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란 힘든 일, 이라는T.S. 엘리엇의 유명한 말이 있는데,라고 시작하는 이 에세이를 읽으면 역시 재미있다. 일본의 러브 모텔의 이름에 관한 내용인데 무척이나 재미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모텔 이름도 찾아보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름이 많았다. 요컨대 무진장 여관 같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보면 블랙 이와이와 화이트 이와이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소설적 하루키와 다르게 하루키의 에세이는(다 그런 건 아니지만-슬픈 외국어처럼) 진중한 나이 많은 개보다는 세상을 알아버린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밝고 경쾌하다.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어떻든 이 에세이에서 러브호텔은 생긴 모양을 떠나 단편소설을 쓰려고 러브호텔을 간다거나 모임을 하러 가지는 않는 곳으로, 러브호텔은 딱 러브호텔의 쓰임이 확실한 장소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러브호텔의 이름 역시 신경 써서 짓는다는 건 어쩌고 저쩌고 한다.


이름과는 무관하게 딱 용도에 맞는 곳이 경찰서다. 요즘은 지구대로 바뀐 이름이지만 경찰서는 이름이 경찰서다. 비행기나 배처럼 각각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버스와 택시 같은 것이다. 그냥 택시이고 시내버스이다.


저쪽 경찰서의 이름은 ‘우리는 너희의 경찰서’라든가, 저쪽 경찰서의 이름이 ‘평지경(평화를 지키는 경찰서)’라든가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름이 경. 찰. 서.이다. 경찰서는 그 용도가 있지만 실은 경찰서는 이름에서 흘러나오는 느낌보다, 또 우리 머릿속에 가득한 경찰서라는 곳의 특수성에 맞는 용도 그 이외의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김승옥의 소설 ‘다산성’에서도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우중충한 경찰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속에서 영감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라는 문장처럼, 경찰서는 범. 인. 을. 잡. 는. 일. 이 목적인 장소지만 그 속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얼마 전에 경찰에서 제법 오래 일한 친구가 저 멀리 후진국의 경찰국으로 가서 잘 보이지 않는 범인의 자동차 번호판을 찍어 놓은 카메라의 화면을 캡처해서 좀 잘 보이게 작업을 하는 것을 알려 달라고 왔다. 그러니까 포토샵으로 좀 선명하게, 좀 잘 보이게 하는 작업이다.


아예 보이지 않는 번호를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비스듬히 찍혀 애매한 번호판은 크롭을 하여 전체를 선택해서 화면을 일그러트려 샤픈을 몇 번 주면 어느 정도 번호가 드러나게 된다. 경찰인 친구는 이 방법을 우리보다 조금 뒤진 아프리카의 한 국가의 경찰서로 가서 이런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좀 웃기지만 강의를 하고 나면 그곳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경찰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듣는데,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산 빌리러 오는 사람, 화장실 찾는 사람, 도망간 아내에 대해 하소연하는 사람, 토하는 사람, 취해서 노래 부르는 사람, 이불 얻으러 오는 사람. 나는 마치 이야기 수집가처럼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을 한다.


몇 명 안 되는 근무자들이 그 많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을 전부 상대해주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만약 내가 경찰이고 밤 근무자였다면 노이로제 약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지만 하루키의 모텔 이름에 관한 글을 보다가 우리나라의 모텔 이름은 어떨까? 하면서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었다. 생각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 이름이 많았다.


대구 기차역 주변에 친절히 영어로 ‘baby one more time’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또 제주도의 한 곳에 ‘특 급, 한 마 음’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특급’이라는 글자는 조금 작게 위에 간판이 있고, ‘한마음’이라는 글자는 밑에 세 글자가 있는 형태다. 밤이 되면 글자에 네온 불이 들어오는데, ‘특’ 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급 한 마 음’으로 보이는 모텔이다.


오래전에 많이 보던 이름의 모텔 이름도 있다. 나주시청을 지나 영산포 다리를 건너면 ‘벌꿀장’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또 예스러운 ‘드가장’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다. 이곳 주인은 ‘에드가 드가’를 좋아한 것일까. 미대를 졸업하고 미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모텔을 열지 않았을까. 방마다 분명 드가의 ‘머리 빗는 여인’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멋진 모텔이다. 드가장이 있으면 ‘무진장’ 여관도 있다. 예전에는 이름을 짓는 것도 직관적이었다.


대구에 꼬모 모텔이라는 신개념 모텔이 있는데, 카페와 결합되어 있어서 호텔보다 좋은 환경의 모텔이라고 해서 많은 남녀가 찾는다. 방안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만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하여 친구들끼리 파티를 위해서 많이 온다고 한다. 이곳의 결합된 카페는 조식이 제공된다고 한다. 아침 일찍 부스스한 커플들이 좀비처럼 걸어 나와 카페에 앉아서 서로 모른 체하며 조식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재미있다.


베르사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는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곳에 ‘준희빈’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모텔이 또 있다. 아마 두 모텔의 주인의 이름이 준희와 희빈, 정도가 아닐까. 내친김에 우리 숙박업에 뛰어들자. 불끈! 했을지도 모른다.


Iu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다. 꽈배기 모텔도 있고, 대구 성서에는 MBL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는데 ‘몸부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이름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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