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1
채만식 지음, 이주형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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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채만식의 <태평천하>라는 소설이란다. 얼마 전에 jiny가 학원 숙제로 채만식의 단편 소설 <치숙>을 읽었잖니. 아빠도 그 때 함께 <치숙>을 읽었는데, 단편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단다. 채만식이라는 작가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이니까 이름은 익히 알았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처음인 것 같았어. 어렸을 때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었던 것 같지만, 잘 기억도 나질 않는구나. <치숙>을 재미있게 읽어서 오래 전에 사두고 책장 속에서 발효되고 있던 채만식의 장편소설 <태평천하>를 찾아서 읽어 보았단다. 사회 비판적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수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구나. <태평천하>는 채만식이 잡지 ˝조광˝ 1938 1월부터 9월까지 연재한 장편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그러면 바로 책 이야기부터 해보자.

 

1.

계동의 이름난 부자 윤두섭. 그는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이라는 뜻의 직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윤직원 영감이라고 불렀어. 72살이지만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어서 인지 아직 젊은 혈기가 왕성하였다. 하지만 부자이긴 하지만 자린고비가 따로 없었단다. 인력거 품삯도 깍으려고 실랑이를 벌일 정도로 자린고비다. 윤직원의 아버지 윤용규 때부터 운대가 좋아서 부자가 되었어. 그런데 화적떼가 침입해서 우발적 사고로 아버지 윤용규가 죽고 윤두섭은 도망갔다가 돌아왔단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악착같은 구두쇠 정신으로 재산을 불려 삼천석 재산으로 불어났고,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지. 아내는 죽고 아들 부부랑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들부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단다. 며느리한테 매일 쌍욕을 퍼붓는 시아버지였어. 이 정도면 윤직원 영감의 캐릭터를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윤직원은 아이들을 양반가문들과 결혼을 시켰고, 자신도 돈을 써서 향교에 들어가 직원이라는 직함을 얻은 것이다. 첫째 아들 윤창식은 결혼 후 일본 유학을 갔는데, 그 때부터 딴살림을 차리고 첩이 여러 명이고, 국내에 와서도 집에 붙어 있는 적이 별로 없었단다. 윤창식의 아내이자 윤직원의 맏며느리는 고씨였고 창식과 고씨 사이는 아들 종수와 종학이 있었어. 종수 또한 아버지 창식을 닮아서 난봉꾼이었어. 윤직원 영감이 모아서 불려놓은 재산을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가 축내고 다녔어. 종수는 박씨와 결혼을 해서 열다섯 살 경손이 있었어.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도 행실이 바른 것은 아니야. 첩한테 낳은 아들 윤태식이 있는데 증손자 경손과 동갑인 열다섯 살이었어.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었어.

.....

 

2.

윤직원의 사채업을 맡아 하는 석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석서방을 통해 사채업을 하지만 윤직원은 원하는 이율을 얻지 못하면 짤 없었지. 석서방과 나라 밖 소식도 듣곤 했는데 당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던 시기였어. 너희들도 역사 시간에 1930년대 일어난 중일전쟁을 배웠을 거야. 석서방이 이야기하기를 러시아가 중국에 사회주의를 전파하려고 중국을 도와준다고 했어. 설마 일본이 질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윤직원이 생각하기에 일본은 부국강병에 있어서는 최강국이라고 생각했지. 당연히 일본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

...

윤직원 영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전대복이란 사람이 있어. 전대복은 윤직원 영감의 진정한 심복으로 돈욕심도 없는 사람이었어. 윤직원 영감도 전대복은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지. 돈도 알아서 챙기라고 했는데 전대복은 딱 필요한 것만 썼단다. 하지만 과부가 되어 윤직원 집에 기거하고 있는 윤직원의 딸 서울 아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어. 서울 아씨도 전대복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대복 자신도 윤직원 영감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

윤직원 영감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태평천하라고 생각했어.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 돈을 보호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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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75)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나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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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직원의 유일한 걱정은 죽음이었어. 어떻게 하면 영생불사 할 수 있을까. 윤직원 영감은 아이들의 오줌도 먹고, 각종 보약을 먹고, 체조도 하는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했단다.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윤직원 영감은 칠십대 노인이지만 아직 혈기가 왕성하여 증손자 뻘 되는 기생들에게 수작부리다가 퇴짜를 여러 번 맞았단다. 최근에도 돈 주고 말상대를 해주고 있는 춘심이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어. 춘심이는 기존 아이들과 달리 사근사근 말도 잘 받아 주어서 조심스럽게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수작부렸어. 춘심이도 바로 퇴짜를 놓았어. 그런데 마음이 돌아섰는지 반지를 사주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했어.

