존중하고, 지킬 건 지키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격이 없는 사이에 좀 더 부합된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도 ‘좁은 일본, 밝은 가정’이라는 글이 있는데 이런 비슷한 문제를 꼬집고 있다. 살짝 꼬집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게 피멍이 들도록 꼬집는다.

 

격이 없는 사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가정이다. 부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자아로서 아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룰 때까지 돌봐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지만 어떤 부모는 그저 자신의 아이는 자신의 소유물이니까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 자식 간에 격이 없는 사이가 바람직하다고 부모 입장에서는 생각을 한다. 모든 걸 종알종알 고주알미주알 이야기를 하던 애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비밀을 간직하게 되면 어떤 부모는 불안해진다. 말 그대로 '격이 없는 사이'에 금이 갔다고 생각을 한다.  

 

부모 자식 간에는 격이 없는 사이가 이상적이고 올바른 관계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술렁술렁 그저 허허 웃고 넘길 에세이를 많이 쓴 하루키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표정을 싹 지우고 굳은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아무튼 부모와 자식이 뭐든 얘기하는 가정은 과연 정말로 즐거운 가정일까? 나는 그 표어 앞에 서서 근본적인 의문에 빠졌다. 이런 표어는 때로 근본적인 사고의 확인을 요구한다. 나는 가정이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확정적인 것도 아니다. 분명히 말해서,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잠정성의 위태로움을 인식함으로써 가정은 구성원 각자의 자아를 유연하게 흡수해갈 수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가정은 그저 무의미하고 경직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이란 이른바 유연하게 만들어진 자아의 제로섬 사회다. 이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이 무엇이든 솔직하게 숨김없이 얘기하고, 그렇게 해야 비로소 가정이 건전해진다는 건 너무도 단순하고 단편적인 발상이다]


그래서 내식으로 말하자면 격이 없는 사이는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이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그 격을 결정짓고 상대방이 따라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계를 격이 없는 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여럿 보았다. 


친구지간에 격이 없는 사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다. 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이일수록 격을 차리고 존중해줘야 한다. 너무 친한 친구라서 함부로 막 대하다간 옳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물며 직장에서 격이 없는 사이가 존재할 수 없는데 며칠 전에는 상사가 신입직원을 나에게 우리는 격이 없는 사이라고 말을 할 때 신입직원의 표정을 봤어야 했다. 


하루키는 '가정이란 이른바 유연하게 만들어진 자아의 제로섬 사회다'라고 했다. 부모 자식 간에 무엇이든 숨김없이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가정을 건전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너무 단순하고 단편적인 말이다. 인간은 본디 복잡하고 단편적이지 않은데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하면 탈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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