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는 닭은 귀한 음식이었다. 닭은 소나 돼지처럼 사료를 먹기 때문에 돈이 들어가는 가축인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집에서 닭을 함부로 막 잡아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렵이 가능했던 시대에는 꿩이나 참새를 잡아먹었다. 물론 사료를 먹지 않아서 꿩이나 참새에게서 나오는 고기는 닭만큼 부드럽고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끔 집에서 닭을 잡아먹을 때면 국물을 우려내서 한 마리만으로도 온 가족이 다 먹을 수 있게 요리를 해 먹었다. 그것이 닭백숙 내지는 닭곰탕 같은 음식이다. 가부장제였던 시대에 닭을 삶아서 나오는 딱 두 개뿐인 다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를 식구들이 나눠 먹었다. 

닭다리를 좋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영화 '관상'을 봐도 닭다리를 주지 않는 내경(송강호)에게 삐진 팽헌(조정석)의 모습이 나온다. 치킨이 세상에 나온 뒤부터 닭은 물에 빠진 것보다 기름에 빠진 닭이 더 맛있어졌다. 

닭곰탕은 물놀이 후에 먹으면 참 맛있다. 불영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삼근이라는 동네에 외가가 있는데 계곡은 죽 이어진다. 어린 시절의 내 외가는 물이 맑아서 가재도 솔찬히 볼 수 있고 1 급수에만 살고 있는 물고기들도 잡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외가에 들어오면 솥에서 닭 삶는 냄새가 난다.

외가의 집 구조는 2층 집으로 개울가에 있어서 2층에 누워 있으면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리고 1층에는 마당이 있는데 보통 2층으로 올라 1층의 옥상 내지는 2층의 입구에서 삶은 닭을 둘러앉아서 먹는다. 지대가 높아서 밤이면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보인다. 학창 시절의 여름이면 그곳으로 어김없이 가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면서 박정대의 시를 읽고, 최승자의 시를 읽었다.

어린 시절의 여름에는 늘 개울에 몸을 담갔다. 물놀이를 하고 나온 후라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앉아서 닭곰탕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외숙모가 열심히 닭을 삶아서 이것저것 넣어서 다리를 푹푹 찢고 살을 발라서 많이 먹으라고 그릇에 넣어준다. 촌에서 닭을 삶아서 먹으면 그런 일종의 행위가 닭곰탕의 맛을 더 끌어올려준다.

시간이 지나 물놀이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외가에서 닭을 삶아 먹으면 술을 곁들였다. 개울가의 그늘에 앉아서 발을 물에 담그고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낸다. 사실 책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소리, 잠자리 같은 것들이 비행하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 일련의 자연의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 일을 하며 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나른한 졸음에 겨워 졸게 된다. 

가끔 낚시도 하는데 고기를 많이 잡고 싶은데 고기가 낚이지 말았으면 한다. 이상하게도 중고등학생 때에는 잡은 고기를 잘도 매운탕으로 끓여 먹었는데 이젠 살아있는 고기를 죽이는 것이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 외숙모가 힘이 잔뜩 있었을 때에는 키우는 닭을 잡아서 백숙을 해 먹었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뽑히지 않은 털이 씹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트에서 생닭을 구입해서 닭을 삶아 먹는다. 개울에 나가기 전에 냄비에 닭을 넣고 나온다. 개울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졸고 있으면 저 멀리서 점처럼 보이는 외숙모가 “관아, 관아”라고 부른다. 닭이 다 삶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린 시절 외숙모가 했던 그 행위를 내가 하게 된다.

일행과 함께 2층에 자리를 펴고 삶은 닭을 죽죽 찢어서 외숙모의 그릇에 담아주는 일은 내가 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흘러서 배역이 바뀌게 되는 시점이 온다. 마치 물리학의 법칙을 몸으로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 연쇄에 우리는 놓이게 된다. 


이제는 닭곰탕을 먹으며 술을 같이 먹는다. 맥주도 좋고 소주도 좋고 막걸리도 좋다. 마시면서 이렇게 좋은 시간과 좋은 음식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인간의 삶이라는 게 꼭 코미디 같다. 힘들고 슬픈 일들이 잔뜩인데 늘 웃는 얼굴로 다녀야 하는 코미디. 영화 ‘선물’에서 죽어가는 아내 때문에 미치도록 슬픈데 관객 앞에서는 웃겨야 하는 남자 이정재의 모습이 휙 스쳐간다. 인생은 코미디고 채플린의 말처럼 코미디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하지만 내가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모든 아름다움과 예술은 비극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이렇게 닭곰탕에 후추를 가득 뿌리고 계란지단으로 국수를 만들어 말아먹으면서도 아름다움은 시작된다. 그렇게 닭백숙도 아름답게 시작된다. 모든 음식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