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와 반지를 사러 갔는데 거기서도 구두쇠 정신이 발휘되어 반지값을 계속 깎고 있었단다. 어차피 아들과 손자가 흥청망청 쓰고 있을 텐데... 아들 윤창식이 도박에 빠져 돈을 계속 잃고 손자 종수도 툭하면 윤직원 영감을 찾아와 돈을 달라고 했어. 윤창식은 도박에 빠져서 일본에서 둘째 아들로부터 온 급한 전보가 왔는데도 뒷전이었어. 그 전보 내용은 윤창식의 둘째 아들 종학이 사회주의에 빠졌다가 경시청에 붙잡혔다는 내용이었어. 사실 윤창식은 윤직원 영감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경찰서장이 되길 바라고 있었어. 그런데 윤직원 영감이 가장 극혐하는 사회주의에 빠져 경시청에 붙잡혔다니... 이 소식을 들은 윤직원 영감이 격분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의 제목 <태평천하>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지은 제목 중 손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암울한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목이 태평천하라니... 소설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의 입장에서 태평천하일 수도 있지만 콩가루 집안이 아무리 태평천하라고 해봐야 실제를 들여다 보면 짐승만 못한 세상 아니더냐. 유일한 희망이었던 둘째 손자가 윤직원이 가장 혐오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고소하던지...

그런데 지은이 채만식은 이 소설을 쓸 당시 윤직원 영감을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친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야. 그들이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찔릴 양심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안타까운 것은 채만식도 일제시대 말기 친일 행위를 했단다. 그래도 채만식은 양심이 있었던 것 같구나. 해방 후에 <민족의 죄인>이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깊이 반성하였단다. 반성도 없이 당당한 다른 친일파들과는 다른 행보가 그를 다른 친일파들과 구분 짓게 평가하는 것 같구나. 그렇게 반성을 하고 나서 작품활동을 좀더 하다가 병에 걸려 1950 6 11일 향년 47세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47세의 적은 나이임에도 그는 2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시대를 제대로 타고 났다면 더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기 않았을까 싶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 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 날 석양..

책의 끝 문장: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만일 오늘이 우리한테 새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어제와 꼬옥 같은 것만 되풀이를 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숨이 막히고 모두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같으면서도 (어제 치면서도 더 자라난) 한 다른 오늘 치를 우리한테 가져다주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동안 인간은 늙어 백발로, 백발은 마침내 무덤으로…… 이렇게 하염없어도 인류는 하루하루 더 재미있어간답니다.
- P241

사람은 누구 없이 뱀을 섬뻑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라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와 경계의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래오랜 조상, 즉 사전(史前)인류(人類)가 파충류의 전성기대에 그들의 위협 밑에서 수백만 년을, 항상 공포와 투쟁과 경계를 하고 살아오는 동안, 그것이 어언간 한 개의 본능이 되어졌고, 그러한 조상의 피가 시방도 우리 인류의 몸에 흐르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 P260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소작으로 주는 것은 큰 선심이요, 따라서 그들을 구제하는 적선이라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지론이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신경으로는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논이 나의 소유라는 결정적 주장도 크지만, 소작 경쟁이 언제고 심하여, 논 한 자리를 두고서 김서방 최서방 이서방 채서방 이렇게 여럿이, 제각기 서로 얻어 부치려고 청을 대다가는 필경 그중의 한 사람에게로 권리가 떨어지고 마는데,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나 또는 채서방이나에게로 줄 수 있는 논을 최서방 너를 준 것은 지주 된 내 뜻이니까. 더욱이나 내가 네게 적선을 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윤직원 영감이 소작권에 의한 자선사업의 방법론입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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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도란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생공사하고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천은 천시(天時), 즉 기후 조건으로 밤과 낮, 맑고 흐린 날, 사계절의 변화 등을 말한다. 지는 지리(地利) 조건으로 도로의 멀고 가까움, 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 지역의 넓고 좁음 그리고 사지(死地)와 생지(生地) 등을 말한다. 장은 장수(將帥)의 덕목으로 지모(智謀)가 뛰어난가, 충신(忠信)을 지녔는가, 부하를 인애(仁愛)하는가, 용맹하고 과단성이 있는가? 군령을 엄격히 다스리는가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은 군대의 조직 편제, 직책과 관리 제도 그리고 군수물자 제도를 가리킨다. 장수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깊이 파악해야 한다. 오직 이를 파악한 자만이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


(35)

맹자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구별한다. 패도는 인의를 저버리고 힘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며, 왕도는 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다. 패도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무력과 그 바탕이 되는 넓은 영토가 필요하지만, 왕도는 소국에서도 충분히 펼칠 수 있다. 성탕의 영토는 70리 남짓에 불과했으나 능히 왕도를 구현해냈다. 이처럼 왕도는 왕자라는 지위에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왕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애써 갖춰야 할 자격이었다.


