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펜터즈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주일 중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카렌을 떠올리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고등학생 때 토요일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기 때문에 1시에 수업이 끝난다. 사진부에도 할 일이 없으면 음악감상실에 가기 위해 학교를 나서는데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토요일 낮의 날씨는 언제나 해가 밝게 빛나고 있고 바람도 적당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여고 여중과 또 다른 남고가 붙어 있기에 토요일의 비슷한 시간에는 학교 근처가 학생들로 북적북적거린다. 학교 앞의 모든 곳이 호황이다. 오락실도, 문방구도, 운동장도, 떡볶이집도 학생들로 가득하다. 토요일 오후 1시는 그런 시간이었다. 모두가 얼굴에서 불행이라는 단어는 점보다 작아서 볼 수 없었던 시간이다. 토요일 오후 1시는 모든 학생들과 학생들을 맞이하는 식당의 주인들이 행복했다.


나는 사진부 문을 확인하고 음악 감상실에 같이 가는 친구들과 학교 앞 강원 분식에서 라면 한 그릇씩 먹었다. 분식집 라면은 어째서 집에서 끓여먹는 라면보다 맛있는 것일까. 분식집 라면은 불어 터져도 맛있었다. 대량으로 국물을 끓인 다음에 면을 따로 끓여서 거기에 국물을 부어주고 마지막에는 계란을 하나 깨트려서 얹어주는데 그렇게 맛있었다. 무엇보다 양이 많았다. 보통을 시키면 라면 한 개 반 정도를 끓여주는 양이었다. 거기에 밥도 고봉밥이다.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단무지가 반찬이었다. 깍두기나 김치도 있었지만 단무지와 함께 먹는 분식집 라면은 맛있었다.


음악 감상실은 주말에는 2시간 정도 장기자랑 같은 무대가 있었다. 각 학교의 흘러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음악 감상실 앞부분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주제가 있었는데 이번 주는 댄스가수라면 한국의 댄스가수나 댄스 팝가수를 연습해서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 날은 카펜터즈의 노래를 주제로 했다. 학교에서 카펜터즈의 카렌 카펜터만큼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무대에서 카펜터즈의 노래를 불렀다.


4시부터 6시까지 무대를 하고 뒤의 시간은 음악을 감상하다가 집에 가면 되었다. 집에는 8시에 들어간다고 하고서는 그때까지 실컷 음악 감상실에서 죽돌이가 되는 것이다. 몇 시까지 집에 들어간다고 연락을 해 놓으면 그때까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집에서 확인할 방법도 없다. 오직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어야만 그간의 모든 일들이 꾸며진 일이라는 걸 눈치챌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강원 분식에서 나와서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도 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우리는 걸었다. 배도 부르고 햇살은 좋고 온도도 적당해서 가방을 메고 걸어도 땀이 나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토요일 오후 1시를 넘어가는 시간이다. 걸어가면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간판의 글씨체도 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구경한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학생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어른들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경우도 요즘만큼은 없었던 것 같다.


사진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전시회가 끝나거나 행사를 하고 나면 회식하는 장소로 XX여고 뒤편의 투다리였다. 이전 선배들이 그곳에서 늘 조촐하게 또는 성대하게 술을 마시고 즐겼다. 그러니까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들어가서 술을 마셨다. 학생들이 술을 마시는 건 예나 지금이나 금지이지만 술을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해 사고를 친다거나 어딘가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일도 드물었다. 술을 마시다가 단속이 뜨면 주인 이모는 우리를 주방에 숨겨주었다. 각각의 부모님도 술을 마시는 것을 다 알았고 술을 마신다고 해서 딱히 나무라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이 없었다.


더불어 성적 때문에 고민을 덜 했고, 나를 비롯한 주위의 부모님들 역시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못한다고 해서 닦달하거나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다. 사진부 전시회를 하면 월차를 내고 잘 입지 않던 깨끗한 옷을 입고 부모님은 동생의 손을 잡고 전시회를 보러 왔고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님들은 라면을 끓여서 김치와 밥을 내주었던 분위기가 가득했다. 물론 성적 때문에 고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요즘에도 공부와는 무관하게 지내는 아이들은 그렇게 지낸다. 그렇지만 청춘이라고 하는 전반적인 모습에 영향을 주는 공부에 관한 칼바람은 요즘처럼 크지 않았다. 불안과는 거리가 있었고 대체로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자,였다. 요즘도 고등학생과도 왕래가 잦아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은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 어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예전의 고등학교 때 마음껏 숨어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인데 어째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이클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고 나사와 볼트 같은 것들이 새로운 것으로 바뀔 뿐이다. 


