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 아이로 먹자, 라는 말은 일전에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3살 정도 된 아이에게 엄마가 조각 케이크를 고르며 한 말이다. 줄 서 있다가 뒤에서 듣고 놀랐지만 표는 내지 않았다.


오늘은 요 아이로 먹자.


의인화가 모든 분야에 적용된 요즘, 젊은 엄마들이 늘 하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언뜻 들으면 섬뜩한 말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하다니. 오늘은 요 아이로 먹자. 뭔가 모골이 송연하다.


일상에 의인화가 파고든지는 오래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의인화를 일반화시켜서 생활한다. 요컨대 자신의 자동차를 그저 ‘이 차는'라고 하기보다 ‘이 녀석’라고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카메라도 이 녀석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역시 어색하지 않게 사람들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홈쇼핑에서 물품에 ‘얘’라고 의인화시키면서 의인화의 바람이 돌풍처럼 인간생활 전반을 덮쳤다. 외국도 그러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외국은 어떻게 표기하는지 알고 싶다. 백화점에서 옷을 설명하는데도 얘는 이렇고 쟤는 저렇고, 가방도 요 아이는 이런 옷차림에 어울린다고 하고, 유튜브 속 유명인의 아내나 셀럽 엄마들이 아이가 유치원에서 오면 요 아이(음식 기기)로 간단하게 만들어서 먹이면 아이들이 좋아하네 마네 같은 말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먹는 음식에까지 의인화를 하기 시작했다. '요 아이로 먹자', 무슨 식인종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종족이 인간을 개처럼 끌고 다니며 얘를 오늘 먹고 쟤를 내일 먹자,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음식을 의인화로 말하는 것이 배우고 못 배우고의 문제는 아는 것 같다. 요 아이로 먹자고 말하는 아이의 엄마도 아이의 엄마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제대로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배움에 있어서는 남 못지않았을 것이다. 할머니 세대들, 7, 80대가 넘은 할머니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음식에 의인화를 시켜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건 하나의 흐름이자 유행이라고 생각된다. 유행이다 보니 홈쇼핑, 예능, 유튜브에서 모두가 그렇게 사물의 의인화로 말을 한다. 그리고 먹는 음식을 의인화시켰다.

 

이런 의인화가 우리가 좋아하는 고독한 미식가에게 까지 퍼졌다. 먹뱉논란이 끊이지 않는 유튜브의 홍수 속에서도 고로 상은 롱테이크로 맛있게 음식을 끝까지 씹어서 꿀꺽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1분 이상 이어지는 롱테이크로 한 인물을 촬영하려면 그 인물이 연기력이 높아야 가능한 촬영이다.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가 그렇다. 카메라는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롱테이크로 간다. 그렇게 하려면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피부에 그 감정을 드러내야 가능하다. 그렇기에 상까지 타지 않았나. 어떻든 고로 상은 그걸 해내고 있다.


우리의 고로 상도 이렇게 음식에 의인화를 시켰다. 단순히 번역가가 의인화로 자막을 그렇게 한 것이라 믿고 싶지만 대사에 ‘코이츠가 오이시이’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원본에서도 음식을 의인화시켰다고 본다. 이제 먹방에 쓰이는 대사와 자막은 음식의 의인화가 일상화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알리기 위한 전문가 두 명의 방송에는 음식의 의인화가 없다. 한 명은 황교익으로 박찬일, 임지호와 함께 오래전부터 바른 먹거리를 사람들에게 먹이려는 운동을 하고 있다. 좋은 식재료, 즉 제철음식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맛과 영양, 둘을 동시에 잡는 일이라 말하고 있다.


 

또 한 명은 백종원으로 1인 가족이 4인 가족을 넘어선 요즘 조금 건강에는 썩 좋을 리는 없지만 비싸지 않은 식재료를 가지고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인 가족의 경우 퇴근 후에 파김치가 된 몰골로 제철 식재료를 구해와서 다듬고 손질해서 그걸 다시 요리를 해 먹기에는 너무 힘들고 지친다.

 

내 생각에 이 두 사람 다 끼니를 때운다기보다 한 끼를 제대로 먹이려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전문가들이다.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의 방송에서는 음식의 의인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음식을 음식으로 대하지 이 녀석은, 이아이는, 요 아이는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무생물의 의인화가 나쁘지는 않다. 친숙하게 느껴지고 친구처럼 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음식의 의인화는 좀 그렇잖아. 자신의 애를 보며, 오늘은 요 아이로 먹자. 이 말은 정말 충격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런 올바른? 생각도 어쩌면 시효 되고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유행에, 흐름에 먹혀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인화를 시키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바로 옆의 사람도 사물에 ‘얘가'같은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그것을 지적하는 것도 이제 이상한 일이 되었다. 즉 이상한 놈이 되는 것이다. 평범한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은 일로 이상한 사람으로 내몰리는 것 또한 나 역시 싫다. 음식의 화려한 달변가인 고로 상마저 ‘이 녀석이 맛있군’라고 해버리니 이제는 참과 거짓, 악과 선이 정말 모호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어떤 녀석을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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