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싫지만 겨울은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에 또 알 수 없는 기대를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는 나이(와) 같다.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그날 불행한 거 같아, 싫어!라고 해서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는다든가, 나만 피해 가지 않는다. 매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오고 거리의 곳곳에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캐럴이 흘러나오고 카페에서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굿즈를 판매하고 커플을 위한 행사가 열리고 시즌 영화가 등장한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고 너무 좋아해도 하루 만에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어떤 나라는 11월이 되면 트리를 설치하고 캐럴을 들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일찍부터 즐긴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슬슬 지쳐서 크리스마스가 휙 지나가도 그렇게 아쉽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그 방법이 좋기 때문에 나도 일찍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준비라고 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저 혼자서 즐기는 것이다. 캐럴을 틀어 놓고 겨울만 되면 읽는 소설을 읽으며 철 지난겨울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었기에 일찍부터 그런 작업들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되어 있고 올해도 잘 부탁해, 하며 서로 인사를 한다.


캐럴을 듣다 보면 어떤 캐럴에 따라서 그때의 기억이 난다.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들으면 어린 시절의 동네 모습이 떠오른다. 동네에 작은 트리를 설치하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지만 사람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동네의 어묵 파는 곳에서 후후 불며 어묵을 먹곤 했다. 참 맛있었다. 대학교 자취할 때에는 또 모두가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송에 빠져 있어서 겨울의 자취방에 모여 앉아서 촛불 따위를 켜고 술을 마시며 하하하 웃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건축과와 의상과가 늘 친하게 붙어 지냈다. 여잔지 남잔지 구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지처럼 지낼 때도 많았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가지 않았던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서 싸구려 케이크를 자르고 캐럴을 신나게 부르며 보내곤 했다.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들으면 제대를 하고 다녔던 토건회사를 나와서 겨울 두 달 동안 고구마 장사를 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고구마 장사가 잘 되어서 가스를 한 통 더 구입해서 두통으로 고구마를 구웠다. 장사가 잘 되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농산물 시장에 일찍 가서 좋은 고구마를 직접 구입했다. 좋은 고구마라는 건 구웠을 때 뭐랄까 입 안에서 퍼석이지 않고 잘 녹는 느낌의 군고구마가 되는 고구마를 말한다. 캐럴을 틀어 놓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수 만들어서 7천 원 이상 고구마를 사가는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로 줬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근처라 아파트에 배달을 했다. 이런 것들이 먹혀 들어서 회사에서 퇴근하고 한 잔씩 하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들은 만원을 탁 꺼내 주며 5천 원어치 사면 시원하게 5천 원은 팁으로 주곤 했다. 그리고 몇 동 몇 호로 가져다 달라고 하면 우리는 굽는 족족 배달을 했다. 그런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때 신나는 캐럴을 주로 틀었는데 터보의 캐럴도 생각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고 고구마를 팔면서 보낸 그때가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도 터보의 캐럴이 동네의 아파트 단지까지 울렸다. 누구 하나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가장 생각이 나고 어떤 크리스마스가 가장 행복했을까. 궁금하여 몇 명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질문을 해봤다.


어떤 크리스마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또 어떤 크리스마스가  행복했는지,
크리스마스 하면 어떤 캐럴이 가장 떠오르는지,
그리고 보내고 싶은 크리스마스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부산에 사는 30대 후반의 여성 k양은,

"가장 행복하게 보낸 크리스마스는 대략 3개 정도가 기억이 나요, 3년 전에 남자 친구와 홍콩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기억이 나네요.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수십만 개의 불빛에 녹아들어 갈 뻔했어요. 즐거운 음악과 다국적 사람들의 소리가 혼재되어 있었어요. 원하는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아름다운 장소에서 평화롭고 즐겁게 와인을 한 잔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에요. 캐럴 하면 저는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요." https://youtu.be/yXQViqx6GMY



울산에서 꽃집을 경영하는 크리스천 30대 여성 E양은,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는 교회에서 예수님 탄생을 기뻐하는 축제에 맘껏 뛰놀았던 무대예요. 즐거웠죠.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니까. 행복하게 보낸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이었어요. 캐럴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앞으로 보내고 싶은 크리스마스는 눈 오는 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너무 단순한가요?(웃음)" https://youtu.be/w9QLn7gM-hY



서울의 20대 중반 여성 스즈키 안(예명)은,

"어릴 때 따뜻한 집에서 식탁에 촛불을 켜고 가족 식사를 했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는 애인과 시청 앞 광정에 스케이트를 타러 갔던 일이요. 꼭 영화 같았어요. 캐럴은 옛날의 노래 '징글벨 징글벨'이 가장 생각나요.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실내에서 음악 들으면서 잔잔하게 보내고 싶어요." https://youtu.be/xLJ28L7qK-0



울산 사는 항공 승무원 과에 다니는 20대 J양은,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2014년 캄보디아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생애 첫여름 크리스마스를 잊지 못해요. 크리스마슨데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행복한 크리스마스는 2019년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첫 크리스마스 홈파티를 했어요. 정말 그림 같았어요. 크리스마스 하면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가장 떠올라요. 2012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들이랑 다 같이 학예회 나간다고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앞으로 오는 크리스마에는 연인과 함께 손 잡고 길거리 걸으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요.” https://youtu.be/g7VKQMytX8M



울산 사는 10대 N양은,
“사실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없어요. 아무리 그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했더라도 이별은 악이었기에 기억에 남지 않아요.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그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면 작년 부산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예요. 어떻게 보냈는지 비밀이라 말할 순 없지만.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는 커피소년의 '크리스마스엔' 이에요. 이제는 크리스마의 로망이 없어요. 허울뿐이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고 할까요.” https://youtu.be/didi_lJHxVs



미국 보스턴에서 오래 살다가 남양주에 정착한 30대 여성 둘리(예명) 양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는 어릴 때 스케치북에 갖고 싶은 거 써 놓고 잤는데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없었던 때와 유치원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셨는데 저녁까지 못 기다리고 낮부터 할머니한테 언제 오냐고 전화해보라고 백 번은 더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나요.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는 커서 보스턴에서 살 때 처음 경험하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문화였어요.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 그것이었어요. 크리스마스 캐럴 하면 'Baby It's Cold Outside'입니다. 저는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https://youtu.be/6bbuBubZ1yE



마지막으로 울산 사는 귀여운 6세 M양은,

“음, 음, 아침에 일어났는데 엘사 인형을 받았어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인투디 언 노오운'. (아주 조용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 두 개 줬으면 좋겠어요.” https://youtu.be/gIOyB9ZXn8s




모두 제각각의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기억하는 크리스마스의 한 부분 역시 다르지만 원하고 바라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사랑하는 이와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 한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라는 가공의 모습은 찬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모두 불만 없이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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