(37)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한 묘산(廟算)으로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충분히 평가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반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묘산을 충분히 진행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계획(계산)이 치밀하면 승리할 수 있고, 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다. 그럴진대 계획이 전혀 없다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할 것인가를 명백히 할 수 있다.


(56-57)

이처럼 대군을 동원하는 전쟁은 반드시 단기간에 속승(速勝)을 거두어야 한다. 전쟁을 오래 끌면 병사는 피로해지고, 날카로운 기세는 꺾이기 마련이다. 성을 공격하는 공성에는 군사력의 손실이 따르며, 장기간의 출정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만약 병사들이 오랜 전쟁으로 피로해지고 예기가 꺾이며, 군사력이 소모되고 재정까지 고갈되면 주변 국가들이 기회를 노려 군사를 일으킨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자라도 이 위난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용병 전쟁은 마땅히 신속한 승리를 추구해야 하며, 계책이 교묘한가 졸렬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오래 지속되는 전쟁이 국가에 이로웠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므로 용병의 폐해를 모두 알지 못하는 자는 그 이로움 또한 온전히 알 수 없다.


(82)

따라서 용병의 최고 책략은 전쟁을 하지 않고 모략으로써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다음은 적의 외교 동맹을 와해시켜 고립시키는 것이고, 다음은 무력으로써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적의 성을 격파하는 공성은 최악의 책략으로, 다른 선택이 없을 때 부득이하게 취하는 방식이다.


(111)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드는 관건은 정확한 방비에 있고, 내가 승리할 수 있게 만드는 관건은 적절한 공격에 있다. 방비하는 까닭은 아직 힘이 부족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고, 공격하는 까닭은 힘에 여유가 있어 승리할 조건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방비에 능한 자는 아홉 겹 땅속에 숨어 있는 듯하여 적이 찾아낼 수 없고, 공격에 능한 자는 아홉 겹 하늘(구천, 九天)에 떠 있는 듯하여 적이 막을 수 없다. 이처럼 방비와 공격에 모두 능한 군대는 능히 스스로를 보전하며 적에게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


(128)

를 비교해보면 개념이 한층 선명해진다. 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은 사물의 외적 현상이자 구체적 상황으로 실재하는 반면, ‘는 사물의 성향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요소다. 군사적으로는 이 작전 형량의 본체(本體), ‘는 그 작용에 해당한다. ‘은 군대의 병력과 장비 같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량으로, 비교적 고정되어 단기간에 변하지 않으며 수치로 측정할 수 있다. 반면 을 토대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발휘되며, 지형, 기후, 보급 상황, 군의 사기, 작전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이고 비가시적인 역량이다. 따라서 수시로 변하며 수치화하기 어렵다.


(159)

, 두 사람 모두 적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자신은 적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병법의 핵심이라 본 것이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은 적의 의도에 말려들어 피동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의도한 대로 움직여 내가 미리 구상한 시간, 장소, 조건에서 적을 상대하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


(167)

그러므로 분석을 통해 적의 계획이 가진 득실과 강약을 가늠하고, 자극을 주어 행동 방식을 살필 수 있다. 또 아군의 거짓된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어 적의 강점과 약점을 드러나게 하고, 시험적인 공격으로 병력 배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만책을 극도로 능숙하게 구사하면 아군의 실체는 흔적조차 감출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아무리 깊숙이 숨어든 간자(間者)일지라도 나의 허실을 알아낼 수 없고, 아무리 지모가 출중한 적장일지라도 나의 계책에 대응할 수 없다.


(207)

<손자병법>은 말한다. “때로는 군주의 불합리한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지휘관의 뜻을 무조건 꺾으라는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지휘관에게 항명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반드시 형세에 대한 통찰과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317)

군주는 일시적 분노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일시적 원한으로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면 비로소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분노는 희열로 전화할 수 있고, 원한도 기쁨으로 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멸망하면 되돌릴 수 없고, 사람의 목숨은 더더욱 되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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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오래 전에 EBS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멸종>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책은 다큐멘터리 <생명, 40억 년의 비밀>을 책으로 엮은 세 권 중에 한 권이었어. 그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또 다른 책이 <경계>를 구입했단다. <경계>라는 책은 책장 한쪽 구석에 박혀 있다가 얼마 전에 아빠가 다른 책을 찾다가 눈에 띄었단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거야.

