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상처로 인해 만들어진 슬픔은 없어지지 않으니 슬픔을 끌어안을 때 슬픔은 점점 작아져 작은 돌이 되어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된다.
슬픔을 반으로 나누자,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같은 슬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어제 오전에 동두천 어린이집 통학차량 피해 아동의 외할머니의 인터뷰를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끔찍했다고 한다. 어딘가 막 데이고 시퍼렇고 아기의 팔도 막 이렇게 틀어져 있었다고 했다. 아이는 더위에 몸부림을 친 것 같다고,
그래서 아기를 영안실에 놓을 때 뼈를 맞춰서 이렇게 똑바로 눕혀놨다고 했다
.
아이는 혼자서 안전벨트는 못 풀지 혼자 발악을 하다가 열기는 뜨거워지는데 그 속에서 7시간을 몸부림을
치다 그 연약한 뼈가 다 틀어진 것이다. 어른도 십분만 지금 날씨에 걸어 다니면 징징대는데 7시간을 아이는 발버둥을 치다
죽어버렸다.
빈소에는 아이의 사진도 못 걸어 놓고 있다고 했다. 사진만 보면 아이의 엄마는 그대로 실신을 해
버리고, 깨어나면 아기 얼굴 보여달라고 한다고
.
아기의 엄마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위로받을 수도 없다.
상실을 이겨내려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상처를 잊으려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영화#래빗홀
#법은강화됐지만법을지키는운전자와어린이집관계자가없다
#우리어린이집에서는않일어나겠지하는생각때문에
#아이가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