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감하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딱히 싫어하는 음식도 없다. 매운 음식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다 먹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는 거와 흡사하다. 좋아하는 영화가 딱 정해진 게 아니니까. 그래서 대체로 많이 본 영화를 말하곤 한다. 예전에는 이와이 슌지 영화를 많이 봤다. 보통 그 사람의 영화를 스무 번 정도는 봤다. 이와이 슌지는 자신의 영화를 그렇게 보게끔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하나와 엘리스를 한창 여러 번 볼 때 마니아를 만났다. 하나와 엘리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되었다. 영화는 보면 볼수록 양파껍질처럼 숨은 이야기가 막 튀어나왔다. 요컨대 키켓으로 시작된 광고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기 까지, 하나의 이야기 버전이 먼저 나왔지만 영화로는 아리스의 버전으로 되었고(후에 시간이 흘러 하나의 버전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마크의 뒷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있을 것이다, 까지 끝도 없이 나오게 되었다. 둘 다 막상막하였지만 내가 졌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와 엘리스 영화 속 장면을 전부 다니면서 영화를 몸으로 느꼈다. 영화로는 선생님이었다. 이와이 슌지의 모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근간에 많이 본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다. 버닝은 서른 번 정도 본 것 같다. 역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변영주 감독이 한 말인데, 영화에 미치면 같은 영화를 계속 본다. 2단계는 지겨울 때까지 본다. 그러다가 3단계는 리뷰를 미친 듯이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때부터 이미 미친 것이다.라고. 


그렇게 따져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밥을 제외하고 근간에 제일 많이 먹어 본 음식은 멍게다. 그래, 나는 멍게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 멍게의 맛과 향이 좋다. 멍게가 입안에서 퍼질 때 미묘하게 기도를 통해서 코로 터져 나오는 그 향이 좋다. 정말 좋다. 


그래서 멍게를 먹을 때는 초장도 간장도 그 무엇도 곁들이지 않고 멍게만을 먹는다. 멍게는 살짝 데쳐서 먹는 맛의 풍미가 더 한데 귀찮기 때문에 그냥 먹는다. 멍게 비빔밥도 멍게와 미나리무침 정도로만 비벼 먹는다. 다른 양념장이나 간이 센 재료는 넣지 않는다. 입안에서 멍게가 펼치는 바다의 고혹한 맛과 밥알의 조화가 좋다. 그 사이를 미나리 정도가 간지럽히는 맛이 좋다.


멍게를 좋아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은 별로다. 딱 보이는 정도만큼 사 와서 요만큼만 먹는다. 그리고 이틀 뒤에 또 요만큼 사 먹는다. 그렇게 해서 이번 여름의 초입에는 멍게를 다른 해보다 실컷 먹었다.


넌 바닷가에 살기 때문에 멍게를 자주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 산골에 가도 마트에 가면 멍게는 여봐란듯이 널려 있다. 아직도 고래 타고 다니는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울산에는 지하철이 없으니 어떻게 다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면 바다가 다 보이는 줄 안다. 멍게로 때려주고 싶다. 흥.


횟집에 가면 멍게를 한 접시 시켜 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회를 먹는데 나는 멍게가 좋아서 멍게를 오물오물 먹는다. 생각해보면 멍게가 가장 맛있었던 것은 바다가 보이는 간이 횟집에 앉아서 먹었을 때다. 포항에서 그랬고, 강릉에서 그랬고, 속초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집 근처 어선이 들락거리는 곳에도 노점 횟집들이 있는데 바다가 보이고 갈매기가 날고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 앉아서 먹는 멍게 맛이 가장 맛있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 할머니들이 앉아서 호객하는 소리, 뱃고동 소리, 철석이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운율처럼 들리는 가운데 먹었던 멍게의 맛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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