<멸종>이라는 책을 언제 읽었는지 찾아봤더니 2017년에 읽었더구나. 정말 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되다니… <멸종>을 통해 지구역사 상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과 현재 진행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 알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구나. <경계>라는 책은 제목을 잘 지은 것 같구나. 그냥 진화라는 제목을 지어도 될 것 같았는데, ‘경계라는 단어를 선택했어. 여기서 경계란 서로 다른 환경의 경계를 이야기한단다. 물 속에서만 살던 생명체들이 왜 경계를 넘어 육지로 올라왔는데, 육지에 살던 생명체들이 왜 경계를 넘어 하늘로 날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경계를 넘어선 생명체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원래 살고 있던 환경에서 경쟁에 져서 밀려나서 새로운 환경에 갈 수 밖에 없었던 거야.

 

1.

먼저 경계를 넘어선 식물들을 이야기를 해보자. 아주 오래 전에 대기 중에 산소가 부족하고 태양의 자외선 때문에 물 밖에서는 살 수가 없었어. 바닷속에서 개체수를 늘려가던 생명체들이 만들어낸 산소가 대기 중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대기 중의 산소 농노가 늘어갔어. 그리고 산소가 성층권까지 올라가서 환원성 기체들을 만나 오존층을 만들게 되었어.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그 오존층은 자외선을 막아주어 물 밖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졌지. 하지만 굳이 바닷속을 벗어갈 이유는 없었어. 경쟁에서 밀려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바닷속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녹조류들이 뭍으로 조금씩 올라와 살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수심 낱은 바닷가에서 살았겠지. 그러다 점점 밀려 올라와 습지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때 생겨난 식물들이 양치식물과 선태식물들이었단다. 폐름기말의 대멸종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고사리를 식물계의 제왕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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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대엽을 무기로 고사리는 폐름기말의 대멸종을 버티며 중생대를 자신의 시대로 맞을 준비를 한다. 더불어 고사리류는 엄청난 진화방산을 해낸다. 커다란 잎으로 광합성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키운 덕분이다. 마치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처럼 고사리는 고생대 말과 중생대 초의 식물계의 패권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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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살아나던 식물들 중에 경쟁에서 밀려난 식물들은 또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식물들이 나타나면서 결국 종자식물까지 진화하게 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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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중생대 전반을 거쳐 확연한 지상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겉씨식물의 경우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고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굳이 꽃을 피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점점 높은 산 위로 올라간 식물이다 건조한 지역으로 이동한 식물들은 살기 위한 시간과 진화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번식을 해야 했고 하나의 꽃가루도 하찮게 여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짧은 우기에, 혹은 짧은 여름에 재빠르게 번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써 수정한 씨앗이 이런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투쟁의 결과가 꽃이고 배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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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에는 더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경계 이야기를 해보자. 동물들도 바닷속에서 시작했어. 캄브리아기 대폭발 때 동물군들이 다수 발생하여 다양한 종들이 번성했단다. 척추동물도 이때 시작했어. 다양한 어류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육기어류들도 있었어. 이 육기어류들은 폐가 있어 공기호흡도 했단다. 이런 육기어류들 중에 사지형 어류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다에서 경계를 넘어 땅으로 올라오게 되었단다.

육지에 오면서 목이 길어지고 척추가 튼튼해지고 갈비뼈가 발달하는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했어. 그들이 이렇게 땅으로 올라온 것은 고생기 데본기였단다. 그런데 이때 대양한 육상 식물들도 폭발적으로 늘었어. 식물들이 늘어나다 보니 그들의 광합성 때문에 산소 농도가 급격하게 늘고 이산화탄소가 줄어들었어. 이산화탄소가 많으면 온실 효과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잖니그렇다면 이산화탄소가 적다면 어떻게 될까? 온실효과가 줄어들어 지구의 온도는 급격하게 떨어졌단다. 이건 생명체들에게 치명타였어. 많은 육지의 생명체들이 멸종되고 말았단다. 뿐만 아니라 이때 조산운동도 많이 일어났는데, 이 조산운동으로 바다의 환경도 급격하게 변하면서 바다의 생명체들도 많이 멸종되었대. 이 때의 멸종을 데본기 대멸종이라고 불렀단다.