요즘은 가장 찬란할 청춘일 때 가장 혼란하고 불안한 것처럼 보인다. 티브이 예능을 보면 연예들이 혼자 살거나,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육아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재미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집이 있고, 아이들에게 브랜드의 옷을 입히며 아이들의 식사를 가려가면서 먹이는 것에 신경을 쓴다. 좋은 차를 몰며 스트레스가 쌓이면 레저를 즐기거나 산이나 강으로 캠핑을 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청춘들은 나중에 나는 저런 모습에 속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불안하고, 티브이 속에 나오는 연예들이 사는 삶이 일반적이라 여겼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전혀 아니어서 이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볼빨간 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의 가사에 공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요즘 많은 것을 보면 단단하게 주먹을 쥐고 지금도 꽤나 힘을 내서 청춘들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든 이렇게 된 데는 이전 세대들이 단추를 잘 못 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음악 감상실에 도착을 하면 그곳에서 주는 음료를 받아서 푹신한 자리에 가서 앉는다. 4시가 되면 한 사람이나 한 팀이 무대에 올라서 카펜터즈의 노래를 부른다. 어둡고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서 ‘클로스 투 유‘를 부르고,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를 부르고, ‘슈퍼스타’를 부르고, ‘온리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아이들은 각 학교에서 내놓아라 하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로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분출한다.


카펜터즈의 카렌은 노래를 참 잘 불렀다. 늘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안온한 방처럼 카렌은 그 편안함을 건네주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만 노래를 만드는 유능한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음악성이 뛰어난 오빠에 비해서 그저 앵무새처럼 노래만 불러야 했던 카렌은 오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기를 강요당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부터 착하게만 보였던, 착한 아이로 살아야만 했던 카렌은 결국 착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카렌에게 착한 이미지를 덮어 씌워 어떤 일탈도 하지 못하게 했다. 카렌은 음악적으로나마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74년 일본 공연에서는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드럼을 마치 미친 드러머처럼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통 시장의 한 편에 걸려있는 마른 명태처럼 바짝 마를 대로 말라서 결국 쓸쓸하게 죽음으로 갔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하루키는 설령 그것을 운 좋게 찾았다고 해도 실제로 찾아낸 것의 대부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손을 뻗어 겨우 잡은 그것들은 언제나 완성된 모습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고 추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이란 살아가는 의미 자체가 망가지고 결국 사라져서 시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서 싸구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권태 때문에 조금 피곤해 보이지만 어딘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대로 괜찮아 보인다. 불안하지 않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꽤 공평해 보인다.


이곳과 저곳은 같은 곳인데 시간이 달라졌다. 눈에 드러나지 않게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의 ‘죄와 벌‘을 매일 필사하는 27살의 청년이 왕왕 찾아온다. 와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간다. 그가 습작하는 소설을 보여주었는데 흥미로웠다. 그 세계에도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자기만족을 위해 습작을 한다는 그 청년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미치도록 좋아하는 죄와 벌을 몇 번이고 필사를 한다.


무대에서 카펜터즈의 노래 부르기가 끝이 나고 두 시간 정도 음악을 듣고 음악감상실을 나오니 어두운 하늘인데도 잿빛으로 보였고 이내 비가 두두둑 떨어졌다. 그 뒤로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좋아하는 토요일 오후 1시가 지나면 정말이지 싫은 일요일 오후 4시가 다가온다. 푸석푸석해서 성냥으로 그으면 불이 그대로 붙어서 날름거리는 불꽃을 만들 것 같은 시간이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카렌은 이미 죽고 없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가족관계에도 들어가서 누군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일주일 중에 가장 좋은 시간 토요일 오후 1시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보냈던 일주일 역시 행복했다. 토요일 오후 1시라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카렌 카펜터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파르트헤이트가 없고, 지금 이 시간도 토요일 오후 1시같은 시간이 가득하길 바라며 최근에 많이 들었던 노래 'love me for what i am'를 들어보자.


https://youtu.be/O0RWiUxIl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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