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다. 날은 어둡고 커튼을 걷지 않고 강아지가 짖지 않고 시계를 보지 않는다면 시간을 알 수 없는 날이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를 듣는다. 세계가 변하건 변하지 않건 머리를 감고 이를 닦는 것처럼 비가 내리면 그 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필요는 없지만 시간을 들여 빗소리에 집중을 해보면 상당하다

 

예전에 오늘처럼, 영화에서처럼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니, 여행을 갔는데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린 적이 있었다. 일행과 함께 남이섬 그쪽을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비가 굉장히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았고 겨우 하나 있던 산속의 도로가 물에 잠겨 되돌아 오는데 한 시간을 다시 나와야 했다. 옆으로 보이는 개울물이 불어서 꽤 겁이 났다. 음악도 끄고 와이퍼의 동작을 3단으로 하고 오는데 자동차 지붕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뮤즈의 드러머가 두드리는 북소리 같았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고 찝찝했는데 도로에 물이 많이 고인 곳에서 차 시동이 꺼진 것이다. 완전 영화에서의 상황이었다. 일행이 무서워했는데 내가 더 무서웠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산속의 도로에서 시동이 꺼진 차에 갇혀 있는 건 꽤나 큰 공포였다.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서 할수 없이 내려서 영화처럼 보닛을 열었는데 저 앞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앞이 보이지 않는 빗속에 빠르게 오고 있었다는 말은 다들 알겠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돌아오다 보니 식당이 한군데 문을 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너무 와서 여행객들이 없어서 손님이 우리 둘뿐이었다. 주인 내외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반계탕을 주문했는데 만두까지 주셨다. 반계탕의 국물이 체내에 퍼지니 퍼붓는 비와는 상관없이 몸이 나른해졌다. 닭고기의 살을 뜯어 먹고 호기롭게 소주까지 한 잔 마셨다

 

식당은 안에서 밖의 개울이 다 보였는데 어쩌다가 주인 내외와 함께 네 명이 나란히 앉아서 개울에 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한 10분 정도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건 정말 목가적인 풍경으로 타닥타닥 하는 빗소리와 두두두둑 하는 빗소리 그리고 쏴아 하는 개울의 소리가 마치 콰르텟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반계탕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에 식은 우리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만두는 만들어 놓은지 시간이 좀 되어서 들었을 때 허물어졌지만 맛이 좋아서 다 먹어 버렸다. 주인 내외는 마음씨가 좋아서 비가 그치면 가라시며 출입구 쪽이 아닌 개울 쪽 처마 밑의 평상에 우리 자리를 마련해주어서 시간을 들여 비가 내리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언젠가 이 목가적인 풍경을 글로 멋지게 써봐야지 생각했는데 멋지게 쓰지는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잠시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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