멸종기였지만 살아남은 종들도 분명 있단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또 경쟁을 하고 경쟁에서 지면 경계를 넘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진화했단다. 그런데 육지에 살던 육식동물 중에 먹이가 떨어져서 먹이를 찾아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들도 있다고 하는구나. 바다에 살고 있는 포유류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고래잖니. 아빠는 고래가 처음부터 바다에 살았던 동물인줄 알았는데, 고래는 육지에서 살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들이라고 하는구나. 고래가 덩치가 크잖니. 그들이 육지에서 살 때도 덩치가 크고 덩치가 크다 보니 느렸대. 그렇다 보니 다른 육식동물에게 먹어 사냥 경쟁에서 지고 만 거야. 그래서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바닷가 주변에서 사냥하면서 살다가 완전히 바다로 가서 살게 된 것이란다. 바다에서 살면서 고래의 덩치는 점점 커졌는데 그 이유는 체온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포유류는 정온동물인데 온도를 유지하려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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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바다에 살기 시작한 이후 고래의 조상은 점점 덩치가 커진다. 가장 큰 이유는 체온 때문이다. 바닷물은 공기보다 체온을 빨리 뺏어간다. 체온을 보존하는 것이 바다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특히 고래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포유동물, 즉 정온동물이었다. 몸 전체에 두꺼운 피하지방을 둘러 체온은 유지하는 것은 불가결한 선택이었고, 이로 인해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커진 덩치는 부피 대비 표면적을 줄여 체온이 손실을 방지해주었다. 추운 극지방에 사는 생물들이 덩치가 커진 것도 같은 이유다. 바닷속에서 사는 시간이 많은 펭귄이나 물개, 바다사자 같은 생물들도 육지의 친척들에 비해 덩치가 크고 피하지방층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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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이후 바다의 제왕으로 오랫동안 지내오다가 최근 3세기 동안 백인들의 무차별 고래잡이로 멸종 위기까지 겪게 된 것이란다. 바다소라는 동물도 있었대. 고래처럼 경쟁에서 밀려나서 바다로 갔다고 현재는 네 종만 빼고 모두 멸종했다는구나. 이들의 멸종은 먹이 부족의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들이 큰 책임을 지고 있단다. 남아 있는 네 종도 멸종 위기라고 하고 하는데, 이 책이 나온 지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 밖에 바다에 살고 있는 포유류들, 예를 들어 물개, 바다표범 등도 육지에서 경쟁에서 밀려나 바다로 가서 진화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이란다.

또 하나 땅 위에서 먹이 경쟁에서 진 생명체들 중에 나무 위에 있는 먹이를 먹다가 결국 날게 된 이들이 새가 된 것이란다. 처음에는 경쟁에서 져서 새로운 환경으로 밀려난 것이지만,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면 더 멋진 삶을 살 수도 있다니, 전화위복이 따로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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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날개를 만들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생각하면 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날개를 가졌을 가능성은 없다. 드넓은 대지 위에 자신의 몸 하나 편안하게 누일 곳이 없었던 생명, 가는 잠이 들다가도 풀숲을 뒤척이는 작은 기척에 화들짝 놀라 큰 눈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던 생명, 먹이를 구하러 다니다가 천적의 냄새에 쪼르르 도망가던 생명. 이런 생명들이 나무를 타고 나무 위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새의 비상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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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져서 땅 속으로 도망가서 진화한 종들도 있어. 지렁이, 두더지가 대표적인데 뱀도 그런 동물이라고 하면 의아해 할 거야. 뱀의 집도 땅 속에 있지만 주로 땅 위에서 생활하며 우리를 무섭게 하잖니. 뱀도 지렁이처럼 경쟁에서 밀려나 땅 속에서 살다가 백악기 대멸종 이후 경쟁자가 줄어든 땅 위로 다시 올라와 살기 시작했다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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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238)

