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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평점 :
먼저 책 표지가 눈에 띈다. 만화가 김태권씨의 그림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유명한 그림을 패러디 했다. 우리 문화계도 혁명 수준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각 챕터의 끝에는 저자가 조사한 자료들의 요약과 함께 QR코드를 표시해 놓았다. 스캔하면 출판사 블로그의 관련 자료 페이지로 링크된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참신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QR코드로 링크되는 정보들
적어도 나는 이책이 청년실업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온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전작인 '88만원세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청년실업'해결에 대해 이야기해 왔고, 제목에 이런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문화로 먹고살기"
말 그대로 문화(책의 분류에 따르면 방송, 출판, 영화, 음악, 스포츠)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밥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양적','질적' 일자리 확대를 이루자는 이야기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2000년대 초반에 우리영화가 잘나갈때, 업계에는 많은 자본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스타급 배우들을 제외한 영화인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특히, 스텝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열정만으로 오랜시간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는 경우는 본인 뿐 아니라, 가족의 삶도 피폐해 질 것임을 말해서 무엇할까?
그렇다면 왜 '문화'인가? 그나마 한국사회의 학벌주의가 덜한 분야가 '문화'분야이고, 그냥 하고 싶은 사람이 그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한국에서 이처럼 열린 분야는 많지 않다. 게다가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살아 있는 영역이 바로 문화다. 또한 문화는 그 특성상 노조를 만들기도 쉽지않고, 4대 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도 많지 않으며, 한참 사회 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는 '비정규직'문제가 가장 심한 분야이다. 물론, 문화분야가 아닌 일반 '노동자'들 중에도 비정규직에 각종 차별로 설움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할 일은 아닌것 같다. 마지막으로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순기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 음악, 책 등 문화상품은 우리에게 감성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생활고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더이상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면 그건 그 가수 개인의 불행일까?
2007년 11월 5일부터 2008년 2월 12일까지 미국에서는 수출과 DVD 판매에 대한 저작권 개선을 요구하며 작가들이 파업을 벌였다. 작가들과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던 배우들이 오스카 시상식에 불참하는 등 사회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이 파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주도한 단체가 바로 '미국작가길드'라는 이름의 단체 두개 였다. 당시 작가들은 "Pencil down means channel down", 즉 펜이 서면 모든 영상이 멈춘다는, 가슴 저리는 구호를 앞세웠따. 길드는 협회와 노조 사이에 있는 조직 형태인데, 거대한 방송사 혹은 제작사와 맞서 혼자서는 제도를 개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길드라는 형태가 등장한 셈이다. 물론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작가의 임금 수준과 배분 방식 혹은 제도 개선을 적극 대변할 단체가 필요하고 그런 여건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P128)
- 미국 드라마 작가 파업당시, 우리나라는 한창 '미드열풍' 이 일던 때였고, 불법 다운을 통해서 였지만, '미드'의 애청자 중 한사람으로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지 못하고 파업의 영향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경제학자 답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각 분야의 매출과 연계해서 수치로 보여주고 있으며, 문화로 먹고살기위한 지원방안, 정책의 효과를 매출 총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음악시장의 목락으로 별 중의 별로 살아도 좋았을 대중 음악계 최고 스타들끼리 서바이벌 게임에 나서계 되었다. 잔인한 현실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음악을 살려야 할 것 아니냐는 제작진의 말을 특별히 반박할 수가 없다.
자 그렇다면 2010년대 음악시장 몰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가? 정부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최소한 OECD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만 음악이 망한 것 같다. 물론 다른 나라 역시 본원상품 상황이 어려워지고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으로 망한 나라는 없다. 간단히 비교하면, 인구 800만의 스위스보다 우리의 음악 기반이 더 취약하고 장기 전망도 더 어둡다.
우리는 매년 1조원 이상을 홈시어터나 카오디오, 아니면 하이엔드 오디오 구입에 쓰고 있다. 그런데 DVD, CD, LP 모두 합쳐 가계 지출이 300원? 높게 추정해도 전체 600억 원 정도인 앨범시장과 비교해보면 토건 한국의 양상이 가정집에서도 펼쳐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도서관 짓느라 도서 구입비가 없고 학교 인프라 늘리느라 정작 학생들 급식 보조할 돈이 없고 오디오 콤포넌트 사느라 앨범 살 돈이 없다. 전부 토건 시대의 '뽀다구' 문화의 잔재인 셈이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하드웨어 시대를 극복하고 소프트웨어 시대를 맞는다고 했는데 죄다 말장난이었던 셈이다.
- 문화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정부는 '인프라 개선'이라는 말로 건물만 지을려고 한다고 꼬집고 있다. 그건 196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의 개발광풍 때문이고, 그 방식에 혜택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비단 정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이젠 생각을 바꿀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 한국에서 음악시장은 음반사들이 망하면서 사실상 사양산업의 길을 걸어왔는데, 그나마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면서 외형이라도 지킨 것이라는 극단적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당분간 음악은 사양산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미 만들어진 기획사나 스튜디오들이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까 아이돌 스타라는 특별 기획상품을 시중에 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은 결성 자체를 기획사에서 대신 해준다. 기획사에서는 자신들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손해 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는데, 아이돌 스타들을 착취하기 위해 하는 빈말은 아니고, 승자독식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여기서 먹고살기라는 문제를 아이돌 그룹 멤버 개개인에게 던져보자. 과연 그들은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개별 멤버들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내보면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도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음악시장 자체가 드라마나 영화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광고시장 같은 파생시장은 본원상품시장보다 큰데, 광고시장 역시 줄어드는 상황이라 지금보다 더 커지리라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 '10초 가수','5초 가수'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곡에서 한 번 노래하기도 쉽지 않을 만틈 그룹이 커져서 각자의 몫이 점전ㅁ 더 작아진다. 게다가 스타 변동 주기가 더 빨라지는 흐름을 보인다. 앨범이 버티는 기간이 짧아지니까 기획사로서는 앨범 발간 횟수를 늘리거나 스타를 등장시키는 주기를 더 짧게 하는 전략을 밀 수 있는데 양쪽 다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의 아이돌 그룹 소년 소녀들이 20대 이후 진로는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을 안 한다. 대중음악은 상품이지만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 기본 구조는 스포츠와 유사한데, 운동선수는 꼭 프로 무대에서 뛰지 않더라도 사회체육 쪽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나이 들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음악안에서 그리 넓지 않다.
- 가장 공감하게 된 이야기이다. 내겐 연예인 지망생인 조카가 한명있다. 아직 중학생이지만,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1등에 뽑혀 연습생으로 5년간 준비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드디어 CF를 통해 데뷰를 하였고, 기획사내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1,2년 안에 가수로 데뷰할 예정이라고 한다. 데뷰 후에 운좋게도 바로 데뷰곡이 히트하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간다고 해도 30대 이후에 계속 음악활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좋은 예가, '원조 아이돌' 이라고 불리는 'SES'나 '핑클'인데 7명의 멤버 중 지금도 가수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멤버는 '이효리'와 '바다' 뿐이다. 그나마 이들은 정상에 있었던 스타'의 경우이고 그 아래에 있는 수없이 많은 무명들은 지금도 어렵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