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 블루스 1
정철연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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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별을 겪고 나서부터 만화를 게재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평소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이지만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확대하려 하지 않고, 무엇보다 길지 않다는 것에 <마린 블루스>가 조금씩 끌리게 되었다. 또, 주변의 것을 어쩜 그리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는지...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을지언정 독자들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컷들이었다.

예를 들어 작가 본인이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틀에 박힌 일반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컴퓨터 뒤에 숨어 쏟아지는 잠을 청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취생활을 하는 작가의 생활에 공감대가 더 크게 형성되었다. 엉뚱한 에피소드들의 스토리 전개가 그저 소박하게만 보여 좋았다. 크게 웃어 놓고도 뒤돌아보면 생각나지 않는 일시적인 뻥튀기 만화가 아닌 읽을 당시에도 즐겁고 뒤돌아서면 왠지 더 생각나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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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선 나무 - 조정래 산문집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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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씨가 시를 썼었는지, 그에게도 단편이 있었는지에 대해 난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그를 십여 권의 책을 뽑아내는 거대작가로만 생각하고, 대강 어느 정도의 노력과 시간은 필요로 하리라 생각했지만 또 이만큼의 큰 노고와 경제력이 투자 되었으리라고는 또한 짐작하지 못했다. 아마도 글을 모르고 완성된 작품만을 찾아 읽는 무지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하지만 너무도 쉽게는 아니더라도 우리 일반인에게라면 몰라도 작가 조정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어떠한 작가들은 단지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만큼 힘든 일이기에 평생에 하나 낼 수도 없는 대장편을 그는 세 편이나 발표했다. 그 분량도 모두가 10권에서 10권을 넘는 양이니 작가 조정래의 지인들조차 혀를 찰 큰일을 해낸 것이다. 이미 장편의 시대가 갔다는 만류와 달리 그는 소재며, 배경, 인물 설정에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읽히는 글을 뽑아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태백산맥>밖에는 읽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읽은 후 변명 같지만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렇지 않고 이미 조정래의 작품을 다 읽었다면 다시 읽지 않고는 좀이 쑤셔 견디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세 편의 거대 장편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과 에필로그, 혹은 프롤로그, 작가로서의 삶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태백산맥>을 보면서는 지나쳤던,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이름부터 배경이 된 장소 하나하나에까지 관심을 갖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전화번호부를 옆에 끼고 인물 이름을 결정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었는데, 작가 조정래는 이미 수백 명의 이름을 정해 놓고 이야기 전개 또한 그의 머리 속에서 서두만 풀어 놓으면 술술술 펼쳐진다고 하니 대단한 작가라고는 생각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인물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물의 성격과 잘 맞는 이름을 잘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명소를 차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누구나 홀로 선 나무>를 끝낸 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한 권 한 권 사 모아 읽었던 것은 처음부터 다시 이제 읽어야 할 것들은 좀더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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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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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국사, 역사, 등에 무심이 극에 달했다. ‘史’ 부분이라면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사극이라면 예고를 볼 때면 흥미를 느끼곤 하지만 챙겨 보는 일이란 드문 경우였다. 아니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이야기라는 것이 ‘史’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마 당시만 해도 ‘국사’라는 과목이 이해라기보다는 암기에 치중해 그로인한 강박관념(?)이 없지 않았으리라.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그렇고 선조들이 살았던 역대 왕의 년도를 그렇게 달달 외울 필요는 없었으리라.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뒤늦게 관심이 가기 시작한 건 현대 한국사와 전공이 국문이다 보니 현대 한국 문학을 배우고, 공부하면서 현대 한국사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골라 읽기 시작한 것 중 하나가 근래에 읽은 한홍구의 <대한민국 史>이다.

단군으로 시작된 민족주의에서 월드컵을 치루기까지의 우리 모습을 담고 있다. ‘史’를 이야기할 때 모두가 좋을 수만은 없는.. 더욱이 우리나라 정치사를 볼 때 더욱 그러한 부분을 작가는 그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고 있다.

물론 사고방식과 살아온 환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의 의견을 모두 다 수용하는 건 아니지만 나의 어설픈 지식을 조금 더 활성화 되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책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읽으려고 이 책을 들고 선 지금은 그의 의견을 토를 달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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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사랑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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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할 때면 누구나 허구임을 알면서도 ‘저거 진짜 아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손석춘씨의 작품은 늘 그러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언론인으로 현재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있는 그의 실제와 착각을 일으켰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적인 필체로 「아름다운 집」에 이어 「유령의 사랑」 또한 ‘진짜 있었던 일인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닌가?’, ‘한민주가 손석춘이 아닐까?’, ‘정말로 영국의 런던을 다녀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설이 허구를 바탕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결코 100% 거짓(??)이 아닌 그의 깊은 사상과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더욱 그러 했으리라. 「유령의 사랑」 젊은 시절 맑스주의를 외치며, 나와 사상이 다른 이들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갖고 의견 차이를 갖은 이들을 한없이 비판했던,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난 뒤에는 권위에 눌려, 생활고에 치여 소신있게 글을 쓰지 못하는 몇몇의 언론인들을 고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나는 그것이 언론인인 손석춘 자신에게 또 동료, 선․후배 언론인들에게 일침을 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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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승호의 누드토크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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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홍세화, 노혜경, 윤도현 밴드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물들이다. 요즘 사회는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이는 많아도 싫은 걸 싫다고,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큰소리로 말하는이는 많지 않다. 그저 자신의 이해타산에 맞추어 목소리를 높이고들 있는 것 같다.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의견이 조금씩 다를 뿐 말하고자 하는 이들임이 분명하기에 그러한 부류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 책은 저자인 지승호가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쓴 글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승호가 말하는 '비판적 지성인'들인 것이다. 작년 이 즈음에 국민경선이 있고, 대통령 후보 등의 얘기로 떠들석 했던 그 때 읽었더라면 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었다. 몇 달 전 고양시에 유시민 후보가 의원이 되었다. 유시민 의원은 의원이 되고 몇 차례 큰 뉴스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한가지를 보면 이렇다.

국회의 공식석상에 남들은 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왔는데, 유시민 의원은 면바지에 자켓을 걸쳤다는 것 때문이었다. 자신은 일터에 오면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왔다는 데, 그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맞는 말이다. 일터에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갖추어야 할 차림새가 있을까 싶다. 이런 상황은 학교에 깨끗하게 옷을 입고 온 학생에게 명품의 새옷을 입고 오지 않았다고 혼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판적 지성인이 되기 위한 발걸음은 눈을 좌우 시력 1.0에 맞추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력을 1.0에 맞추도록, '사'가 아닌 '공'을 위한 의식있는 사람이 되어보기를 나 스스로에게 먼저 주문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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