뱀이건 도마뱀이건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지상의 생태계에서 자신이 누리던 역할과 지위를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벌레를 잡아먹자니 포유류의 선조들이 훨씬 더 빠르게 사냥을 해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른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지니 지배파충류에서 진화한 공룔 중 덩치가 비교적 작은 이들에게 밀려난다. 변온동물이라 밤에는 움직이기가 힘들고 낮에는 다른 동물과의 경쟁이 버겁다. 그래서 갈 수 밖에 없었던 곳이 바로 흙 속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포식자를 피해 땅속으로 숨어, 흙 속을 헤매는 다른 벌레를 먹으며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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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류를 보자. 인류는 육식동물을 피해서 각박한 환경의 초원에 살 수밖에 없었어.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어. 처음에는 다른 육식동물이 남긴 먹이를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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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익숙한 환경과 삶에서 내몰린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의 선조 역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미 나무를 타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앞발로는 초원에서 사족보행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숲 친척인 고릴라와 침팬지 등은 손등은 땅에 대며 걷는 이른바 손등걷기를 한다. 손등걷기는 숲에서 잠시 걷는 것에는 괜찮을지 모르나 초원에서 천적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 걷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무를 타기에 적합한 손으로 오랜 기간 초원을 걷기가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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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육식동물에 대항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같이 다니기 시작했어.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바뀐 생태계에 적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태계를 자신들에게 맞췄단다. .. 개척한 거지그런 인류의 생태계 개척은 그곳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최악이었단다. 멸종되는 거야. 그런 인류의 개척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지금은 지구상의 연쇄살해자가 되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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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이런 인간의 탈출은 기존의 생태계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이 개척한 곳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배제된다. 농경지를 일구면 그 곳에 살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식물과 함께 살던 동물과 균도 함께 사라진다. 도시를 세우면 숲이 사라지고 숲과 함께하던 동물들이 사라진다. 도로를 놓으면 도로 양쪽으로 자유롭게 오가던 동물들은 고립된다. 항구를 만들면 그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된다. 인간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기존에 존재하던 지구 생태계는 줄어든다. 인간의 탈출은 이제 인간의 공습이 되었고, 한정된 지구에서 생태계는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최초로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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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6차 대멸종의 시대라고 하는구나. 그 전의 대멸종과 달리 이번 대멸종은 인류가 다른 생명체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더 가슴 아프구나. 이전의 대멸종보다 멸종 속도가 빠르고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있지만, 인류는 그리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그 이전에 모든 대멸종이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지금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는 누구? 지구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린 시절 짧고 뭉툭한 손가락과 발가락이 콤플렉스였던 사람이었다.

책의 끝 문장: 넘을 수 없는 이 경계는 인간과 생물 모두에게 불행한 지금 이 시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생물분류상 은행문 은행목 은행과 은행속 은행종일뿐 아니라 놀랍게도 은행문에 속하는 유일한 생명이다. 그의 가까운 형제들은 2억 7천만 년 전 페름기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중생대를 거쳐 번성하다가 신생대가 되자 모두 멸종해버리고 은행나무 하나만 남게 된 것이다. 신생대 이후 은행나무의 형제들은 화석으로도, 살아 있는 개체로도 보이지 않는다. - P30

딱정벌레부터 한 번 살펴보자. 곤충 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수를 차지하는 딱정벌레목의 곤충은 현재 알려진 수만 35만여 종이다. 이는 곤충 전체로 봤을 때는 40%, 동물계 전체를 봤을 때 25% 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염두에 두면 약 500~800만여 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방아벌레, 잎벌레, 바구미, 풍뎅이, 곰보벌레, 물방개, 물진드기, 물맴이, 딱정벌레 등 다양한 곤충들이 딱정벌레목에 속한다. 두 번째로 종류가 많은 나비목에는 약 18만 종, 세 번째로 다양한 종수를 자랑하는 벌목에는 약 15만 종이 기록되어 있어 이들 셋이 종을 합치면 전체 곤충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 P59

이로써 피부는 기체 교환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를 내려놓게 되었다. 단순한 세포막이었던 시절부터 가져왔던 임무가 사라지자 피부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단단한 각질이 생겨 피부를 감싸기 시작했으며, 털이나 깃털이 나면서 외부의 온도변화로부터 몸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떤 피부에는 땀샘이 만들어지면서 보다 능동적으로 외부의 온도변화에 대응했다. - P96

뱀은 몸이 가늘고 길다. 이런 몸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허파도 대단히 좁고 길게 진화해 왔다. 많은 종류의 뱀에서 왼쪽 폐는 퇴화되어버리기까지 했다. 땅속으로 들어가니 사지도 소용이 없었다. 뱀의 앞발과 뒷발은 조금씩 퇴화되어 줄어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네 다리가 사라지고 난 뒤 대신 긴 척추를 얻었다. 수백 개에서 많게는 천 개가 넘는 척추가 뱀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기어 다니고, 땅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힘이다. - P234

