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잿빛 하늘이 펼쳐졌다. 흐리고 비가 날리는 향연이 계속되는 날이다. 비가 온 다음이지만 날은 푸석해서 성냥으로 그으면 불이 확 붙어 그대로 날름거리는 불꽃을 만들 것 같은 날이다. 날 때문인지 주말이지만 사람들은 권태를 짊어지고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겨울에 비가 오면 달려가서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있다. 카페는 재즈카페로 무대도 있어서 밤이면 어촌에 기거하는 외국인들이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한다. 재즈카페이기에 재즈곡이 흘러나오는데 내가 아는 곡은 블로섬 디어리나 빌리 홀리데이 노래 정도다. 그녀들의 노래가 비 속도에 맞춰 흘러나온다

 

빌리 홀리데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13살에 태어났다. 10살 때부터 강간을 당하기 시작했고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삶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그녀였지만 음반판매에 그녀를 이용가치에만 전념했던 레코드 회사 덕분에 약물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이용만 당하다가 일찍 죽어버린 뮤지션들이 꽤 있다

 

카펜터즈의 카렌도 그 중 한 명이다. 카렌 카펜터도 노래는 잘 불렀지만 음악성이 오빠에 뒤졌고 그저 오빠가 만든 노래를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르기만 강요당했다. 사람들은 카렌에게 착한 이미지를 덧 씌워 어떤 일탈도 하지 못하게 했다. 카렌은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74년 일본 공연에서는 드럼을 연주자처럼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짝 마를 대로 말라서 결국 쓸쓸하게 죽음으로 갔다

 

12월이 오고 주말이 오는 동안 곳곳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 모습을 방관자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이 세계에 아파르트헤이트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기괴망측했다

 

사람들은 다들, 살면서 하나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지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키는 설령 혹시 운 좋게 그것을 찾았다 해도 실제로 찾아낸 것의 대부분이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손을 뻗어 겨우 잡은 그것들은 언제나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고 추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간이란 살아가는 의미 자체가 사라져버리게 된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한 없이 평온하고 권태 때문에 조금은 피곤해보이지만 그것대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화면속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눈물을 흘렸고 주저앉았고 쓰러져갔다

 

이곳과 저곳은 같은 곳으로 이미 이 세계는 눈에 드러나지 않게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의 죄와 벌을 매일 필사하는 26살의 청년이 자주 찾아온다. 쓰고 있는 소설을 보여주는데 흥미로웠다. 공모전에 출품을 권유했지만 그는 자기만족으로 글을 쓰면 족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치도록 좋아하는 죄와 벌을 몇 번이고 필사를 한다고 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을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게 묘사한 도스토옙. 신이라는 것이 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창조물인데 그 신이라는 존재에게 버림받은 인간이라니. 이런 모순이 마치 인간사회를 보는 것 같다. 도스토옙 소설 그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때마침 카페에 블로섬 디어리의 some one to watch over me가 흘러나온다. 도스토옙도 죽고, 블로섬 디어리도 죽고 없지만 그녀의 노래는 살아있고 그의 글도 이렇게 살아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 우리는 모순의 패러독스 속에서 무모순을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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