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조지는 타이어 자국이 깊게 파인 진입로에 들어섰다. 땅거미는 내려앉았지만 아직 집 주위에 둘러쳐진 노란 테이프가 보였다.
차를 주차했지만 시동은 끄지 않았다. 뉴에식스의 막다른 길에 숨어 있다시피 한 집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여기 왔던 때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 소나무에서 저 소나무로 넓은 원을 그리며 폴리스 라인이 둘러졌고, 현관문에는 흰색과 빨간색 테이프가 X자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그는 시동을 껐다. 에어컨이 멈추자마자 숨 막
힐 듯한 더위가 밀려들었다. 태양이 나직이 걸린 데다 울창한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한층 더 어둑했다.
조지는 차에서 내렸다. 눅눅한 공기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고, 멀리서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진갈색 목재 가옥은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에 섞여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외벽은 때가 타서 거뭇거뭇했고, 길쭉한 창문 안쪽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폴리스 라인”, “넘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힌 노란 테이프 아래로 몸을 숙여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 뒤의 썩은 데크로 걸어가며 들어갈 수 있는 미닫이 유리문이 열려 있기를 바랐다.
만약 잠겨 있다면 돌을 던져 유리문을 깰 것이다. 어떻게든 집 안으로 들어가 최대한 빨리 둘러보며 경찰이 놓친 단서를 찾아볼 작정이었다.
유리문에도 테이프가 붙어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조지는 서늘한 실내로 들어갔다. 집 안에 들어가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비현실적일 정도로 차분해졌다. 마치 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찾아야 할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보면 알 거야.
경찰이 집 안을 샅샅이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곳곳에 지문 채취용 가루가 한두 줄씩 남아 있고, 마약을 녹이는 데 사용한 스푼도 커피 테이블에서 사라졌다. 조지는 제일 큰 침실이 있는 저택 동쪽으로 향했다.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방이었다. 난장판으로 어질러졌을 거라고 예상하며 문을 열었지만 의외로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천장이 낮은 널찍한 침실로, 꽃무늬 침구를 씌운 킹사이즈 침대와 맞은편에 놓인 두 개의 서랍장이 있었다. 서랍장 위에 세워진 테 없는 사진틀의 지저분한 유리 너머로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이 보였다. 생일 파티 사진과 졸업식 사진이었다.
서랍을 열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옷가지와 헤어브러시, 상자에 든 향수병들뿐이었다. 모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았고 꽃향기 같은 좀약 냄새가 풍겼다.
카펫이 깔린 계단은 아래층으로 이어졌다. 현관 옆의 층계참을 지날 때는 그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녀가 쓰러졌던 곳,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며 죽어간 곳을 유달리 오래 바라보았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는 왼쪽으로 돌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로 들어갔다. 넓은 지하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벽에 달린 전등 스위치를 켜봤지만 이미 전기가 끊겼는지 불이 들어오
지 않았다. 미리 뒷주머니에 넣어둔 소형 플래시를 꺼내 희미한 불빛으로 지하실을 비췄다. 중앙에 놓인 아름다운 빈티지 탁구대에는 초록색이 아닌 빨간색 펠트가 깔렸고, 당구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저쪽 모퉁이에는 높은 바 테이블과 스툴 대여섯 개가 있고, 벽에 “조지 디켈 테네시 위스키”라고 적힌 대형 거울이 걸려 있었다. 거울 앞 빈 선반에는 한때 술병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었을 테지만 다 마시고 버린 지 오래였다.
찾아야 할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보면 알 거야.
조지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작은 침실 두 개를 훑어보며 최근 그 방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도 같은 생각이었을 테니 조금이라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증거는 모두 가져갔으리라. 그래도 조지는 직접 와서 찾아봐야 했다. 분명 무언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그녀가 무언가 두고 갔을 것이다.
마침내 거실 책꽂이의 눈높이쯤 되는 선반에서 그걸 찾아냈다. 하얀색 양장본으로, 마치 도서관에서 빌린 책처럼 비닐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보트 사용설명서라든가 가이드북, 오래전에 출간된 아동용 백과사전 같은 실용서들 속에서 단연 두드러졌다. 같은 선반에 다른 소설도 있었지만 모두 대중적인 스릴러 소설 문고본이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톰 클랜시의 책 같은.
그는 책등을 쓰다듬었다. 가늘고 우아한 빨간색 글씨체로 제목과 작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책. 그들이 처음 만난 대학 1학년 때 그녀가 선물로 주기도 했다. 추운 겨울밤에는 기숙사 방에서 이 책을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는 책 속의 몇 구절을 아직도 외우고 있었다.
책을 꺼내 책장이 우둘투둘하게 잘린 옆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책이 6페이지에서 벌어졌다. 두 문장 주위로 깔끔하게 그린 네모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책에 표시를 해두던 게 기억났다. 형광펜을 쓰지도, 밑줄을 긋지도 않고 그냥 단어와 문장, 문단 주위로 깔끔하게 네모를 그릴 뿐이었다.
처음에는 네모 안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이 6페이지에서 펼쳐진 건 우연이 아니라 거기에 엽서가 끼여 있었기 때문이다. 엽서 뒷면은 오래되어 살짝 누렇게 바랬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엽서를 뒤집었더니 폐허가 된 마야 시대 유적지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관목이 우거진 절벽 위의 허물어진 유적인데 옛날 엽서라서 바다와 잔디가 촌스러울 정도로 새파랬다. 그는 다시 엽서를 뒤집었다. 맨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멕시코 킨타나로 주, 툴룸의 마야 유적지.”
* 2회. 첫사랑이 돌아왔다 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