생태계 내에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면 경쟁에 진 생물종은 생태계의 경계까지 쫓기고 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생태계로 자리를 옮기든가, 아니면 종 자체가 사라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인 인간의 등장은 생태계의 모든 종들을 경계로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해 나가며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회까지 차단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물들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멸종해 나가고 있다. 지난 역사 속의 5대 멸종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멸종이었던 폐름기 대멸종보다도 더 빠르게 생명종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번성하는 종은 인간이 선택한 몇몇 가죽과 식물, 그리고 인간의 도시에서 살도록 진화한 특정한 생물들뿐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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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

첫 여섯 달은 깊은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침에 잠이 깼을 때 애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늘 그보다 일찍 일어나, 그가 간신히 눈을 뜨기 적어도 40분이나 한 시간 전부터 돌아다녔고, 그래서 그는 빈 침대에서 기어 나와 잠이 덜 깬 상태로 빈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럴 때마다 1층 반대편 끝 작은 방에서 그녀가 타자를 치는 딸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거나, 위층 어떤 방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리곤 했다. 때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저 그녀가 책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아니면 집 안 다른 곳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애나와 공유했던 평생의 삶 동안 형성된 오랜 습관의 영향하에서 몽롱한 채로 어떤 일을 할 때 그 모든 괴상한 기억의 실수가 벌어졌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고 겨우 열흘이 지나고 난 아침에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들고 부엌 의자에 앉아 있다가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쌓인 펼쳐진 잡지들 쪽으로 우연히 눈길이 내려갔을 때 그랬다.

(68-69)

두 달 뒤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은유적 적합성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환지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게 어디로 튈지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고 이걸 끝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당장은 이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뇌 지도, 감각 수용체, 신경 회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동기가 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통증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77)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151)

마흔두 살 된 남자가 막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었다. 젊은 아내가 갓난아기를 병원에 두고 라이언스 애비뉴 양장점 위의 텅 빈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는 부엌 카운터에 있는 호밀빵 덩어리에서 한 조각을 잘라 내고 청어를 조금 준비하고, 작은 유리잔과 슬리보비츠 한 병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식탁에 앉는다. 그는 먹고 마시고, 먹을 게 사라진 뒤에도 두세 잔 더 마신다.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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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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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님의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천선란 작가의 소설들은 아빠의 취향에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꼭 챙겨보곤 한단다. 이 책은 지난 해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좀 늦었구나. 천선란 님은 주로 SF 소설을 쓰셨는데,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미 짙은 소프트 SF 소설이 읽기 편했단다.

이번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좀비를 다룬 소설이란다. 좀비라는 소재는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서 좀 식상할 수 있지만, 천선란 님은 자신이 추구하시는 인간미를 더하는 것으로 색깔을 달리하신 것 같았어. 이 책은 연작소설이라고 했어.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단다. 그 세 작품 모두 좀비가 된 지구가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란다. 미래의 어느날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고, 지구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방호복을 입지 않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단다. 그렇게 황폐화된 지구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세 편을 들려주고 있단다.

 

1.

첫 번째 작품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라는 작품이란다. 주인공은 옥주와 묵호 이렇게 두 사람이야. 필리핀에서 시작한 전염병은 처음에는 단순한 열병인줄 알았는데 치명적인 이 병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이 열병은 변형되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단다. 이 좀비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보던 좀비와 비슷했어.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런 존재였고 다른 사람들을 물어서 좀비로 만드는 그런 존재였어.

묵호는 진균학자로 발병 초기 한국인 관광객이 병에 걸렸을 때 조사단 중 한 명으로 필리핀에 갔었어. 그도 죽을뻔했다가 살아나서 돌아왔단다. 옥주와 묵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들은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할 기회를 갖게 되었어. 그들이 탄 우주선에는 모두 20명이 탑승했고, 320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향하고 있었어. 옥주가 동면 장치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이 가기로 했던 행성이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해 있었고, 우주선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체 내부 기계들을 고장 낸 것처럼 보였고, 핏자국도 여기저기 있고, 모두들 죽어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주선 안에 AI 키사한테 물어보니, 탑승객 중에 타일러 조라는 사람이 감염된 상태에서 탑승했다는 거야. 타일러 조는 깨어나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죽였다는 거야. 묵호도 타일러 조에게 물렸다고 했어. 묵호는 자신이 물렸음에도 옥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옥주의 동면장치를 타일러 조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옥주는 피해를 보지 않았던 거야. 묵호는 볼살이 뜯겨 잇몸과 치아가 다 드러나 있었어. 묵호는 정신을 잃고 중태에 빠져 있는 상태였어. 묵호는 좀비로 변한 것은 맞지만 다른 좀비들과 달리 전두엽과 해마가 살아 있어서 아직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우주선 안은 여전히 타일러 조가 돌아다니고 있었어. 옥주는 도망가야 했어. 옥주는 묵호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AI 카사는 안 된다고 했어. 타일러 조가 옥주를 발견했어. 이때 정신을 차린 묵호는 타일러는 잡고 막고 있었어. 옥주가 도망갈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지결국 묵호는 논개처럼 타일러 조를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었단다. 옥주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단다.

