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햇빛에 속수무책으로 신나게 탄다. 이러다간,,, 까지 생각하다가 또 겨울이 되면 다시 탄 끼가 빠지게 된다. 조깅을 하다가 맞은편에서 나만큼 까만 사람이 훅훅하며 뛰어오면, 아아 당신도 올여름 꽤 태양과 맞섰군요, 열심히 달리십시오!라고 말하고 싶다.

조깅을 할 때를 제외하고 대체로 나는 컨버스를 신고 다닌다. 신고 벗고 하기가 불편한데 자주 신고 벗고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늘 컨버스를 신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럴 수 있나 할 정도로 아직까지 구두를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다. 

편견이지만 신발이라는 건 개성이라 컨버스가 나에게 가장 편하고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정장(역시 한 벌도 없지만) 같은 옷에도 어쩐지 어울려서 조깅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컨버스다. 그래서 또? 그 신발이야?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기호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루키의 어떤 에세이에서 ‘나는 스니커를 대단히 좋아한다.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생활하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나이를 먹는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계속 컨버스만 신게 되었다. 그걸 신고 걷는다고 해서 나이를 덜 먹는다거나, 먹는 게 두렵지 않다거나, 같은 생각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신발의 종류가 면 요리만큼 많아서 컨버스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보통 길을 걷다가 같은 옷을 입은 모르는 사람을 보면 약간 창피하다. 마찬가지로 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과 마주쳐도 약간은 부끄럽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같은 컨버스를 신고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앞으로를 생각해보면 분명 컨버스를 신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살아있다면 80세에도 너 좋을 대로 컨버스를 신고 다녀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같은 것이 존재한다. 어른인 것이다. 어른의 세계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미 이 세계는 그렇게 되어 버렸고 나도 그런 풍파에 휩쓸려 버린다.  

그러나 아직은 술렁술렁 글로써 허구를 써대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도로시의 마법구두처럼 컨버스화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버린다. 기세 좋게 컨버스화를 신고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의 거짓말을 해 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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