 

2.

두 번째 작품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라는 소설은 좀비로 많은 이들이 감염된 지구에서 도망가지 도 못 가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나와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와 함께 80년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어. 어머니의 병명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증상으로 보았을 때 치매에 걸리신 것 같았어. 그런데 그 병에 걸리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숨소리로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면서도 그래도 소통할 수 방법을 찾아서 안도감도 들더구나. 지은이의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 같구나.

====================

(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

====================

아파트 밖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려서 밖에 나가기 쉽지 않았어. 하지만 먹거리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지. 어느날 아버지가 그렇게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 좀비로 변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아버지가 사라진 지 3.. ‘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어. 그러다가 은미라는 여자를 만났어. 은미는 왼쪽다리를 절단한 상태였는데, 지체장애인 딸 노윤이 있었어.

노윤을 안전한 아파트에 피신시켜 두고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나와 있던 거야. ‘는 은미에게 50내 남자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모른다고 했어. ‘는 마지막으로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았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곳으로 가려고 했어. 은미는 그 광고 전단지를 믿지 않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그들과 함께 했어. 딸 노윤이도 데리고 왔어. 노윤이는 보육원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옥주와 묵호가 일하고 있었단다. 그렇게 첫 번째 소설과 이어져 또 다른 재미도 주는구나.

헬기 소리가 났어. 그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가서 헬기를 부르려고 했어. 그렇게 가는 길에 는 좀비로 변한 아빠를 보고 말았어. ‘는 잠시 망설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옥상으로 갔어. 하지만 헬기는 멀어져 갔어. 소리를 지르지만 헬기에서는 들리지 않았어. 헬기로 총을 쏘았단다. 그렇게라도 존재를 알려서 헬기가 돌아오게 하려고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들은 과연 안전하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

 

3.

세 번째 작품은 <우리를 아십니까>라는 작품이야. 레즈비언 커플로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란다. 주인공 는 뇌종양에 걸리고, 존엄사 센터를 찾아갔어.  ‘의 아내는 언젠가 깨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를 위해 있었던 일들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단다. 예정대로 존엄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를 물어서 감염시켰단다. 간호사도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였던 거야. ‘는 좀비가 되었지만 얌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단다.

원래 좀비로 감염이 되면 뇌가 완전히 망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사람일 때의 기억을 갖고 있었어. 아무래도 뇌종양이 좀비의 일반적인 상태를 억제하는 것 같았어. 몇 년이 지나고 아내는 어떤 소녀 보균자에게 물려서 감염이 되었어. 아내는 좀비로 완전히 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존엄사 간호사로부터 얻어 보관하고 있던 주사를 자신과 에게 반씩 넣고 정신을 잃었단다.

그런데 그때 가 깨어났어. 아내가 그동안 녹음해 둔 것을 듣고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어. 그들의 집에는 그들이 키웠던 거북이 장풍만 제대로 된 생명체로 존재했고, 아내는 좀비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어. 자신은 좀비의 몸에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는 장풍을 바다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아내를 카트에 넣어서 같이 데리고 갔어. ‘에게 나타난 또 하나의 증상, 장풍이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어. ‘는 장풍이를 바다에 놓아주고 아내와 둘이 바다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세 연작소설 중에 <우리를 아십니까>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희망을 던져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구나. 비록 몸은 좀비의 몸이었지만, 옛 기억 다 가지고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 존엄사에 사용했던 약과 뇌종양을 잘 이용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

아빠가 게을러서 소설을 읽은 지 한참 뒤에 독서편지를 쓰다 보니 기억력이 오락가락 하는구나. 메모를 한 것이 있긴 한데, 그것도 제대로 적혀있지 않고.. 그래서 오늘은 잘못 이야기한 부분이 있을 거야. 이야기 흐름의 전체적인 맥락만 참고하면 좋을 듯.. 너희들이 좀 여유 있으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으련만숙제하느라 이런 재미있는 소설을 보지 못해 안타깝구나. 그나저나 이 소설 속 같은 무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목소리 들려?

책의 끝 문장: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 P49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 - P146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 P195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 P206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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